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새벽, 긴 시간을 함께 한 연인에게 나는 일방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구상이라도 해왔던 것처럼 손가락은 바삐 움직였다.
"나 부탁이 있어. 많이 생각하고 말하는 거니 아무쪼록 이해해주었으면 좋겠어. 우리가 만나온 시간이 벌써 4년이 넘어가. 난 우리가 그냥 이렇게 마냥 시간을 보내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어. 내가 지금처럼 계속 독립적으로 살아가면서 자길 만날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어. 그래서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해. 그래서 말인데..."
우리 2주 동안만 잠시 헤어져.
"우리도 서로 그런 줄은 알고 있지만, 성격도 취미도 너무 다르니까 어쩌다 서운한 지점이 생기게 되면 그 지점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로 풀더라도 또다시 비슷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 그건 어느 일방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라는 걸 서로 잘 알고 있고, 또 그걸 이해하고 싶어 하기 때문인데... 사실 그 지점에 대한 해결을 이해로 풀어가는 게 우리의 가장 큰 문제인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꽃이 피고 계절이 바뀌고 있는데 이 순간이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게, 그 순간들을 늘 이렇게 각자 하는 일 하면서 지내는 것도, 이렇게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까지 이 모든 것들이 뭐랄까... 난 별로인 것 같아. 부족해. 당신과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싶거든. 미안하지만 나는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다른 것들로 쉽게 채워지지가 않을 때가 많아. 미안해. 자긴 늘 나를 존중해주고 배려해줬는데 고작 한다는 말이 이런 불평뿐이라서 정말 면목이 없네. 그렇지만 자기야! 나는 이대로 그냥 그냥 살아가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아."
"바쁜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노력하고 있다는 거 알지만 나는 누군가를 늘 기다리기만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배려 없이 늘어놓는... 정말이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
"내게 시간을 좀 주면 좋겠어. 1주일은 너무 짧고... 2주 정도면 어떨까 해. 그래서 말인데... 우리 2주 동안만 잠시 헤어져. 헤어져 줘. 자기야. 그 시간 동안 당신도 날 잠시 잊고 편하게 일도 하고 자유롭게 지내봐. 좀 떨어져서 지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서로 각자의 일상을 잘 지냈으면 좋겠어. 내가 바라는 건 이거야. 어떻게 생각해? 당신이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구구절절 징징대는 말만 늘어놓은 걸까. 그렇지만 나름엔 정말 많이 생각하고 어렵게 던진 말이었다. 시작이 무서운 거라는 말은 참이다. 한마디를 시작하니 그동안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두었던 감정의 고리들이 마구 엉키며 쏟아져 나왔다.
그가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대답했다.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할게.
그리고 기다릴게.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할게. 그리고 기다릴게."
짧은 메시지였지만 그의 답은 함께 한 시간들을 말해주듯 이미 나를 깊이 읽어낸 말이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고마운 말이었다. 기다린다는 말은 큰 위로가 되었고 참 따뜻했다. 그리고 일방적이고 어이없는 통보도 그는 존중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 없이 일주일을 살았다. 그가 없는 일주일은 무척이나 길었다. 물론 우리의 문제나 그의 존재를 잠시 잊고 지낸 순간들도 많았다. 자유로움을 느끼고 만족을 느끼면 자연스레 되돌아오는 것 또한 그였다. 오랜만에 맛있는 요리를 해 먹고 싶었다. 망설임 없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반기며 전화를 받았다.
안 그래도 오늘 전화하려고 했는데.
일주일 정도면 분명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거든!
"오! 이게 누구신가. 먼저 전화를 주셨군! 안 그래도 오늘 전화하려고 했는데. 일주일 정도면 분명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거든!"
"그럼 전활 했어야지! 왜 전화 안 해?"
"기다렸지. 전화가 올 때가 됐는데~ 그러고 있기도 했고."
"나 지금 무지 맛있는 걸 만들까 하는데. 혹시 관심 있어?"
"완전 관심 있지. 갈게. 쪼~끔 보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뭐야? 쪼~금? 하하... 알았어. 천천히 조심해서 와!"
"넷!"
전화를 끊고 서둘러 냉장고를 열었다. 맛있는 요리를 나누고 며칠의 간극을 풀어내며, 우리는 꽤 오랜만에 태풍이라도 온 것 같았던 관계의 거대한 계곡을 무사히 건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후로 아주 별일 없이 사이좋게 지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그의 배려와 인내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고 그러한 마음들은 좀 더 착한 애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으로 되살아나곤 했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못마땅한 것이 있을 때! 상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면, 그 관계는 유효한 것이 아닐까? 다음엔 이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만약 또다시 이런 헤어짐의 순간이 있을 거라면 그땐 꼭 꽉 찬 2주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그는 참 멋진 사람이고,
그런 그를 사랑하는 나도
참으로 멋지지 아니한가!
누군가를 잘 알고 이해하고, 기다려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참 멋진 일인 것만 같다. 그는 참 멋진 사람이고, 그런 그를 사랑하는 나도 참으로 멋지지 아니한가! 함께 해온 지난 추억들에 생각이 잠시 머무는 그런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