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낯빛

그림 안에 가두어둔 사랑의 얼굴

by 김수정
“이 분홍은 오직 사랑하는 남자만이 그릴 수 있는 낯빛이다.”

사랑의 세계도 자본주의 세상과 다를 바 없다. 그쪽 나라도 ‘빈익빈 부익부’가 확실하다. 늘 인기 있는 사람만 계속 연애를 하고, 인기 없는 사람은 계속 외롭게 지낸다. 돈이 돈을 부르는 것처럼 매력도 매력을 부른다. 그뿐인가, 재능도 재능을 부르고 지식도 지식을 부른다. 열 받게도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있다. 똑똑하고 잘생기고 성격도 봐줄만 하고 능력도 출중해 재정 형편도 좋은 사람… 굳이 나누자면 ‘빈자’에 속하는 나는 뭔가 좀 억울하다.


세상에는 확실히 ‘난 사람’이 있다. 뭘 생각해도 대단하고 뭘 말해도 감동적인 사람이 세상에 전설로 남는다. 19세기 프랑스에 그런 ‘난 남자’가 있었다. 인상주의자의 아버지, 수많은 화가 추종자를 낳았던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이다. 그런 잘난 사람들은 이성으로서도 매력적이다. 마네가 곁으로 끌어당긴 여성들은 마네를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사랑에 빠졌다. 마네도 마다하지 않았다.


에두아르 마네의 여성편력은 대단했다. 화가는 수잔이라는 아내가 있던 처지였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 두 살 연상의 수잔 렌호프Suzanne Leenhoff는 원래 마네의 피아노 가정교사였다. 학생이었을 때부터 마네는 키가 크고 풍만한 체형의 수잔을 자주 그렸다. 아직 그럴싸한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잔은 온화하고 상냥한 성품으로 마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완벽한 숙녀 같았던 수잔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마네의 아버지 오귀스트 마네의 숨겨진 애인이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당대 교양이 있던 가난한 여자가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은 수녀 말고는 가정교사였다. 그런 그녀에게 주인이 손을 내밀었을 때 선택권이란 것이 있었겠는가. 수잔이 가진 아이는 애물단지가 되었고, 아버지 마네는 아들 마네에게 수잔과 결혼하기를 종용했다. 원래라면 동생이 되었을 ‘레옹’이란 남자아이는 졸지에 형의 아들이 되었다. 곧이어 마네는 수잔과의 동거를 선택했다. 1862년, 부친이 사망하고 정식 혼인신고를 하기 전까지 둘은 서로를 기대며 살았다. 위태했던 수잔의 인생은 겨우 자리를 얻었으나 내내 가시방석이었음에 틀림없다. 수잔은 그 때문인지 마네의 바람기에 (별수 없이) 관대했다고 한다.


또 다른 여자, 빅토린 뫼랑Victorine Meurent은 마네의 전위적인 작품마다 누드의 모델로 등장할 정도로 화가에게 헌신적이었다. 여신의 몸이 아닌 현실 여성의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누드는 어딜 가나 입방아에 올랐는데도 빅토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네와 함께했다. 마네가 점찍은 여자에게 모델을 거절당하자, “괜찮아, 나에게는 빅토린이 있으니까.”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마네는 누구에게나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었다, 남자로서도 선배로서도 그는 대단했다. 뫼랑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예술아카데미의 부설 수업에도 참가해 그림을 배우는 데 열중했다. 그림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뫼랑은 순식간에 살롱 입선을 할 정도로 성장했다. 때로 여자의 자아실현은 남자를 불편하게 한다. 꼭 들어맞던 관계는 흔들린다. 마네는 분명 나쁜 남자였다. 그저 모델이었던 여자, 늘 한 수 아래라고 여겼던 여자가 자신의 동료가 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일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림으로 인해 완전 종료되었다.


