너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그려줄게

이것이 화가의 운명적인 사랑이다

by 김수정
“사랑하는 얼굴이 있으면 사람은, 그중에서도 화가라는 인간 종류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 그 사람을 세상에 기념하면서 끝끝내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


‘누구에게나 운명적인 사람이 있다.’ 이는 마흔 넘은 올드 미스로 살아온 내 오래된 믿음이다. 나는 이 믿음을 우에니시 아키라의 책 『운명적인 사람은 있다』(2001, 해냄출판사)로 확인했다. 아키라는 말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독특한 파장이 있으며, 나와 동일한 파장을 지닌 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해서 파장은 거대화되고, 그들의 인생이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다고 이야기한다. 기다리며 살아가다 보면 ‘내 인생을 꽃피워 줄 운명적인 사람’을 꼭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인연은 꼭 남녀 간의 만남뿐이 아니라 사제 간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에서도 이루어진다. 그러나 바로 여기, 너무나 진부하게도 ‘운명적인 여자’를 만나 인생이 달라진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붉은 사랑의 그림을 소개하려고 한다.


원래 프랑스인이었던 화가의 본명은 자크 조제프 티소Jacques Joseph Tissot, 화가는 보불 전쟁과 파리 코뮌의 일로 고국에 머물기 어려워지면서 1871년, 영국으로 이주하고, 그가 가장 존경하던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의 이름을 따라 개명한다.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그것이 그의 이름이다. 그는 영국에 와서 속칭 ‘대박 화가’가 되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나라 영국에서 티소는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화가는 이미 프랑스에 있을 때부터 파리의 미술 세계를 맴돌며 신진 화가의 분위기를 익히는 한편, 파리지엔의 최신 유행을 눈에 담았다. 유행에 민감한 영국의 상류층에 패셔너블한 의상과 고급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낸 티소의 작품은 언제나 인기가 좋았다. 게다가 비즈니스 감각도 뛰어나서 당대 그 못지않게 잘 나가던 작가, 존 싱어 사전트는 티소를 ‘타고난 딜러’라고 부를 정도였다. 새로운 나라에서 화려하기 그지없는 성공이었다.

언제나 화려하고 완벽했던 그의 인생은 두 갈래로 나뉜다. 사람의 인생을 어느 기준으로 비포Before 와 애프터After로 나눌 수 있다면, 그의 인생은 비포 캐슬린, 애프터 캐슬린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티소 (James Tissot)의 영원한 뮤즈, 캐슬린 뉴턴 Kathleen Irene Ashburn Kelly / Kathleen Newton, 1854~1882은 참으로 기구한 여자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출신의 장교로 동인도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맞춤한 사윗감이 눈에 띄었다. 인도 행정청에서 일하던 의사 아이작 뉴턴이었다. 아버지는 속히 아일랜드에 있던 딸을 불러들였다. 생각해보라, 어린 시절에는 수도원 학교에 갇혀 살다가 17세의 어느 날 일면식도 없는 남자와 중매결혼을 하려고 큰 배에 탔던 아름다운 사춘기 소녀가 어떤 상태였을지. 일순의 해방감과 미래에 대한 숨 막힘, 사랑에 대한 갈망은 너무나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소녀는 항해 중 한 명의 선장과 불타는 로맨스를 꽃피웠고 그 대가는 너무나 컸다. 팰리저 선장이라고 알려진 그 남자는 캐슬린의 뱃속에 아이를 남겨 놓고 사라졌고, 캐슬린은 인도에서 너무나 감흥 없는 결혼식을 올렸다. 임신을 직감한 캐슬린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었고 남편에게 그간의 일을 고백했다. 격노한 남편은 아내를 용서하지 않았고 당장 이혼 소송에 돌입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그녀의 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너무나 어리고 순진했던 것이다.


이혼 가판결이 나왔던 1871년 12월 20일, 런던에 머물던 캐슬린은 딸을 낳았다. 뮤리엘 메리 바이올렛, 팰리저 선장의 아이였다. 언니의 집에 얹혀살던 그녀는 4년 후 또 다른 아들을 낳았다. 세실 조지, 그 역시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 없는 사생아였다. 이쯤 되면 이 여자가 철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캐슬린을 돌봐주던 언니는 연이어 사고를 치는 동생 때문에 얼마나 속이 터졌는지 안 봐도 너무 잘 알 것 같다. 그러나 인생 참 알 수 없는 법, 1876년의 어느 날, 캐슬린 뉴턴은 제임스 티소를 만나게 된다. 22세의 불행한 여자와 40세의 성공한 남자와의 만남은 놀라운 방향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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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얼마나 비이론적이고 어처구니없는 것인가, 세상천지 무서울 것 없이 성공한 완벽한 남자가 세상 밑바닥 여자와 사랑에 빠지다니. 언니에게 기대어 겨우 생계를 연명하던 천덕꾸러기가 사랑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구원받다니. 그것도 조건 없이 온전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소설에나 일어나는 일이 가끔은 현실에도 일어난다. 세상에는 사랑이 때때로, 진실로 존재하는 법이므로.


