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리 가볍게 바라는가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어렵다. 그러니 내가 믿는 것은 하나뿐이다.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랑’이라고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 쪽을 믿는다.”
“나 결혼해.”
정민의 뜬금없는 메시지에 깜짝 놀랐다. 문자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정말 축하해.”라는 말을 건네자 정민은 조심조심 자기의 사연을 풀어놓았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똑똑하고 잘생긴 예비 신랑 말고는 뭐 하나 추천하기 어려웠다. 사연은 들을수록 쉽지 않았다. 진심으로 말리고 싶은 시댁의 경제적 어려움을 들었다. 매달 생활비를 부쳐 드려야 한다고 했다. 원래 뼈대 있는 집안 분이시라는 시어머님과 시아버님도 꽤 까다로우셨다. 처음 두 분을 찾아뵈었을 때 분위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그뿐인가, 결혼하면 남편 직장 따라 서울을 떠나야 한다고 들었다. 낯선 곳에서 많이 외롭겠지만 그것만큼은 다행이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그녀에게 꼭 필요한 활력을 주겠지. 그래도 정민은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한다. 오랫동안 노력해 쌓은 경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거의 만날 수 없겠구나.” 이렇게 먼 곳으로 시집간 친구들과는 대개 그랬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결혼이라니 70% 찬성이야.”라고 말하니 정민은 무척 기뻐했다. 자신의 사연이 워낙 복잡해서 열렬히 축하해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고 했다.
‘솔직히 말렸어야 하나.’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했다. 그러나 정민의 외로운 시절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리 말할 수 없다. 정민은 오래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시절마다 홀로 굽이굽이 어려움을 겪느라 힘겨워했다. 겉으로 드러난 예비 신랑의 단점은 아무 것도 아닐 만큼 결정적인 확신이 그에게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어려움을 겪어왔기에 그의 어려움을 함께 겪어주고 싶을 만큼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정민이 예비 신랑의 어려움을 알았을 때 얼마나 고민했을까, 애정이란 것은 그 모든 것을 견뎌보겠다는 마음을 만든다. 그런 기적적인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랑의 신비이다. 그렇게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사랑을 믿을 수 있을까, 사랑은 지극히도 현실적인데. 심지어 내 나이쯤 되면 ‘첫눈에 반해서’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결혼이 최고의 사치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서른에서 마흔 사이, 결혼적령기를 넘어버린 남녀의 연애는 절반 이상이 비슷하다. 친구들과 어른들의 카톡 사이에서 사진과 프로필이 오간다. 기회가 닿는 대로 줄줄이 소개받는다. 나이가 맞으면 무조건 만나야 한다.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얼굴과 직업, 거기에다 집안(의 재력?)이다. 남녀가 ‘조건’이 맞으면 (아무 느낌이 없어도) 일단 세 번은 만나보고, 연애를 ‘결정’하고, 정을 들이고, 뜨거운 사랑은 아니라도 따뜻한 감정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상례다. 오래 만나서 익숙해지면, 혹은 정들면 ‘결혼할 만큼은’ 좋아진다고 한다. 물론 그것도 사랑이 아니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유 없이 누군가가 마구 좋아지는’ 사랑 쪽은 아니리라.
물론 ‘이유 없이 좋은 사람’과 하는 사랑이라 해도 완벽한 사랑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사랑을 믿고 싶고, 자신의 사랑만큼은 영원하기를 바란다. 누구나 온전한 사랑을 원하고 사랑의 기한이 끝없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가, 사랑은 현실에 있기에 현실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사랑은 재설정된다. 이별을 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면서도 영원한 사랑이란 거의 불가능하기에, 영원에 가까워진 사랑은 가치가 있어 그 이름에 ‘기적’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이다.
여기 내 친구 정민과는 다른 경험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던 화가, 프랭크 버나드 딕시가 그린 그림 「고백」안의 주인공이다.
흰 얼굴의 여자가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간절함이 드러난 옆얼굴이다. 축 쳐진 팔과 손등은 여자의 간절함을 더 강조한다. 여자는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남자에게 말했다. 그림만으로는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어려운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용기를 내야 했다. 남자는 오른 손을 들어올려 머리를 짚는다. 이마를 괸다. 남자의 뒤틀린 손은 고통스럽게 보인다. 화면은 양분되어 있다. 어두움과 밝음 사이에는 두 사람의 단절이 있다. 여자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에게 한 치 다가섰지만 남자는 두려움을 느껴 한 치 뒤로 물러난다. 아무래도 이 고백은 슬퍼질 것 같다.
