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그림 같은 모습과 사랑 같은 그림
“사랑이 불가능한 처참한 현실에서 ‘그 사람’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기꺼이 살아간다.”
갑작스러운 폭발사고로 인해 오랫동안 혼수상태로 있다 깨어난 X, 그는 모든 것을 잃었음을 발견했다. 사업도, 집도, 부모도, 가족도. 남자는 눈을 뜨지 않기 바랐다.
꽃 같은 나이부터 십오 년의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A,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건강도, 학업도, 돈도, 행복도. 여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허름하고 단단한 단지 같은 남자와 위태로운 유리컵 같은 여자가 암흑 가운데 서로를 발견했다. 희망 없는 세상에서 한 줌 빛 같은 사랑이 손을 내밀었다. 어둠 가운데 사랑은 손을 잡고 사랑은 침묵한다. 이렇게 어둠으로 젖어드는 유일한 그림 한 장 같은 인생이라면 무슨 파격과 무슨 명성을 바라겠어, 어둠은 눈을 뜨고 ‘아름답다’ 조용히 고백한다. 나는 오랫동안 두 사람을 알아왔다. 두 사람이 어떤 그림 같은지 내내 보아 경험했다. 슬픈 남자와 연약한 여자가 만나면 조용하고 따뜻한 공간이 피어난다. 존재와 존재만으로, 그렇게 달라지는 공기가 있다. 사랑의 이름을 가진 것은 그렇게도 자기를 드러낸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면 샤르댕의 정물화를 본다. 아픔이 들려올 때에도 샤르댕의 정물화를 찾는다. 나에게 샤르댕의 정물화는 낮은 곳에 걸린 종교화 같다. 그림 한 장이 생활을 경건하게 한다. 그는 정물화를 하나의 장르로 독립시켜 ‘정물화의 시조’로 불리는 화가, 18세기 프랑스, 페트 갈랑트fetes galantes, '우아한 연회'라는 의미로 로코코 미술을 관통하는 지상·쾌락주의 예술 주제로 가득하던 로코코 시대에 심성을 다스리는 단정한 정물화를 그린 화가다.
‘정물화의 아버지’ 장바티스트시메옹 샤르댕Jean-Baptiste-Siméon Chardin, 1699~1779은 목가구 장인의 아들이었다. 차분한 갈색의 정조를 가진 화가의 그림에 꼭 어울리는 집안 분위기였으리라.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눈여겨보았다가 상 뤽 아카데미에 보내주었다. 작은 화가는 여기서 아낌없이 빛을 발하고, 특별히 미묘한 색조를 사용하는 데 재능을 보인다. 마스터의 도제로 공방에서 일하면서 샤르댕은 자기 세계를 찾아간다. 영웅의 모습과 종교의 웅장함을 담은 역사화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 그는 인문학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으므로 역사화의 알레고리를 잘 몰랐다. 게다가 재빠르게 흐트러져 화려하게 반짝이는 로코코 스타일 붓질은 샤르댕에게 맞지 않았다. 오래 관찰해서 차분하고 자세하게 묘사하는 치밀한 붓질이 그의 손에 맞았다. 자연히 궁정화가가 되어 입신양명할 미래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저 ‘샤르댕 표’ 자기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특별히 그의 마음을 끈 것은 인간의 삶, 그 중에서도 치장하지 않은 맨얼굴의 일상이었다.
그는 소박한 서민의 부엌 풍경과 거기 굴러다니는 식재료, 주방도구들을 좋아했다. 출세와는 거리가 먼 장르를 그는 사랑했다. 사람과 사물의 성실한 마음을 사랑했다. 그는 첫 번째 아내를 잃고 재혼할 때까지 십년간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림을 했다고 한다. 자연히 검소한 삶을 추구했으며 일상을 간절히 살피게 되었으리라. 1720년대에 이르러 그만의 정물화가 속속 등장한다. 놀랍게도 1728년에는 가오리를 그린 거대 정물화로 왕립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역사정신을 담은 그림과 생동감 넘치는 화려 귀족 그림만 중요시하던 시대에 죽어있는 사물을 그린 그림이 정식으로 인정받다니, 그는 ‘동물과 과일에 재능 있는 화가’라는 별명을 얻는다. 샤르댕의 노력과 정성이 큰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샤르댕은 후대 화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중 「가오리」는 이후에도 세잔과 마티스의 그림으로 재탄생하기도 했고, 마네와 샤임 수틴도 이 작품을 인용해 그림을 그렸다.
