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이어주는 노래

귀하게 여겨 간직한 마음이 그냥 허무하게 버려질 리는 없다

by 김수정

“이 조용하고 서글픈, 겸손한 그림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나 그리운 마음을 소중히 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담겼다면 놀라운 인생은 어떻게든 만들어진다. 가늘고 연약하게 이어지고 끝끝내 완성된다”


가을이 ‘나의 시절이 왔다’며 제 존재를 외친다. 쓸쓸함이 비명을 지르는 계절이라 온 동네에서 사랑타령이다. 올해는 유난히 연애 상담을 많이 들었다.


“이제는 완전히 끝났나 봐요.”

탄식하며 찾아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갑갑해진다. 얼마나 서러운지 듣다 보면 나까지 오싹해진다. 내가 남의 연애 상담을 해 줄 처지는 아니지만 이거라도 내가 할 수 있다면 다행인 거겠지.


각자의 처지와 성격 따라 사연은 각색이지만 나의 조언은 대개 하나다.

“현재의 마음을 귀하게 여기세요.”


아무리 고르고 골라도 그것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같은 것이고, 한편 마음은 어떤 것이던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라고 믿기에 그렇다. 마음이 가진 현재의 상처와 추위와 두려움을 위로해야 한다. 마음은 인간보다 세기에 인간은 마음에 일단 복종해야 한다. 마음을 추스르는 이에게 나는 조용조용 좋아하는 노래 이야기를 하나 해 준다. 이 곡을 나는 ‘그리움을 이어주는 노래’라고 부르고 싶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중학교 음악 교과서(1983)에도 실린 포크송 《얼굴》은 곱디곱다.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련한 그리움과 외로움의 색채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죽겠다고 하지도 않고 이 사랑이 영원할 거라 호언하지 않는 겸손한 마음이 좋다. 그리움이 찌르르하지만 어느 정도 견뎌내고 있다는 자기 고백이 있다. 과장되지 않은 감정의 표현이 더 구슬프므로, 부담 없이 다가와 오래오래 남는다. 나는 여기서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라는 가사를 좋아한다. 보이지 않는 얼굴을 정성으로 그리다가 지금은 볼 수 없는 영롱한 눈동자에 가닿는 누군가의 마음이 겸손하게 빛나는 것 같다.


1967년 3월 2일, 동도공고(東都工高) 새 학년 첫 학기 교무회의 시간에 지루하던 두 교사가 있었다. 대학 문학회 출신으로 간간이 시를 쓰던 심봉석(沈奉錫)교사는 의미 없이 긋던 낙서 중에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이라 쓴 글을 본 음악교사의 마음은 움직였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한 교사는 가사를 지었고, 또 다른 교사는 가사에 맞춰 곡을 지었다. 곡의 이름은 《얼굴》, 생물교사와 음악교사는 회의를 잊고 집중했고 5분 후 회의 종료와 함께 곡은 완성되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음역대와 부드러운 가사로 이루어진 《얼굴》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맹물(생물) 선생이 무슨 시를 쓰냐”라는 주위의 핀잔은 이로써 쑥 들어갔다.


음악교사로 근무하던 신귀복(申貴福)선생은 학교 안팎으로 활동 영역이 넓었던 사람이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80개교가 넘는 교가를 지어주었으며, 자신의 이름을 건 가곡집을 내기도 했다. 영향력 있는 음악 교과서를 내었던 것도 물론이다. 작곡자는 KBS 《노래 고개 세 고개》라는 라디오 프로에서 11년간 심사위원을 맡았다. 당시 「악보 보고부르기」 프로그램에서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참신한 노래를 사용하자는 의견에 신귀복은《얼굴》을 내밀었다. 미디어의 파급력은 크다. 곡에 반한 사람들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악보를 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작곡자는 7000여 통의 편지에 일일이 손편지로 답장을 해 주었다고 하는데 믿을 수 없다.