라파엘 전파와 친밀히 지냈던 프랭크 버나드 딕시 경Sir. Frank Dicksee. 1853~1928은 예술적 유산이 풍부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친의 뒤를 이어 화가가 되었다. 비단 프랭크 뿐 아니라 형제 모두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딕시는 1871년, 로열 아카데미의 학생이 되었고 연이어 상을 타며 두각을 나타낸다. 그의 소묘와 색채 표현을 보면 어디에서라도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 이상할 것이다. 화가는 빅토리아 시대의 유행과 더불어 로맨틱한 중세의 기사와 공주, 문학작품의 주인공을 화폭에 옮겼다. 당시는 햄릿의 시대였다. 비극의 주인공이 낭만적 유행을 선취한 때이기도 했다. 자연히 성경과 신화, 중세 문학이 주제가 되었고, 딕시의 재능은 빛을 발했다. 기쁨에 넘친 인물의 형태가 아름다웠고, 극적인 상황을 잘 포착해 연출했으며, 역사적 고증을 살린 의상을 풍부한 색채와 완벽한 조형미로 표현했다. 시대를 잘 타기도 했지만 딕시의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실 모든 성공한 예술가는 매력적이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매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는 것이 예술의 영역이다. 화가는 1881년, 로열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되었고, 정회원을 거쳐 1924년에는 의장이 되었다. 딕시는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을 만큼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나 사랑을 고대하나. 젊거나 나이가 들거나 사람들은 늘 사랑을 고대한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들도 사랑을 고대하고, 백 살이 넘으신 어르신도 사랑을 고대한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괴로움이 해결될 것 마냥 연애사건을 바라고 또 바란다.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리 가볍게 바라는가.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어딘가에서 본 쪽지 한 장을 잊지 못한다. “지석아, 너랑 하는 연애는 너무 즐겁고 고통스러워. 그래도 계속되길…” 나는 이 문장이야말로 연애의 현실 같다. 인간사가 어려워질수록 사랑도 어려워진다. 세상 일이 복잡해질수록 사랑도 복잡해진다. 인간의 삶이 어렵고 고된 일이라면 사랑 역시 어려운 일이다. 사랑의 열정을 강조하는 수많은 환상에 ‘홀리는’ 순간들이 많으나, 육신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사랑이 어려운 것을 금방 알아버린다. 그래도 어떻게든 계속되기 원하는 것이 사랑의 신비다.
참 허무하게도 사랑은 현실에 기반한다. 열렬한 사랑이 그 명맥을 유지하려면 최소한의 공기와 땔감, 온도가 있어야 할 터이니. 흰 옷의 여자는 어떤 현실적인 고백을 한 것일까. “나는 불치병을 앓고 있어요.” 혹은 “나에게는 오천만원의 빚이 있어요.” “나는 아주 어린 동생을 책임져야 해요.” 남자는 어떤 대답을 할까, “오래 아팠겠어요. 이제는 그게 우리 앞날에 어려움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혹은 “정말 어려운 일이네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무 힘든 말이네요. 내게 시간을 줄래요.” 물론 이 모든 대화는 진실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 이 어려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서 그의 사랑이 진짜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랑하므로 이 어려움을 무조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는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사랑에는 일방성이 있을 수 없으므로. 다만 사랑의 이름표를 붙인 채 가끔 기적이 일어나는 것뿐이므로.
딕시가 그려낸 남자는 고통스럽다. 그는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남자의 감정은 선연하다.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던 두 사람, 그들의 사랑이 계속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절절한 마음은 남겨진 이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나의 친구 정민은 대단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끝까지 가 보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이므로.
어쩌면 결혼이란 계속해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기만 하는 그런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한번 저질러보려고 한다. 아직 어린 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설레는 마음만으로 혼자서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그대로 밤을 지새울 수도 있었던, 그런 그녀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뭐 하여간 대단한 행운이니까. 그리고 그 정도 행운이 주어져 있다면, 너와 함께 겪는 고난은 언제나 해볼 만한 도전이고, 너의 손을 잡고 같이 가는 역경은 항상 새로운 모험이지 않겠냐고.
나는 대답했다.
“예.”
_곽재식,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온우주 출판사, 2013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어렵다. 그러니 내가 믿는 것은 하나뿐이다.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랑’이라고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 쪽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