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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the record Aug 11. 2024

5. 도서관에 사는 안식년의 저승사자






#1     


‘털썩?

이상하다. 

왜 쿵 소리가 안 나고

털썩하는 소리가...’        



       

기절하면서도 현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하루 이틀 기절하는 게 아니다 보니 자신이 늘 기절할 때마다 들었던 ‘쿵’ 소리가 나지 않는 게 이상했다.      


웅성, 웅성, 웅성.

사람들이 모여서 걱정하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현수가 무거운 눈꺼풀을 달싹거리면 눈썹과 콧잔등에 힘을 주어 겨우 눈을 떴다.           



    

“얘, 괜찮니~?”          




새까만 선글라스를 낀 그녀의 품에서 민현수가 눈을 떴다.       



        

“으허허헉!”         



      

현수가 벌떡 일어났다. 현수가 기절하는 그 잠깐 사이 꽃분 아줌마가 주방에서 나와 현수를 받쳐 안은 것이었다.

현수는 겨우 떨리는 몸을 옮겨 걱정스러운 눈을 한 아이들 사이에 있는 자훈이 뒤로 숨었다.     



     

자훈: (작은 목소리로) 야! 너 또 봤어?     


현수: (귓속말) 지...지 집에 가자. 

저 주방 아줌마 악귀인 것 같아. 

어...얼굴이 허옇고 입술이 까매. 할머니가 그런 건 악귀랬어.     


자훈: (놀랏 듯 작은 목소리로) 아... 악귀?     


꽃분 이모: 애가 비쩍 말라서 기운이 없어서 쓰러졌나 봥~ 

(모여든 사람들을 보며 신경을 쓸 것 없다는 투로) 다들 가서 떡볶이 먹엉~ 

이모가~ 얘는 챙길 테니깐.     


아이들: 네~ 꽃분 이모.               




꽃분 이모의 이야기에 학생들이 흩어지려 하자 자훈이는 내 손목을 낚아채 도망치려 했다. 

그때였다. 

꽃분 이모는 우리 둘을 양쪽 팔에 한 명씩 끼워서 헤드락을 걸었다.               




꽃분 이모: 다 들렸다잉~

나는 잡스런 악귀 그딴 것 아니고, 저승사자양! 

저.승.사.자. 

그것도 일을 너무 잘해서 안식년을 맞이한 저승사자.     


자훈: 네에? 으어엉...               




갑자기 자훈이가 울기 시작했다. 

대성통곡 수준이었다.      

현수와 꽃분 이모는 놀라서 자훈이를 동시에 쳐다봤다. 

꽃분 이모는 헤드락을 풀고 우는 자훈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쭈그려 앉았다.               




꽃분 이모: 아가. 왜 울어? 

나 악귀 아니라니깐?     


자훈: 저승 (으흑) 

사자는 (으흑흑흑) 

죽은 사람을 데리러 오는 거잖아요... 

근데 (으흑) 현수 눈에만 보이는 거면, 

(으흑흑흑) 현수가 죽는다는 거잖아요!!!

얘는 맨날 귀신도 보고 힘든데 왜 벌써 왔어요.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이라고요!

왜에!     


꽃분 이모: 아이고, 뚝! 

똑똑 타 ~ 똑똑해 ~ 그런 것도 알아?          




꽃분 이모가 어르고 달래는 투로 말하자, 자훈이 화가 치미는 듯이 발까지 동동 굴러가며 빽빽거렸다.

하긴 자훈이도 어린데 제일 친한 친구가 매번 귀신을 보고 기절하는 게 마음에 많이 부담되었을 것이다. 

차라리 신기라도 있어서 그러는 거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그간 어린 자훈이 마음에 쌓였던 현수에 대한 원통함이 한꺼번에 터진 순간이었다.               




자훈: 우리 엄마도 외할머니도 다 무당이에요. 

얘네 할머니도 무당이에요. 

우리 알 거 다 알아요! 

현수는 이제 4학년인데... 

왜(으흑) 왜에 나타(으흑) 난 거예요 (으허허허헝).


꽃분 이모: 아니... 네 말이 맞는데. 

나는 안식년이라서 쉬려고 여기 있는 거라고. 

저승사자 업무를 못해용. 

못해!     


자훈: (눈물 콧물을 삼키며) 진짜요?            