《얼굴》을 더 대중적으로 알린 가수도 있다. 1974년, 윤연선은 무작정 동도중학교를 찾아가 작곡자에게 곡을 주십사 간청한다. 음악실에서 듣게 된 허스키하나 진실한 음색에 신귀복 선생은 선뜻 악보를 건네주고, 《얼굴》은 가수의 인생도 바꾸어 준다. 순식간에 전국의 애창곡이 되어버린 이 곡 때문에 윤연선은 수퍼스타가 되었고, 실질적으로 가수 생활을 접은 후에도 드라마의 배경음악이나 라디오의 시그널 뮤직으로 사용되면서 내내 잊히지 않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그녀가 가수를 접은 것은 ‘대중가수’라며 결혼을 반대했던 상대편 가족의 영향이 컸다. 떠나간 남자를 붙잡지 못하고 그녀는 조용히 살아간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이 홀로, 홍대 앞에서 《얼굴》이라는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번 《얼굴》을 부르고 또 부르면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를 맞았다. 그러나 인생은 알 수 없는 법, 이제는 간신히 잊은 줄 알았던 얼굴이 윤연선을 찾아온다. “아직도 미혼으로 혼자 살고 있다.”라는 그녀의 근황을 올렸던 한국일보 신문기사 덕분이었다. 미워서 깊이깊이 묻어버린 그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팠던 시간은 희미해졌다. 남자는 이미 오랫동안 홀로 살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해서 미국에 살고 있다는 잘못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고. 자녀 하나가 윤연선과 다시 만날 것을 권했다고 한다. 2003년, 두 사람은 결혼한다. “참 이상해요. 옛날에도 아무 매력도 없이 밋밋하기만 한 저 사람한테 이상하게 이끌렸는데 다시 만난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이상하게도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까지 같아서일까요? ‘결국 우리는 필연적으로 맺어져야 하는 사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27년 만의 일이었다.


하인리히 포겔러(Heinrich Vogeler)의 「그리움(Longing, 1900)」은 《얼굴》과 꼭 맞는 그림이 아닐까. 새파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얕은 언덕에 올랐다. 오래 앉아있기 딱 좋은 돌 위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드디어 홀로 있을 수 있는 장소다. 얼굴을 괴고 저 멀리를 바라본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은 바로 그 사람을 그리워하기 꼭 알맞은 장소다. 못 만난 지 너무 오래되어 조금 희미해진 얼굴, 눈앞에 떠올리려면 집중력과 함께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라면 누구의 방해 없이 조용하게 그 사람의 얼굴을 그릴 수 있다. 여자의 동그란 뒤통수와 동그랗게 틀어올린 머리채가 화면 중간에서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돈다. 여자의 얼굴과 표정이 드러나 있지 않기에 관람자는 여자의 얼굴과 표정을 상상한다. 관람자의 기분과 생각, 다른 미감에 따라 새로운 여자의 얼굴이 창조된다. 분명 관람자가 생각하는 가장 고운 얼굴일 것이다. ‘저런 여자가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얼굴을 가진 사람일까?’라며 제가 떠올린 여자의 얼굴에 따라 또 다른 얼굴을 그린다. 한 겹 더 상상하게 된다.


1 낯익은 외로움 ● 8 그리움을 이어주는 노래 Heinrich_Vogeler_Sehnsucht_(Träumerei)_c1900.jpg 하인리히 포겔러 (Heinrich Vogeler, 1872~1942) 「그리움(Longing/Reverie)」, 캔버스에 유채, 1900, 개인 소장

요한 하인리히 포겔러Johann Heinrich Vogeler, 1872~1942는 독일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활동한 건축가이자 화가, 일러스트레이터이며 동시에 사회주의자였던 작가다. 심지어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와도 편지로 교류할 정도로 열린 마음을 가진 세계인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초기 유겐트슈틸(Jugendstil)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주로 문학적 상상력과 상징성이 넘쳐흐르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포겔러는 뒤셀도르프 미술 아카데미(Düsseldorf school of painting)에서 공부했다. 릴케의 말에 의하면 당시 그의 습작기는 고달팠다고 한다. 다양한 미술을 경험했고 다양한 사회현상을 겪었다. 화가는 유난히도 여러 번 먼 지역을 여행하는데 그가 사회주의자가 된 것은 아마도 이러한 배경 때문일 것이다.


포겔러는 불타는 사회주의 혁명가이기도 했지만 뜨거운 로맨티스트이기도 했으리라. 아니라면 어떻게 저런, 표정 없이 아련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겠는가. 그는 1894년 작센 주에 예술가 조직인 보르프스베데를 결성하고, 바로 다음 해인 1895년에는 바르켄호프(Barkenhoff) 농장에 예술인 마을을 만든다. ‘예술가 마을 보르프스베데(Künstlerkolonie Worpswede)’라는 이름의 이곳은 포겔러의 이상이 머문 곳이었다. 「그리움」이 제작된 1898년이 이때다. 아내 마르타 포겔러와 함께 살던 시기, 모더존-베커 부부 외 다른 예술가들과 꿈을 지어가던 때가 이때다. 왕성한 창작 활동 중이었던 때도 맞고, 무엇보다도 기쁨과 안정의 시기였다.


