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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Nov 30. 2023

계절을 잊은 그대에게

종종걸음으로 교문을 들어가서는 교실이 아닌 텃밭으로 향한다.

밤새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잘 있었는지, 몇 마리나 눈에 띄는지 살펴보다가 잡고 있다.

지각은 남 일인 듯 텃밭에서 시간을 꽉 채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엄마는 애가 타는데, 너희는 도무지 멈출 기미가 없다.

보다 못한 엄마는 교문을 닫는 선생님께 "텃밭에 있는 저 두 녀석 교실로 들어가라고 해주세요"라고 부탁까지 했다.


여름 내내 땡볕에서 매미를 잡았고, 비가 오면 도로로 나온 지렁이를 집어 화단으로 옮겨줬다.

매미와 지렁이를 지나, 낮에는 메뚜기 밤에는 귀뚜라미 사냥에 나섰다가 짙은 가을에 접어든 오늘은 배추흰나비 애벌레에 꽂히게 되었다.

몇 해전 제주도에 사는 친구가 옥수수를 보내왔을 때도 그랬다. 

도란도란 택배상자를 둘러싸고 앉아 옥수수 껍질을 까는데, 마치 만화처럼 초록색 애벌레가 튕겨지듯 나왔다.

작고 작은 초록색 애벌레가 나타나자 너희는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옥수수 껍질을 까는 건 이미 잊었고, 온몸으로 기고 있는 애벌레를 보기 위해 너희는 납작 엎드렸다.

분명 깜짝 선물로 옥수수가 왔는데, 뜻밖의 선물까지 등장한셈이었다.

옥수수 껍질에 애벌레를 얹어 만져보겠다는 유와 눈으로만 봐야 한다는 온이는 양보가 없었다. 결국 애벌레는 사육통에 들어가게 되었다.

너희는 아직 맛도 보지 못한 옥수수 알을 넘치도록 긁어 사육통에 넣어주었다. 

그때 그 애벌레는 온이와 유가 지극정성으로 돌봐줬는데도 나비가 되지 못했다. 속상해하는 너희에게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오느라 힘들어서 애벌레로 남았던 거라고 했다.


"집에 데려가고 싶은데.."

"오늘은 몇 마리나 잡을까?"

애벌레를 발견한 날부터 지금까지 맨날 애벌레 얘기만 했다. 

잡았다가 놓아주고, 다음 날도 잡고 놓아주기를 반복했다. 꼬박 나흘을 등하굣길에 걸음을 멈추더니 너희는 두 손으로 공으로 만들어 오더니 거실바닥에 애벌레를 내려놓았다.

"다른 친구들도 다 잡아서 데려가는데 나도 데려오고 싶었어 엄마"

자연에 있어야 하는 걸 데려오면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다음은 잡아오지 말자고 했다.

사방에 흩어진 애벌레들이 여기저기서 꿈틀대고, 너희는 오랜만에 보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노란 배춧잎을 먹였더니 노란 똥을 싸고, 상추를 먹었더니 검정에 가까운 짙은 색 똥을 쌌다. 

쪼끄만 것이 먹어서 눈곱만 한 똥을 싸대는 것도,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꿈틀꿈틀 기는 모습도 귀여웠다. 

너희는 일어나서, 학교 가기 전, 학교 갔다 와서, 잠자기 전 틈나는 대로 애벌레를 들여다보았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던 애벌레는 희한하게도 가장 높은 뚜껑에 붙어서 고치가 되었다.

똥을 치우고 싶어서 뚜껑을 열다가 고치가 떨어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날이 길어졌다.

이대로 죽은 건 아닐까, 언제까지 저렇게 있는 걸까 싶은 어느 날 아침 고치는 어디 가고 나비가 있었다.

맙소사. 찬바람이 쌩쌩부는 겨울에 가까운 날 계절을 잊고 나비가 태어나버렸다.

겨우내 고치로 있다가 4월쯤 세상에 나왔어야 할 아이가 따뜻한 집안에서 봄인 줄 알고 태어나버린 거다.

뜻하지 않게 책에서만 보던 배추흰나비 한살이를 직접 볼 수 있는 영광을 얻었지만, 이 나비의 운명은 어찌해야 할지..

노란 날개를 가진 나비는 조만간 날개 색이 배춧잎을 닮아 갈 텐데, 

이 추운 겨울에 넓은 세상을 보라고 놓아주어야 할지, 

처음 본 세상을 전부로 믿고 그대로 통 안에서 살다가게 할지 몹시 고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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