이 이기적이고 운 좋은 남자에게는 늘 새로운 애정의 바람이 분다. 때마침 새로운 프랑스 예술의 선봉장에 서 있던 마네를 존경하던 화가가 그에게 인사한다. 1868년 7월 살롱 드 파리에서, 앙리 팡탱 라투르의 소개였다. 매혹적인 그녀의 이름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 로코코 회화의 거장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의 증손녀이며 부유한 고위 공직자의 딸이었던 아가씨였다. 모리조는 바르비종파의 풍경화 거장 카미유 코로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루브르에서 허가를 얻어 선대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했다. 모리조는 이미 전통 있는 살롱에 세 번 출품한 경력이 있었고, 당대의 비평가 파울 란츠에게서 그림에 대해 좋은 평가도 받은 자신만만한 화가였다. 마네의 지도로 모리조의 그림은 크게 변화했고 그것은 마네 역시 (다른 의미로) 변화하긴 마찬가지였다. 곧 마네의 주인공은 바뀌었다. 마네의 그림 중 수잔은 다섯 번, 빅토린 뫼랑은 여덟 번, 그리고 베르트 모리조는 열한 번 등장한다. 마네는 베르트 모리조를 그리는 데 자신의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데 지치지 않았다. 그 열한 장의 그림 중에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바이올렛 부케를 단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with a Bouquet of Violets, 1872)」이다.

2 사랑은 디테일에 ● 5 사랑의 낯빛 마네_베르트모리조 Edouard_Manet_-_Berthe_Morisot_With_a_Bouquet_of_Violets_-_Google_Art_Project.jpg 에두아르 마네,「바이올렛 부케를 단 베르트 모리조」, 캔버스에 유채, 55.5×40.5cm, 1872, 오르세 미술관

검고 깊은 눈의 베르트 모리조를 만나면서 마네의 그림은 달라졌다. 이전 모델이었던 빅토린 뫼랑처럼 도발적인 눈빛을 살리고 과감한 신체 노출을 주저하지 않던 그림에서 벗어나, 노출 없이 절제된 포즈와 색채의 깊이감을 살리는 그림으로 변화하였다. 한 번 더 생각하니 마네는 더욱 나쁜 남자다. 마네가 모리조에게 다른 태도를 가지고 대한 건 베르트 모리조가 자신과 어울리는 부르주아 상류층의 여자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네는 동료 화가로서 모리조를 인정했다. 사람이란 그렇게 속물인 존재니 어쩌하겠나. 자신과 같은 위치에 선 사람에게 비슷한 눈높이를 발견하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이니.


어찌됐건 사랑이란 이름의 교통사고는 발생해 버렸다. 베르트 모리조에게 마네는 무한의 존경이었다. 마네에게 모리조는 확실히 성적 대상이 아니면서 영감의 원천 이상의 존재였다. 모리조가 마네의 숨겨진 연인이었다는 게 미술사의 정설인데, 문제는…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은 게 함정이다. 한 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깊이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받게 되는 것은 더욱더 놀라운 확률이다. 나는 마네도 모리조를 존경했다고 생각한다. 그림의 조형적 가치를 분석하면서 인정하게 되는 ‘이성적 존경’이 아니라, 베르트 모리조라는 존재에 대한 ‘본능적 존경’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냥 서로 알아보고야 마는 상대가 있지 않은가. 어떤 인간들은 더듬이가 좀더 긴 영적 동물이니까.


Edouard_Manet_-_Bouquet_Of_Violets_(14045636396).jpg

베르트 모리조가 그림을 위해 옷자락에 달았던 제비꽃을 마네는 한 번 더 그렸다. 「제비꽃 부케와 부채가 있는 정물화」는 모델이 되어 준 모리조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한 선물이었다. 이즈음 유럽에서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꽃 파는 아이들이 이 작은 부케를 주로 팔았는데, 남자들이 에스코트하는 여자에게 사랑과 존경의 표시로 선물하곤 했다. 제비꽃은 아테네 여신을 상징한다. 총명하고 강인하면서 모든 승리를 거머쥔, 그러나 영원한 처녀로 남은 고결한 여성이다. 남자가 이 작고 향기로운 여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한편으로 제비꽃은 제우스의 숨은 애인이었던 이오를 상징한다. 사랑하지만 떳떳이 만날 수 없는 비극 가운데 핀 꽃이다.


폴 발레리는 1932년의 오랑제리 회고전에서 이 그림을 다음과 같이 극찬한다.