화가는 피렌체에서 만난 릴케를 부른다. 1900년 8월 27일 릴케는 보르프스베데에 도착한다. 이미 루 살로메와의 사랑은 끝을 맺고 있었다. 상심했던 릴케는 보르프스베데에서 다시 일어섰다. 비록 타인의 아내이긴 했지만 파울라 모데르존베커에게 연정을 느꼈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클라라 베스트호프를 만나고 나중에는 결혼하게 된다. 릴케는 열정을 되찾고 포겔러와 보르프스베데의 화가들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릴케를 일으켜 세운 것은 포겔러였다. 새로운 인연을 맺어준 것도 결국 포겔러였다.


일러스트레이션으로도 유명한 화가는 장식적인 펜화를 잘했다. 섬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꿈틀꿈틀 역동적인 오스카 와일드의 삽화가 그중에서도 유명하다. 오브리 비어즐리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 분명한 일러스트레이션을 보면, 당대를 휩쓸었던 유미주의란 무엇인지를 볼 수 있다. 뒤이은 작품, 레이스 회화는 화가의 펜화가 실재로 확장된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리라. 펜화나 레이스화가 단색에 가까운 표현이라면 화가의 그림은 다채로운 색채의 안정이다. 그의 그림은 빛과 그림자로 인한 입체감보다 장식적이나 단순한 색채, 선과 형상이 강조된다. 1907년경, 화가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시선을 옮긴다. 때마침 막심 고리키Maxim Gorky의 글을 읽으면서 자본가와 다르게 노동자 계급은 왜 어렵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영국의 빈민 지역을 둘러보며 화가의 혁명가적 기질은 불타올랐다. 그는 사람을 세우고 싶었다. 사회를 개혁해야겠다는 열망은 나날이 커져갔다. 그러나 제 아무리 대단한 화가라도 제1차 세계대전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자원하여 1915년 동부전선(the eastern front)에 참전했다가 브레멘의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1918년, 독일 11월 혁명으로 제정이 붕괴하고 민주정이 들어서자 그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예술가 코뮌을 세운다. 아쉽게도 실패하고 1931년, 포겔러는 사회주의의 심장인 소련으로 갔다가 다시 독일로 돌아오지 못한다. 1차 대전과 2차대전을 모두 겪은 불꽃같은 생애였다. 화가의 생애는 화가의 얼굴답다. 그는 날카로운 턱선을 가졌다. 그의 형형한 눈을 보는 이라면 누구든 뜨거운 염원을 읽으리라. 화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이어주고자 했다.


다시 그리운 음악으로 돌아가자. 《얼굴》은 자기를 부르는 이의 인연들을 이어주었다. 얼굴을 그리워하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윤연선은 말한다. “75년 발표한 노래 ‘얼굴’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이뤄줬어요. 작사가인 심봉석씨도 진짜 얼굴의 주인공과 결혼했고, ‘얼굴이라는 노래 덕분에 결혼했다’고 카페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도대체 내 사랑은 언제 이루어 주나 했는데 드디어 저한테도 차례가 왔네요.” 신기한 사례를 더하자면 신귀복 교사는 《얼굴》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계기로 만나게 된 제자들의 결혼에 주례도 여러 번 섰다고 한다. 그것 참 신기한 노래다.


세상에는 염원이 담기는 장소나 시간, 물건이 있는 것이 아닐까. 꼭 종교적인 신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묵주나 돌탑 같은 것이 있다고 하므로. 《얼굴》같은 곡도 그렇다. 어떤 방식으로나 사람의 마음이 담길 때 일은 이루어지고 귀한 물건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생애도 마찬가지다. 귀하게 여겨 간직한 마음이 그냥 허무하게 버려질 리는 없다. 마음이 머문 곳이라면 허투루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짓밟히기에는 인간의 마음이 너무나 귀하다. 외로운 사람을 위로했고 가난한 사람을 사랑했던 포겔러의 마음처럼. 지금 우리가 하인리히 포겔러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의 인생과 거기 담긴 신념 때문이 분명하다. 화가의 이 파아란 그림은 얼마나 깊은 그리움을 담고 있는가, 이 조용하고 서글픈, 겸손한 그림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나 그리운 마음을 소중히 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담겼다면 놀라운 인생은 어떻게든 만들어진다. 가늘고 연약하게 이어지고 끝끝내 완성된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한편,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얼굴》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고 “고맙다”기는커녕 핀잔을 들었다. “저보고 그렇게 오래오래 기다리라고요? 언니 정말 나한테 너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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