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손 같은 마음이 얽히면 그 모양을 따라가는 게 사랑의 운명이다
“다 죽은 식물처럼 말라버린 마음도 사랑의 기회를 만나면 목청 높여 외친다. 나는 살아 있다고, 아직은 사랑할 수 있다고. 기어이 꽃을 피울 거라고.”
이루지 못할 사랑은 처음부터 애절하고 끝까지 애틋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고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그랬으며,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파올로와 프란체스카가 그리 안타깝다. 그래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을 어루만져 위로하듯 아픈 사랑을 그리고 빚고 새기고 쓰고 암송한다.
특별히 그림은 순간을 담는다. 순간을 담으려 시간을 붓질한다. 화가의 손끝과 붓끝에 색채가 머물 때마다 마음도 젖는다. 화가가 그려낸 형상을 보며, 화가가 꿈꾸었던 몸짓을 상상한다. 화가가 안타까워했던 슬픔을 깨닫는다. 어떤 그림에서는 화가가 꿈꾸었던 따뜻함을 얻는다. 어떤 그림에서는 화가가 겪었던 애절함에 가닿는다. 사람의 몸짓에는 마음이 쏟아진다. 손을 내밀거나 팔짱을 끼거나 와락 끌어안거나 하는… 그런 거 말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옷감이 닿았다는 것은 두 사람의 신체적 거리가 가까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옹’은 그런 것이다. 가슴이 가닿았던, 아니 마음이 얽혔던 인연임을 부정할 수 없는 몸짓이다. 세상에 그림은 수도 없고 ‘포옹’에 대한 그림도 수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별히 강렬한 그림이 있다. 따뜻해서가 아니라, 위로가 되어서가 아니라, 찌릿찌릿하고 절절해서이다.
프레데릭 윌리엄 버튼Frederic William Burton, 1816~1900은 열 살의 나이에 더블린 소사이어티 스쿨(Dublin Society Schools)에서 미니어처 수채화의 달인이 되었다. 열여섯에는 로열 하이버니언 아카데미Royal Hibernian Academy에서 전시회를 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헬레일 공주와 힐데브란트 왕자, 터렛 계단에서의 만남」처럼 곱고 밀도 있는 수채화는 그의 전매 특허였다.
덴마크의 헬레일 공주와 그녀의 호위무사, 잉겔렌드의 힐데브란트 왕자(Hellelil and Hildebrand)의 사랑은 허락받지 못했다. 중세의 높은 돌탑 계단을 오르내리는 두 사람은 간절함으로 옷깃을 스친다. 애절함에 응답하듯 순간이 멎었다.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다, 젊은 기사 힐데브란트는 공주의 동생에게 살해당할 운명이므로. 여자의 일곱 형제는 남자를 처형한다. 남자는 사랑으로 자기 운명에 순종한다. 자신의 눈앞에서 연인을 잃은 공주는 분노로 이를 악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의 악행을 뒤집어 동생들도 살해한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단 하나 살아남은 남동생은 그녀를 성으로 끌고 가 가두어버리고 만다.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는 그녀는 시든 꽃처럼 스러진다. 이 덴마크 전설은 영국의 법률가이자 시인인 휘트니 스톡스Whitley Stokes에 의해 1855년, 시가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문학에 집착했던 라파엘 전파가 활동하던 빅토리아 시대, 아름다운 시가 아름다운 그림으로 만들어지기에 딱 맞았다. 존 에버렛 밀레이와 에드워드 번존스와 친밀하던 윌리엄 버튼이 그들과 같은 주제를 선택한 것은 당연했다.
사람의 인생에 절정기가 있듯, 화가의 그림에도 절정기가 있다. 이 그림 역시 윌리엄 버튼의 화업 절정기에 탄생한 그림이다. 1864년에 런던에서 있었던 <Old Watercolour Society’s Annual exhibition>에서 발표된 후, 수많은 찬사가 이어졌다. 시인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은 그림에 서린 로맨티시즘을 높이 평가했으며, 무엇보다도 여자의 팔에 키스하는 남자의 표정이 성인의 격으로 승하였다며 그림을 호평했다. “이 주제는 세상에서 가장 저속했을지도 모른다. 화가는 이를 가장 고상한 감정의 정점에 올렸고, 그림 속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 (the subject might have been made the most vulgar thing in the world – the artist has raised it to the highest pitch of refined emotion' and went on to focus on the romance in the picture: 'the face of the knight is the face of a man to whom the kiss is a sacrament.)”
