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하고 원망하건대, 그럼에도 분명 지금은 아름다운 나날이다
“현재의 삶이 혼란스럽고 갑갑하다면 곧이다. 외로워서 죽을 것 같다면 이제 금방이다. 곧 원망은 섬광처럼 뒤바뀔 것이다. 간절히 꿈꾸던 바로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시절로 뒤바뀔 것이다. 세상천지 아니라고 외쳐도 이 몸만큼은, 나만큼은 꼭 그렇게 믿어주어야 한다.”
처음 대학에 입학해 수강신청을 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수강신청지에 전공필수 과목을 또박또박 펜으로 눌러쓰던 순간을. 아름다울 것이라 믿었던 대학생활은 낭만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순식간에 세상이 바뀌어 버렸다. 바로 다음 학기에 인터넷으로 학번과 주민번호 뒷자리를 입력해서 수강신청을 하던 순간은 또 달리 잊을 수 없다.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몰라서 컴퓨터실 조교님을 붙들고 “인터넷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던 그 간절함이 떠오르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당시 나에게 인터넷은 일종의 재앙이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사이의 세대, 그것이 아마 나 같은 ‘낀 세대’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말이리라. 이제는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내가 한참 그림을 공부하던 시대에 그림을 볼 수 있는 방식이 화집 아니면 슬라이드뿐이었다는 것을. 졸업할 때쯤이나 되어서 파워포인트가 조금씩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 때는 컬러 인쇄된 그림 한 장 한 장이 지극히도 귀했다.
꽉 막혀 있는 계단식 강의실에 빽빽이 붙어 앉은 학생들 사이로 교수님은 계단을 올라가신다. 중층에 설치된 슬라이드에 둥근 트레이를 끼우신다. 도우미 학생은 슬라이드에 딱 붙어앉아 버튼을 누르고 찰칵찰칵 슬라이드를 넘긴다. 어둡게 불을 끄고 나면 졸기 딱 좋은 분위기다. 그러나 이 순간이 지나가면 이 그림은 볼 수 없다. 수업 이외에는 이 그림을 다시 볼 수 있는 통로가 없다. 학생들은 간절하다. 1950년대 명문 여대를 그린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 나오는 미술사 수업 장면과 1998년 내가 다닌 미술사 수업 장면은 별 다를 바 없었다.
교수님들은 슬라이드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계셨다. 이 슬라이드는 유럽 어디 작은 마을의 미술관에서 비싸게 구해온 것이라며, 이 슬라이드는 분쟁중인 위험지역에 가서 직접 찍어 오신 것이라며 자랑하셨다. 일 초라도 더 저 도판圖版을 보려고 졸린 눈꺼풀에 힘을 주곤 했다. 눈은 화면을 바라보고 손은 노트에 그림을 그리면서, 괴발개발 글씨로 그림 설명을 받아 적으면서 두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진이 쭉 빠졌다. 그러고도 끝이 아니었다. 수업이 끝나고도 이 엉망인 필기를 다시 정리하고 기억을 되살려 그림을 잘 복기해야 수업 한 차시가 마무리되었다. 언제나 시험은 슬금슬금 다가와 우리를 덮치기 마련이니까.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 가서 화집을 뒤지고 그림을 복사해 끼워두었다. 그러나 중요한 그림인데 아무리 찾아도 영 구할 수 없다면 난감 그 자체다. 머릿속에서 이미지와 제목 정보가 뒤엉켜 공부를 해봐야 쓸데없었다. ‘저 그림이 저 그림인 것이 맞는가?’ 아무리 바라만 보아도 그림은 답이 없다. 답지에 써야 하는 제목을 알려주지 않는다. 인터넷만 펼치고 구글창에 작가명이나 그림 제목만 입력하면 수많은 이미지와 작가의 생애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 그때 생각을 하면 나는 벌써 백년은 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렇게 보았던 그림들이 내게는 극한 긴장을 남겨서, 어렵게 외워둔 한 장 한 장의 이미지가 귀하게 남았다. 그들 그림 중에 잊지 못할 그림이 몇몇. 시간이 아무리 달라져도, 시간이 아무리 방해해도 사연이 있는 그림은 수이 잊지 못한다. 요즘처럼 세월이 끝 간 데 없는 날에 더욱 생각나는 그림이다. 어두운 강의실에서 손끝을 놀려 열심히 따라 그렸던 얼굴의 곡선, 옷깃의 곡선, 발끝의 곡선이 유려한 인물화. 예스럽고 옛 된 고개지의 그림 한 장을 소개한다.
