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내 편 하나

이 용기는 예술에 깃든 인간애의 거대함이다

by 김수정
“지금 나에게는 예리한 조언보다 온전한 내 편이 되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철한 사람이 있다. 갑작스러운 일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웬만한 일에는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계획대로 살아가는 사람. 내가 닮고 싶은 인간형이다. 그 말은 나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뜻. 아쉽게도 나는 천성이 그렇지 못해서 자주 휘청거린다. 해결하기 버거운 문제가 생기면 별수 없다. 멘붕 상태의 나는 동굴에 들어간다. 혼자 벌벌 떨리는 팔다리를 주무르다 축 늘어져 잠이 들고, 동굴 속 싸늘한 냉기에 뒤척이다 일어나 빼꼼 밖을 살핀다. 엉금엉금 일상으로 돌아간다.

잘 아는 상담 선생님은 이런 내게 ‘긴장을 좀 풀고 사람에게 의지하라’는 조언을 주셨다. ‘저도 그러면 좋겠죠’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다들 각자의 문제를 꽁꽁 끌어안고 힘겨워하지만 어디 잠깐 내려놓을 장소도 없다. 언제든 받아주겠다고 선뜻 말해주는 사람도 잘 없다. 예수님도 머리 둘 곳이 없으셨다는데 부족한 인간이 뭘 바라겠는가. 내 어려움을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게 욕심이다. 그들도 각자의 문제가 버거울 텐데 내 문제까지 더하기도 미안하다. 차라리 고양이 카페에서 신나게 노는 게 ‘민폐 없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때때로 누군가가 나를 찾아온다. 깊은 밤 전화를 걸어오기도 한다. 솔직히 가끔은 힘겹다. 내 마음이 지쳐 탄력 없을 때에는 고민을 듣기 버겁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의 문제는 잘 해결되지 않고 나는 한두 번이 지나면 더 이상 조언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왜 그들의 전화를 받는가. 왜 조목조목 말을 얹지 않는가. ‘오죽하면’이라는 인생의 연약함을 약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참다 참다 이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하겠느냐는 외로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슬픔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림 하나가 있다.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그림 「포옹(The Embrace, 1923)」에는 한 인간의 연약함과 한 인간의 따뜻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교적 유명하지 않고 구성이 단출한 이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는 정직함에서 나오는 꾸밈없는 위로 때문이다.


diegoriv1923a.jpg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는 ‘가장 멕시코적이다’라는 평가를 받는 멕시코의 국민 화가지만, 멕시코 밖에서는 프리다 칼로의 바람둥이 남편으로 더 유명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욕을 먹는 남편이 디에고 리베라일 것이다. 분명 그는 귀가 시끄러워 무덤에서도 편치 않으리라.


리베라는 멕시코의 광산도시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어린 나이에 재능을 보여, 12세의 나이에 국립 미술학교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화가는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등으로 유학하여 그림을 배운다. 이탈리아에서는 프레스코 벽화를 감명 깊게 보았다. 1910년경에는 다시 파리로 돌아가 신진 화가들의 모임인 파리 파 화가들과 교류하였다. 큐비즘을 만든 피카소Pablo Ruiz Picasso와 브라크Georges Braque와 가까이 지냈으며, 시인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는 리베라를 깊이 흠모하였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와는 잠시 같이 살기도 했다. 당시 입체주의에 관심을 가졌던 리베라는 피카소에 비견될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변방국가의 화가가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았다. 1921년, 화가는 고국으로 돌아온다. 멕시코는 혁명의 진동이 감돌았다. 지난 독재에 반발해 일어난 1910년의 멕시코 혁명은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성공했으며, 1920년에는 오브레곤 정권이 들어섰다. 멕시코 혁명의 특징은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사회주의 혁명이라 하면 러시아 혁명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그보다 먼저 멕시코에서 선구적인 사건이 있었다. 정권은 가난한 민중에게 토지를 분배했고 교육에 가치를 둔다. 인디오 전통도 보존하고 확대하고자 한다. 가슴이 뜨거운 리베라의 시대가 왔다. 화가는 세상에 뛰어들었다. 서구 유럽의 전통과 완연히 다른 멕시코의 전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리고, 멕시코 국민의 정체성을 우뚝 세우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믿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보존성이 좋아 공공의 장소에 오래 버틸 수 있는 프레스코 벽화였다.


디에고 리베라는 시케이로스와 함께 멕시코의 벽화 운동을 열어간다. 당시 멕시코는 앞서 일어난 혁명의 기운이 지속되고 있었고 삶은 혼돈에 가득 차 불안했다. 가난한 국민들은 문맹률이 높았다. 자연히 민중의 자존감도 높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스레 교육에 대한 요구도 커져갔다. 언어보다 이미지가 빠르다. 리베라는 주저할 틈 없이 행동했다. 사람들이 오가는 곳, 가장 넓은 벽 위에 사람들을 압도하는 크기와 빽빽한 밀도의 벽화를 그림으로서 멕시코가 얼마나 크고 거대한 나라인지, 이 나라의 민중이 얼마나 유연하고 강인한지를 알렸으며. 이 민족은 압제에 끝까지 지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멕시코의 민중 예술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건전한 영혼의 표현이다”라고 외치는 화가가 그려낸 인물형의 단순성과 투박한 색채감은 멕시코의 전통과 특유의 국민성에 닿아 있다. 건물 곁을 오가는 민중은 디에고의 벽화에 자부심을 가졌다. 빽빽한 인물 가운데 숨어 있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림을 지켜보는 이마다 마음이 뜨거워졌다. 멕시코인으로서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자라났다. 멕시코 벽화 운동은 20세기 현대미술에서 괄목할 만한 유파였고, 예술과 정치가 결합된 파워풀한 운동이었다.