        

#2     


대화를 자르는 듯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여학생들: 꽃분 이모! 우리 떡볶이요~ 

빨리 주세요! 얼른 먹고 학원가야 해요!     


남학생들: 꽃분 이모! 

우리도요!! 

우리도~




중학생 누나들과 형들의 성화에 불쑥 대화의 흐름을 끊겼다.          



     

꽃분 이모: 아아! 알았어용~~~ 

너희 일단 저기 앉아있어. 좀 있다 설명해 줄게. 

나 저 현순지 뭔지 데리러 온 저승사자 아니고, 악귀도 아니양. 걱정하지 말아! 

데려갈 생각이었으면 벌써 데려갔어! 

응?     




꽃분 이모는 떡볶이를 보채는 중학생 누나들과 형들이 귀엽다는 눈짓을 보내곤 후다닥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손이 수십 개쯤 되는 인도 신처럼 재빠른 손놀림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떡볶이를 듬뿍듬뿍 침이 고이도록 담아내기 시작했다.               




꽃분 이모: 36번, 38번, 39번, 40번, 42번, 43번. 

떡볶이 나왔어용~

37번, 45번, 46번, 라면은 1분이면 돼~ 

쫌만 기다려! 

41번, 44번, 만두는 2분만 더 찌면 되잉~ 

돈 워리야~                    





#3     


이렇게 꽃분 이모가 부르는 번호표가 53번쯤 되자, 그녀는 주방에서 쟁반을 들고 쓰윽 나와서 우리에게로 왔다.      



         

꽃분 이모: 자자 먹으면서 하장. 

떡볶이에 국물 어묵. 

괜찮지?     


현수: (개미만 한 작은 목소리로) 아까 자훈이가 주문 못 했는데요? 

제가 기절해서...     


꽃분 이모: 으응, 괜찮아. 현수랬지? 

(아이들에게 번갈아 가면 수저를 챙겨주며) 꽃분 이모가 사는 거야 먹어. 먹어. 

네가 자훈이? 

먹어~ 먹어~ 울어서 기운 없겠당! 

응?               




눈이 퉁퉁 부은 방자훈과 그때까지도 얼굴이 허옇게 질려있던 민현수는 쭈뼛거리며 어묵 국물부터 들이켰다. 

두 눈이 똥그래질 만큼 맛있었다. 

그리고 떡볶이를 한입 먹고는 그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너무 맛있어서.           



    

꽃분 이모: 맛있지?     


현수, 자훈: 진짜 맛있어요!     


꽃분 이모: 그럼~ 내가 누구닝? 

둘이 먹다 둘 다 죽어도 모를 저승사... 

아! 아니다. 아냐. 

먹어~ 먹어~     


현수, 자훈: 네! 잘 먹겠습니다.     




이빨이 떡볶이 국물로 새빨갛게 물든 줄도 모른 채 현수와 자훈이는 꽃분 이모에게 말했다. 

그렇게 둘은 떡볶이와 국물 어묵의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꽃분 이모는 종종걸음으로 주방에서 떡볶이와 국물 어묵을 다시 가져다주며 말을 시작했다.         



      

꽃분 이모: 있잖아~ 현수야, 

음... (다른 테이블을 두리번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저승사자는 원래 죽은 사람 데리러 이승에 오는 게 맞아. 

그런데 저승사자 일을 엄청 열심히 잘하잖아? 

그러면 하늘에 있는 염라대왕님이 상으로 안식년을 줘.     


현수: (작은 목소리로) 안식년이 도대체 모에요?     


꽃분 이모: 아... 거기부터구낭! 

음~ 여름휴가 알지?     


현수, 자훈: 네, 알아요!     


꽃분 이모: 안식년은 휴가를 길게 주는 거양. 

30년 동안.     


자훈: 우와! 

30년 동안 그럼 놀 수 있는 거예요?          




이때 꽃분 이모의 어깨를 쓱 감싸며, 

아까 떡볶이를 달라고 하던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나타났다.               


여학생들: 꽃분 이모, 

오늘도 최고로 맛있었어요.     


남학생들: 진짜요. 

최고! 최에고~ 꽃분!     


꽃분 이모: 그래그래. 