그러나 세간의 사람들은 기겁했다. “저렇게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여자를 이처럼 고귀하게 그리다니!” 거리만 나서면 사생아를 둘이나 낳은 여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릴 정도였으나, 티소는 상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곧 살림을 합쳤다. 정원이며 건물이며 화려하기 그지없는 작은 궁전 같은 집이었다. 다시 세간의 사람들은 들고 일어났다. “부도덕하고 뻔뻔스럽게 정부와 한 집에 살다니!” 모욕감을 느낀 영국 사교계는 두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고, 전시의 기회도 막혔다. 티소는 괴로웠으나 그럴수록 캐슬린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했다. 캐슬린은 사랑의 행운에 대가를 치르듯 폐결핵 증상이 나타나 나날이 수척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티소, 「미인의 타입」

「미인의 타입」은 오로지 캐슬린의 아름다움만을 표현한 그림이다. 1870년대 말부터 캐슬린의 폐병은 악화되었다. 육체의 아픔은 통증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가 집착하던 아름다움도 좀먹는다. 하루하루 병세는 여자의 얼굴에 한 겹 한 겹 그늘지고, 두려움 역시 한 겹 한 겹 쌓여간다. 화가는 가진 것을 모두 털어 마음을 쓴다. 프랑스 의상실과 모자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최신 유행으로 그녀를 치장한다. 화려한 의상으로 연약한 건강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을까. 다행히도 이 그림에서는 그녀의 병세를 상상도 할 수 없다. 화가와 디자이너의 합작은 분명 성공이다. 채도가 가장 높은 빨강과, 채도가 없는 검정이 배열되어 색채 강조를 극대화한다. 레이스 손 토시가 손목을 감싸고 검지 손끝으로 시선을 잇는다. 까딱하는 고개와 검지가 어울려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빨간 안감을 덧댄 모자는 캐슬린의 깊은 눈을 강조하고, 비스듬한 구도는 코와 입술을 유유히 흐르며 얼굴 옆선을 고귀하게 잇는다.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저 6년, 그 정도가 두 사람에게 허락된 시간이었다. 1882년, 병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캐슬린 뉴턴은 세상을 떠난다. 스물여덟의 나이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년의 시간을 티소는 내내 잊지 못했다. 그는 영국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프랑스로 돌아간다. 그녀와 함께 살던 곳에서는 일순간도 더 견딜 수 없었다. 캐슬린을 스케치했던 것들을 토대로,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을 완성하며, 화가는 하루하루 생을 연명해갔다.


단 한 사람 때문에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세속적인 가치로는 셀 수 없는 그 한 사람이 인생에 가져온 선물 혹은 괴로움을. 그것이 생과 사로 나뉘었을 때에도 어찌할 수 없이 계속 그리 견디고 그리 살아가야만 하는 사랑의 상태를. 사랑하는 그녀를 따라가려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그녀를 포기하려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그녀를 잊고 싶어 무엇이든 해 보았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랑에 매인 한 인간인 자신을 더욱 미워한다. 그녀 없이 아니 된다면 어쩔 수 없다. 그리하여 이 화가는 내내 사랑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2 사랑은 디테일에 ● 2 너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그려줄게 티소_Brooklyn_Museum_-_What_Our_Lord_Saw_from_the_Cross_(Ce_que_voyait_Notre-Seigneur_sur_la_Croix)_-_James_Tissot.jpg 제임스 티소, 「우리의 주가 십자가 위에서 본 것은」, 회록색 종이 위에 수채, 25×23 cm, 1886~94. 브루클린 뮤지엄

화가는 1885년, 다시 가톨릭 신자로 돌아간다. 캐슬린 뉴턴을 만나기 위해 강신술降神術, spiritualism : 죽은 사람을 현세에 불러일으키는 영적 방법에 빠져드는 등 당시의 티소는 신비주의에 흠껏 빠져 있었다. 그녀의 영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붙잡고 싶었다. 강신술사 윌리엄 에글린턴의 손을 붙들어 보았으니 이제는 신의 손을 붙들고 싶었다. 실지 티소가 이 시기 교회에서 영적인 체험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티소는 성화를 그리는 데 집중한다. 나는 상상한다. 티소는 어떻게든 캐슬린의 영혼을 구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새로운 차원을 열어젖히는 종교화를 그린다면 신이 자비를 베풀어주지 않을까 하는, 아니 베풀어 달라는 강권으로. 성화를 그리면 캐슬린의 영혼과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기 위로로서. 그의 성화는 새로운 성화의 지평을 열었다. 티소의 성화, 「우리의 주가 십자가 위에서 본 것은(What Our Lord Saw from the Cross)」을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성화聖畫에 있어서의 나는 이 그림을 보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간 성화에 대해 내가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이 전복되는 느낌이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성화의 새 역사를 열만큼, 이렇게 간절히 신에게까지 매달렸던 그 사랑의 마음은 어떤 높이일까, 나는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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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소의 드높은 사랑 안에는 단 한 문장이 맴돌지 않았을까? “너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그려줄게” 화가의 목표는 오직 그것이다. 이제 붓을 놓아버린 삶을 사는 나는 생각한다. ‘지금 내 앞에 ‘열렬히 그리고 싶은 얼굴’이 한 번 더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렇다면 지치지 않고 그 얼굴을 그리고 또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실감나지 않는 환상을 품는다. 티소는 이미 그러한 얼굴을 만났고 그의 인생은 결정되었다. 마지막까지, 끝내 그리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사랑하는 얼굴이 있으면 사람은, 그중에서도 화가라는 인간 종류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 그 사람을 세상에 기념하면서 끝끝내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화가의 운명이고, 이것이 화가의 운명적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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