샤르댕은 정물 안에 애정을 담았다. 단정한 붓질, 따뜻한 색채. 그 모든 것이 일상을 사랑한 그의 손에서 흘러나왔다. 샤르댕은 대상을 오래오래 관찰했다. 가장 조화로운 모습으로 화면을 구성하려고 몇 번이고 대상을 매만졌다. 빛과 그림자의 강약과 아련함을 옮겨왔다. 마티스는 말한다, ‘샤르댕은 사물의 감정을 그리는 화가’라고. 감정은 순간에 머물지 않는다, 쉽게 휘발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감정을 담으려면 오랜 시간을 들여 붙잡고 또 붙잡아야 한다. 감정을 담은 그림은 차가울 수 없다. 샤르댕의 그림에서만 드러나는 온도는 그의 성심誠心 때문이다.
특히 마르셀 푸르스트는 샤르댕을 사랑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일상의 소소함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때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탄생한다는 샤르댕주의가 허구의 인상주의 화가 ‘엘스티스’의 말로 반복된다. 푸르스트는 샤르댕이 ‘사물의 본체를 그리는 화가’라고 말한다. (미술비평가로도 유명한 그는 소설을 쓰기 전에 「샤르댕과 렘브란트Chardin et Rembrandt」라는 미완성의 에세이 하나를 남겼다. 1895년경, 푸르스트는 샤르댕 부분은 완성했으나 후반부 렘브란트 부분을 거의 쓰지 못했고, 이 에세이는 그의 사후 1954년 5월에 『휘가로』지에 처음으로 발표된다.)
“우리는 샤르댕을 통해 배웠다. 복숭아는 한 여인처럼 생명력이 넘치고, 허름한 질그릇은 귀한 보석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샤르댕은 모든 사물을 대하는 영혼과 이를 감싸는 아름다운 빛에서 모든 것이 신적인 평등함을 갖는다고 선언했다. 그는 우리를 현실로 안내함으로서 거짓 허상에서 해방시켰다. 관습적인 아름다움 혹은 인위적인 취향이 아니라, 자유롭고 강하고 범세계적인 아름다움을 현실에서 발견하게 해주었다.” Nous avions appris de Chardin qu'une poire est aussi vivante qu'une femme, qu'une poterie vulgaire est aussi belle qu'une pierre précieuse. Le peintre avait proclamé la divine égalité de toutes choses devant l'esprit qui les considère, devant la lumière qui les embellit. Il nous avait fait sortir d'un faux idéal pour pénétrer largement dans la réalité, pour y retrouver partout la beauté, non plus prisonnière affaiblie d'une convention ou d'un faux goût, mais libre, forte, universelle: en nous ouvrant le monde réel, c'est sur la mer de beauté qu'il nous entraîne. (Proust, 1971, p.380)
_ 마르셀 푸르스트, 「샤르댕과 렘브란트Chardin et Rembrandt」, 연대 미상 (직접 번역)
만약 내가 샤르댕을 주제로 글을 쓴다면 샤르댕의 정물이 인물 같다 주장할 것이다. 정물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인물처럼 고상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생명이 머문 것처럼 단단하다. 단 하나도 흐물거리는 사물이 없다. 사물이나 사람의 귀천은 외모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누가 그를 빚었느냐, 그 안에 무엇이 담겼느냐로 정해진다. 그래서 이 정물화는 특별하다. 사람이 멈추어 정물이 된 것 같다. 이야말로 사람 그대로의 정물이다.
삶이 아무리 어두워도 아름다움의 본질을 가릴 순 없다. 모든 사물이 아름다울진대 어찌 그보다 귀한 사람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샤르댕의 그림을 보라, 빛 한 줌이면 아름다움은 제 존재를 주장한다. 숨 막히는 어둠의 시간이 흘러가면 숨길이 열리고, 눈이 열리면 기적처럼 투명한 빛이 보인다. 아픔이 짙은 사람에게는 어둠마저 경건이 된다. 어둠마저 사랑의 근원이 된다.
가끔, 최악의 상황에서. 사랑할 수 없지만 사랑하는 사랑을 본다. 그 사랑에 사로잡힌 이들을 본다. 남자와 여자, 혹은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그들이 누구이든 이 사랑은 불가사의하다. 어려운 사랑인데 진짜 사랑이다. 단단한 사랑이다.