동진東晋의 고개지顧愷之, 꾸 카이즈, 약 344~406는 송宋나라 육탐미陸探微, 양梁나라 장승요張僧繇와 함께 육조六朝 3대가大家로 불린다. 당시는 문인에 기반을 둔 시·서·화의 3절 개념이 자리 잡기 전이라, 재절, 화절, 치절의 3절의 의미로 그들을 부르기도 했다. 반론이 어디 있겠는가. 고개지는 동양 미술사에서 가장 전설적인 화가다. 그가 주창한 전신사조傳神寫照란 형상묘사를 통하여 정신을 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인물의 외형 뿐 아니라 정신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념을 담은 고개지의 그림은 인물의 생명과 기쁨과 애정이, 그리고 슬픔이 넘친다.
화가는 조식의 시 「낙신부」를 읽고 기다란 비단 위에 그림 한 장을 그려낸다. 6미터에 달하는 비단에 연환화連還畵,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장면을 순차적으로 그리는 그림의 형식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산점투시散點透視, 동일 인물이 장소와 시간을 바꾸어 여러 번 등장하며, 장소와 시점이 중첩되는 방법의 방식을 충실히 따른다. 조식과 여신의 사랑 이야기는 기승전결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림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시간과 공간은 각각 다른 부분인데도,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교환되거나 중첩되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구성된다. 고개지의 특징인 탄력있는 선이 아름답게 흐르고 있으며, 인물 뿐 아니라 산과 물의 경치도 유려하게 묘사되어 초기 산수화의 특징이 드러난다. 기다란 두루마리를 풀어 보더라도 화면 전체에서 튀는 부분 없이 조화롭다.
조식曹植은 조조曹操의 넷째 아들이었다. 맞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의 조조,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가이자 뛰어난 문장가였던 그분. 자연히 그 아들 조식의 인생은 파란만장했으나, 그의 괴로움은 문인의 재원이 되었다. 그가 지은 글들은 오래 남았다. 조식은 당의 두보杜甫가 등장하기 전까지 ‘시인의 이상상理想像’이라 불릴 정도로 존경받았다.
조식은 견일이라는 이름의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 너무나 사랑했으나 형의 아내로 보내주어야 했던 여자였다. 사연은 복잡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한 시대였다고나 할까. 이제 그녀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사랑하는 이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조식은 슬픔이 가득했다. 낙양 조정에서 다시 임지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천운이었는가, 그녀의 화신과도 같은 이가 나타난다. 낙수洛水의 여신 복비宓妃가 조식曹植을 만나 사랑의 마음을 건네었다. 그러나 순간일 뿐 이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사람의 길과 신의 길은 본디 바라볼 수는 있어도 함께할 수는 없는 법이므로. 조식은 탄식하며 말한다. “비단 소매 들어 눈물을 가리우나 눈물은 떨어져 옷깃을 적시우니(抗羅袂以掩涕兮 淚流襟之浪浪), 좋은 만남 영영 끊어짐을 슬퍼하며 한번 가면 다른 곳에 있음을 서글퍼하네(悼良會之永絶兮 哀一逝而異鄕)”
고개지는 조식의 간절함과 원망을 받아안았다. 동일한 감정으로 화가는 「낙신부」를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고개지 역시 이루지 못할 사랑에 한을 가졌던 경험이 있었다고 하니까. 고개지는 은애하던 이웃집 처녀를 바라보고 바라보다 그림으로 모습을 남겼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바라만이라도 보려고 벽에 그림을 붙이고 매일 바라보았다. 이루지 못할 사랑은 불처럼 가슴을 태웠다. 속이 상한 고개지는 못과 망치를 가져왔다. 그림 속 여자의 가슴 부위에 쾅쾅 못을 박아버리자 이게 웬일인가, 이웃집의 처녀는 가슴을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했다고.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고개지는 나쁜 성정의 사람이지만, 조식의 간절함만큼은 충분히 공감했던 화가였을 것이다.