시인 휘트니의 누이, 마거릿 스톡스Margaret McNair Stokes는 오랫동안 화가를 사랑했다. 오랫동안 남자의 주변을 맴돌고 또 맴돌았다. 윌리엄 버튼은 내셔널 갤러리의 관장까지 하면서 화려하고 뜨거운 인생을 이어나갔지만 사랑에만큼은 냉랭했다. 끝까지 이 여자에게는 마음을 주지 않았다. 1898년, 그 이가 간절했던 그녀는 그 남자의 그림을 구입하고야 만다. 그의 흔적에라도 닿고파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그림을 품고 사랑을 얻기 소망했지만 그림에 서린 절연絶緣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가슴이 타들어간 마거릿, 몇 번이고 오빠에게 찢어지는 마음을 토로했지만 오빠라고 사랑은 이루어줄 수 없었다. 못 견디겠다, 더 이상 이 그림을 볼 수 없다. 결국 「헬레일과 힐데브란트, 터렛 계단에서의 만남」은 아일랜드 국립 도서관으로 보내진다. 한 번도 자기 것이 되어주지 않은 남자를 어쩔 수 없이 여자는 사랑했다. 그 남자의 전기를 쓰는 것으로 애정을 다독였다. 미련한 사랑이지만 그녀의 최선이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나는 그 사람이, 받아들여졌어. 그 사람을 그냥 두고 달아나면 안 될 것 같아졌어. 천지를 뒤덮은 복숭아 향기 때문이었을까, 그 사람이 얼마나 측은하던지 마음이 저절로 그쪽으로, 마치 넝쿨손이 그런 것처럼, 쭉 뻗어나가는 걸 어쩔 수가 없었어. 나도 모르게 그만, 상 위에 떨어져 있는 그 사람 얼굴을 손으로 받쳐서 내 무릎에 올려놓고 야윈 등을 가만가만 쓰다듬었어. 그런 채로 한 시간을 있었어. 천지에 복숭아 향기만 가득했지. 취하는 것 같았어. 복숭아 향기 탓인지 어딘가 다른 데서 온 것 같은 묘한 분위기의 그 사람 인상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어. 그 사람, 살과 뼈의 감각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그것도 복숭아 향기에 홀려서 그랬는지 몰라. 그런 느낌이 내 마음을 물처럼 흐르게 했는지 몰라.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 아, 사람의 운명이란 게 이렇게 정해지는가보구나.”
어느 순간 나는 내 몸이 낮춰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이 내 마음을 그쪽으로 뻗어가게 했을까. 나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내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대상이 무덤 속의 아버지인지, 순간 속에 깃든 환각에 견인되어 일생을 바친 어머니의 운명인지, 아니면 그 운명에 흩뿌려진 복숭아 향기인지 알 수 없었다.
_이승우, 「복숭아 향기」, 『모르는 사람들』, 문학동네, 2017
이승우의 「복숭아 향기」를 읽으며 윌리엄 버튼의 그림을 떠올렸다. 사랑하는 사람 둘의 마음과 마음이 제멋대로 흘러 얽힌 모양을. 마음은 저를 부르는 낮은 곳으로 임해 무릎을 꿇었다. 마음이 흘러가는 곳은 내가 애써 모셔야 할 인물이며 장소다. ‘마음이 넝쿨손이 된 듯 저절로’ 그쪽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어찌해야 할까. 이를 누가 제어할 수 있을까. 사랑은 확실히 제멋대로다. 마음은 두뇌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게다가 오직 Go만 할 줄 안다. 일단 가면 Back은 없다. 넝쿨손 같은 마음이 얽히면 그 모양을 따라가는 게 사랑의 운명이다. 오은 시인의 말처럼, “마음이 가는 걸, 기울어지는 걸, 와르르 쏟아져버리는 걸 어떻게 하니.”
마음이 얽혀버리면 끝이다. 그걸 아는 사람들은 「터렛 계단에서의 만남」을 그냥 스쳐 보낼 수 없다. 그런 그림을 그들이 사랑한다. 「터렛 계단에서의 만남」은 2012년의 <아일랜드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Ireland's favorite painting)>으로 선정되었다.
사랑에 ‘이루지 못할’이란 말이 어찌 어울리는가, 사랑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이루거나 이루지 못한다는 전제가 없는 것이 사랑이다. 존재하는 순간 완벽한 게 저 대단한 사랑이다. 마음은 살아 움직인다. 단언컨대 사랑은 절대 죽지 않는다. 다 죽은 식물처럼 말라버린 마음도 사랑의 기회를 만나면 목청 높여 외친다. 보라, 넝쿨손처럼 꿈틀거리는 이 그림이 증언한다. 나는 살아 있다고, 아직은 사랑할 수 있다고. 곧 죽어 스러지더라도, 스쳐 지나가는 이 계단참에서 기어이 꽃을 피울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