세상에 사랑은 흔하고 흔하지만 여간 끊어지지 않는 사랑은 드물다. 너무 많은 사랑이 조건에 매였다. 흔한 세상의 말, 말, 말들. “감정은 변하지만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충고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가끔 생각한다. 그럼 최악의 조건에 발목이 묶인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을 하게 되는 걸까? 내가 아는 사랑은 시궁창에서도 자라나는 것인데. 상대의 외모를 보고 경제력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들. 생활의 조건이 바뀌면 그들은 그들이 믿는 사랑을 계속할 수 있을까?
존 버거의 소설, 『A가 X에게』는 내가 아는 한 최악의 상황에서 가장 기적같은 사랑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이중종신형을 받아 감옥에 간 테러리스트 사비에르와 그를 기다리는 약사 아이다. 이 소설은 아이다가 사비에르에게 보낸 편지글로 엮은 소설이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한편 만날 기약조차 없는 남자와 여자. 심지어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면회조차 불가능했고, 그 남자의 편지를 받을 수도 없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편지를 보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저 편지 뒷면에 메모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데.
아이다는 말한다. 당신을 만날 기약은 없지만 당신은 존재하고 있다고. 시간은 존재를 결코 가릴 수 없다고.
“희망과 기대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처음에는 그저 지속되는 시간에서만 차이가 있는 줄 알았죠. 희망이 좀더 멀리 있는 일을 기다리는 거라고 말이에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기대는 몸이 하는 거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거였어요. 그게 차이점이랍니다. 그 둘은 서로 교류하고, 서로를 자극하고 달래주지만 각자 꾸는 꿈은 달라요. 내가 알게 된 건 그뿐이 아니에요. 몸이 하는 기대도 그 어떤 희망만큼 오래 지속될 수 있어요. 당신을 기다리는 나의 기대처럼요.
그들이 당신에게 이중종신형을 선고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그들의 시간은 믿지 않게 되었어요.”
_존 버거, 『A가 X에게』, 열화당, 2009
한편 내가 아는 또다른 사랑, 사비에르와 아이다의 미래였으면 하는 또다른 연인을 기억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결혼식을 올리고 고작 열흘 후에 차가운 감옥에 갇혀야만 했던 정치인 남편과 같은 고통을 겪으려 어두운 냉골에서 기도만 올리던 아내. 기약 없는 수감 생활 중에서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보낼 수 있는 작은 엽서 한 장에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한 1만 4천 자의 편지를 쓰던 남편과, 그 한 장을 기다리며 거의 매일 편지를 쓰고 “당신을 사랑하는 희호”라고 끝맺음하던 아내는 6년여간의 암흑 끝에 살을 맞대고야 만다.
김대중 대통령이 생의 마지막을 예감하며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고 말했던 찬란한 고난의 인생에, 만약 그 사랑이 없었다면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다”라는 문장은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남편은 확실히 말했으니까, “나는 늘 아내에게 버림받을까 봐 나 자신의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라고.
대체 사랑은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이리도 강한가, 무엇이기에 이리도 쉽게 무너지는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온몸을 던진 사람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하게 된 사람들을 믿는다. 내가 아는 A언니와 X오빠 같은 그들을. 그들에게 나는 기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름의 축복을 던진다. “그들이 죽었든 살아 있든, 신께서 그들을 지켜 주시기를 바라며”라는 존 버거의 기도를 함께한다. A와 X를 떠올리며 진심으로, 그들의 사랑이 안전하기를 바란다.
샤르댕의 그림 앞에 마음을 놓은 오늘도 A언니와 X오빠를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그림 같은 모습과 사랑 같은 그림을 생각한다. 불가능한 시간과 조건은 어찌하든 삶 아래 있고, 목숨만 붙어 있으면 삶은 꼭 집어 사랑이라는 빛으로, 결국 인간을 빛나게 한다. 사랑이 불가능한 처참한 현실에서 ‘그 사람’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기꺼이 살아간다. 사랑이 살아 있어서 우리는 결국 행복하다. 그러하니 삶에 시간을 더하면 너무나도 사랑이다. 끝내 돈은 안 와도 건강은 안 와도, 살아만 있으면 그 누구에게라도 사랑만은 찾아온다. 결국, 결국, 결국. 찾아오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