세계가 다른 조식과 복비는 함께할 수 없다. 두 이는 서로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어디 그들뿐인가, 아름다운 나날에 함께 하지 못함을 원망하는 사람들은 수도 없다. 신의 세상이 아닌 이 현실에도 각자의 사연 따라 만날 수 없는 이들은 넘쳐난다. 대표적으로 장소가 다른 이들이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연예인을 짝사랑하는 팬들의 마음이 그중 제일일 것이다. 학업이나 직장 등을 이유로 원거리 연애를 하는 이들도 그렇다. 사진 한 장, 편지 묶음을 붙들고 타국에 간 연인을 기다리는 이의 간절함을 경험해 보지 않고 어떻게 알까. 지방 중공업 도시는 주말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커플들이 터미널을 꽉꽉 메운다고 한다. 이 거리의 폭력에 오래 시달리던 한 커플은 그 바라봄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직장 하나를 포기하고야 말았다. 그걸 바라봐 온 나는 지난주 내내 그들을 위해 청첩장을 만들었다. 너무 멀어 작게 보이는 사람에게 달려가는 강인함이다. 다급하고 팍팍한 시대에 진로를 달리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아직 만나지 못한 이들도 그렇다. 시간이 달라 그저 바라보아야 하는 이들이다. 오래 싱글 생활을 하고 있는 희진은, “앞으로 만나게 될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애틋하다.”라며 웃었고,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미나는, “아직 만나지 않아도 그리운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이 사랑스럽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보이지 않는 이를 기다리는 강인함이다. 그 마음 역시 견고하게 빛난다. 원망하고 원망하건대, 그럼에도 분명 지금은 아름다운 나날이다.
조식은 또한 말한다. “흰 고개 돌려 맑은 눈동자로 바라보며 붉은 입술 열어 조심스레 만남을 말하오니(紆素領 廻淸陽 動朱脣以徐言 陳交接之大綱), 사람의 길과 신의 길이 다르오매 아름다운 나날에 함께 하지 못함을 원망하네(恨人神之道殊 怨盛年之莫當).” 아름다운 날이 더할수록 간절함은 커진다. 불가한 것을 아무리 알더라도, 그래도. 아름다운 날이기에 함께하고 싶은 이는 오늘 더 간절한 법이다. 아름다움의 크기만큼 원망은 거대해지는 것이니.
누군가와 함께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시절을 살고 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믿어야 한다. 인연법에 도통한 송宋나라의 한 문인은 『장협장원張協狀元』의 제14절에서 “有緣千里來相會(유연천리래상회, 인연이 있으면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다가와 만나고) 無緣對面不相逢(무연대면불상봉, 인연이 아니면 얼굴을 마주보고도 만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그러하니 낙수의 신도 될 수 없는 먼지 같은 인간은 바짝 엎드려 이 순간순간을 숨죽여 기다리는 수밖에. 천리를 더 가야하고 천 날을 더 기다려야 할지라도, 이 아름다운 나날의 빛과 색채나 바라보면서 잘 살아가는 수밖에.
세상은 잔인하게끔 변하지 않으면서도, 제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그 얼굴을 바꾼다. 손바닥 뒤집듯이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가 뒤바뀐 것처럼 삶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혹시 아는가, 상전이 벽해하듯 순식간에 뒤바뀐 세상 덕에 꼭 만나고픈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무심한 세상이 변덕을 부려 아름다운 나날에 함께 하지 못해 서글픈 두 사람을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할지. 현재의 삶이 혼란스럽고 갑갑하다면 곧이다. 외로워서 죽을 것 같다면 이제 금방이다. 곧 원망은 섬광처럼 뒤바뀔 것이다. 간절히 꿈꾸던 바로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시절로 뒤바뀔 것이다. 세상천지 아니라고 외쳐도 이 몸만큼은, 나만큼은 꼭 그렇게 믿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