3 담담한 표정 ● 5 온전한 내 편 하나 SEP_Embrace (cut).jpg 디에고 리베라, 「포옹」, 프레스코, 1923 동쪽 벽, 멕시코 교육부 노동 법원, 멕시코시티


「포옹(The Embrace, 1923)」은 디에고 리베라가 멕시코에 돌아와 벽화 운동을 시작한 초기 그림이다. 멕시코 벽화는 아즈텍 문명의 그것처럼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고 단순화된 형태를 추구한다. 동글동글한 인물형은 담대하고 단단한 멕시코의 민족성을 드러낸다. 그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남자가 한 남자를 찾아와 무너져 내리고 있다. 화면에는 저 멀리 황량한 풍경이 비치고 두 사람은 꼭 끌어안아 하나가 되어 있다. 허름한 멜빵바지 차림의 남자는 집을 나서 먼 길을 걸어 망토를 입은 남자에게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반대로 힘겨운 남자를 위해 위로하고픈 남자가 신속히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가만히 아픈 이의 곁에 있을 뿐이다. 멕시코 특유의 큰 밀짚모자는 언뜻 후광처럼 보여 슬픔을 안아주고 있는 남자를 성자처럼 보이게 한다. 그림은 투박하고 구석구석 정확하지 않은 인체 비례가 보이지만 위로의 따뜻함만큼은 보는 이에게 전달된다.


그림에서처럼 단 한 사람의 위로는 절대적이다.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사람은 하루를 버틸 용기를 얻는다. 누군가가 자신의 고통을 대신 겪어줄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시간과 장소를 내어 곁에 머무를 만큼 자신은 가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신형철 평론가는 이영광의 시 「사랑의 발명」을 빌어, ‘불가능과 무의미에 짓밟힐 때’ 고통스러워하는 이 곁에 선 한 사람에 대해 말한다.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_이영광, 「사랑의 발명」, 『나무는 간다』, 창비, 2013


화자에게 그는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이라도 그럴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나라도 곁에 없으면”을 골똘히 들여다본다. 속으로 무심코 저 생각을 했다가 스스로도 놀라버렸을지 모를 한 사람을 생각한다. 내 앞에서 엉망으로 취해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나라도 곁에 없으면 죽을 사람’이라는 말을 ‘내가 곁에만 있으면 살 사람’이라는 말로 조용히 바꿔보았을 한 사람 말이다.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사람을 계속 살게 하고 싶다고, 내가 그렇게 만들고 싶다고 마음먹게 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이 세상에는 한 인간에 의해 사랑이 발명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동정이 아닌가? 사랑과 동정을 혼동하지 말라는 충고를 우리는 자주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요즘 나는 사랑과 동정이 깊은 차원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특정한 요소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동정이라면 말이다.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안쓰러워 그 곁에 있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을 사랑이 아닌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더 정확할 수 있단 말인가.


_신형철 《무정한 신 아래에서 사랑을 발명하다》(신형철의 격주 시화隔週詩話) (2016.08.12)


내가 부러워하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철한 사람’에게는 이미 그런 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라면 험한 세상에 흔들림 없이 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겠는가. 그것을 꼭 집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마음이 능력이라는 것. 연약하게 흔들리는 존재를 안쓰러워하는 한 사람의 마음은 한 사람을 살릴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우뚝 서 강인하게 한다.


우물쭈물하는 내 성격을 고치라는 조언은 익히 다른 사람에게서 들어왔다. 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인 방안 같은 것은 그간 읽었던 책에서 잔뜩 밑줄 쳐 두었다. 마음을 다룬다는 심리학 책, 좌절에서 일어나 맹렬하게 도전해야 한다는 자기 계발 서적은 이미 백 권도 넘게 읽었다. 너무나 잘 안다. “구원은 셀프”라서 이 어려움은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다만 지금은 두 주먹을 꼭 쥐고 일어날 엄두가 안 난다. 지금 나에게는 예리한 조언보다 온전한 내 편이 되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지금 이 감정이 판단 오류에 의한 것인지 비합리적 신념에서 온 것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머리를 써야 하는 노동과 마음을 써야 하는 불안 없이 두려움을 내려놓을 자리가 필요하다. 잠시라도 좋으니 나만을 위한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사람만큼은 믿음직한 내 편이 되어 주어도 좋지 않을까.


가식 없는 디에고 리베라의 「포옹」은 ‘한 사람’을 더 생각하게 한다. 인간관계에 서투른 인간조차도 인간의 마음을 믿어보고 싶게 한다. 내가 그 한 사람이 되어보겠다는 용기를 갖게 한다. 이것이 내게는 예술의 위대함이며 예술에 깃든 인간애의 거대함이다. 화가는 분명 이 마음을 바랐으리라. 우리가 언제나 예술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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