“마네 최고의 작품을 내가 선택한다면, 1872년의 베르트 모리조 초상화다. 검정을 사용한 효과, 단아한 배경, 여자의 밝은 피부는 창백함과 장밋빛을 함께 머금고 있다. (중략) 알 수 없이 어딘가를 깊이 바라보는 커다란 눈망울은 얼굴과 함께 진지하면서도 방심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를테면 ‘부재의 현존(a presence of absence)’인데, 그림의 모든 것이 합하여 특별한 시(詩)의 느낌을 자아낸다. 이 그림은 한 편의 시다. 색은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불협화음을 만드는가 하면, 별 가치를 못 느낄 최신 헤어스타일의 묘사, 표정에서 나오는 애매함과 약간 비극을 경험하는 느낌이 대조적이다. 마네는 명확하고 굳은 양식 가운데 신비로움을 담아 작품이 공명한다. 마네는 모리조가 가진 독특하고 추상적인 매력을 확실히 나타냈다. 그림 속 여자에게는 모리조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낯선 누군가 같은 감정이 드러난다.”

_자비에르 질 네레 『에두아르 마네』, 마로니에북스, 2006


그림 안에 가두어둔 사랑을 글로 꺼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다행히 ‘비밀의 연인’이 떠나간 이후에도 있었다.


두 사람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 비스듬히 연결한 가족이 되기로 한다. 1874년 12월, 베르트 모리조는 에두아르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Eugene Manet와 애정 없이 결혼한다. 두 사람의 친구였던 조지 무어는 탄식했다. “마네가 이미 결혼하지 않았다면 모리조와 틀림없이 결혼했을 텐데.”(이영선, 『프랑스 미술관 산책』, 시공아트, 2016) 어떻게든 두 사람은 평생 곁에 선 채로, 느슨히 이어진 채로 끝까지 간다. 1883년 마네가 매독으로 사망하게 될 때까지 그랬다. 남자는 여자를 떠나갔다. 55년의 짧은 생이었다. 남자가 세상을 등진 후, 여자는 그의 무덤 옆에 자기(와 외젠 마네)의 무덤자리를 마련한다. 한편 남자의 남은 그림을 사들이고 그의 회고전을 적극적으로 기획한다. 마네에게 굴욕을 안겨주었던 「올랭피아」가 이 여자 덕분에 나중 오르세에 입성했다. 드가가 오랫동안 모은 그림들로 ‘드가 미술관’을 만들까 잠시 고민할 때 마네의 작품을 더 소장하라며 적극 추천했다. 모리조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마네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졌고 미술사의 평가도 달라졌다.


마네 사후 10년 후인 1894년, 모리조는 드디어 이 제비꽃 초상화를 다시 손에 넣는다, 의외로 마네는 이 그림을 그녀에게 선물하지 않았다. 미술 평론가 테오도르 뒤레Theodore Duret가 소중히 지켜온 그림을 양보해 주었다. 모리조는 기쁨의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1년 후인 1895년, 그녀는 평안히 눈을 감는다. 이제 다 이루었다는 듯, 더 바랄 게 없다는 듯. 이제 그에게 기쁘게 돌아가겠다는 듯.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그리고 성실하게 지속해 온. 지독할 만큼 강인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1998년, 이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에 자리잡는다. 검은 꽃 같은 그림을 소중하게 지켜 온 모리조-마네 집안에서도 간곡한 오르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술을 위해 태어난 두 사람은 서로를 인하여 더 넓은 예술로 다가선다. 투명한 빛 가득한 활달한 붓질을 지닌 성실한 인상주의자 베르트 모리조, 이 사랑스러운 여자 때문에 마네는 외광회화Pleinairism, 플레네리즘 : 실내의 인공 조명이 아니라 실외의 자연광을 통해 스케치를 하고 채색하는 그림에 관심을 가졌으며, 기꺼이 그녀가 속한 인상주의 그룹을 살피고 그 애송이 화파의 장점을 받아들였다. 여자는 남자의 그림 철학을 따라 자연의 색을 보수적으로 사용한다. 화면에서 검정을 버리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또 감탄했다. 남자의 영혼은 여자 아래 기꺼이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눈을 높이 바라보았다. 성심의 존경이었다. 존경하고 또다시 존경하고, 존경받고 또다시 존경받는 사랑, 더없이 완벽한 사랑이다.


다시 한 번 남자가 그린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라. 마네의 애정이 그림 표면에 코팅되어 있지 않은가. 다시 한 번 가슴으로 그림을 바라보라. 그림 위에 열띤 심장 박동이 겹칠되어 있지 않은가. 이 분홍은 오직 사랑하는 남자만이 그릴 수 있는 낯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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