오늘 또 힘 좀 썼지. 재료를 그냥 팍팍 넣어서 말이야~ 

(벽시계를 보며) 어머멍! 

너희 학원 어여 가야겠당. 

낼모레 카레 돈가스 특식으로 나오니깐 빨리 와~      


학생들: 오오~~~ 네!     


꽃분 이모: 어서 가고~ 또 봐~     


학생들: 네~ 꽃분 이모!     




꽃분 이모는 학생들 무리가 매점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아쉬운지 연신 눈을 떼지 못했다. 

이들의 모습이 안 보일 때쯤 다시 고개를 현수와 자훈이로 돌렸다.               




꽃분 이모: 미안~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현수: 30년 동안 휴가인 거요.          




현수가 재빨리 또박또박 말했다. 자훈이는 그런 둘을 번갈아 보며 떡볶이를 먹기 바빴다.               




꽃분 이모: 완전히 놀 수만 있는 거는 아니고... 

30년간은 우리 저승사자들도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도서관 책에 귀신이 붙지 못하게 해.

그 일하면서 우린 쉰단당.

이런 우리를 저승 사서라고 해. 이 새까만 선글라스가 그 안식년의 증표지!     


현수, 자훈: 아~     


꽃분 이모: 우리가 도서관에 없으면? 

빌려 가는 책에 온갖 집들의 귀신이 달라붙어서 아마 온 대한민국이 잡귀 천지였을 거양. 

이건 전세계 공통이란다? 

만월 밤에 몰아서 이 구천을 헤매는 귀신들만 모아서 이승을 떠날 수 있게도 해주고!

그믐에는 푹 쉬기도 하지.     

          

“쾅!”      



         

느닷없이 떡볶이를 먹던 현수가 숟가락을 세게 내려놓으면서 정색했다.               


현수: 그믐 하루 쉰다고요? 그게 어떻게 쉬는 거예요!

쉬라고 하고 일을 시키다니 우리 할머니도 나 때문에 그렇게 점보다 아팠어요! 

염라대왕님 너무 나빠요.     


자훈: 야아~

왜 그래...          




대신 화를 내주는 것 같은 현수의 날 선 말이 싫지 않은 듯 꽃분 이모는 주섬주섬 현수에게 숟가락을 쥐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꽃분 이모: 현수야, 고마워~ 

다른 산 사람 사서들이랑 돌아가며 쉬는 날도 쉬고.

그믐은 또 그믐대로 쉰단다.     


현수: 진짜요?     


꽃분 이모: 음, 저승사자는 말이야. 

맨날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 병원에서 아파서 죽은 사람, 사는 걸 스스로 포기한 사람...

이런 사람들을 봐요.

뭐~ 나이가 들어서 평온하게 죽은 사람도 데려가기도 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픈 표정으로) 우리 저승사자들은 그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다가 상도 함께 치르고 데려가야 하니깐... 

암튼! 좋지 않은 모습들을 많이 봐. 

근무 환경이 매우 안 예뻐~ 나빠~

으휴! 이걸 매일 본다? 이건 산업재해야~ 산재!     


자훈: 으아...      


꽃분 이모: 그런데 만월 도서관은 달라~

여기에선~

(현수 입가에 떡볶이 국물 묻은 걸 닦아주며) 너네처럼 이렇게 내가 해준 떡볶이가 맛있다며 웃으며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단다. 

그게 휴가고 행복이지 뭐겠니?     


현수, 자훈: (서로 눈을 마주 보며 먹던 포크를 내려놓는다) 진짜요...?     




그녀는 현수와 자훈이의 시무룩한 모습을 보고 일부러 분위기를 바꿔보려 오버하며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말했다.               




꽃분 이모: 그러니깐, 

지금 이 새까만 선글라스가 그냥 선글라스가 아니양. 

이 엄청나게 평화롭고 따사로운 그 안식년의 증표지!     




작은 눈썹을 꿀렁이며 조금 당황한 듯한 자훈이가 눈치를 보며 떡볶이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이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자훈: 그런데요. 음... 

전 선글라스가 안 보이는데요?     




자훈이의 말에 현수의 눈이 커지며 놀란 듯했지만, 금방 자신의 귀신 보는 능력을 떠올리며 체념한 듯...    



           

현수: 나는, 보여요.

까만 뿔테가 끝이 고양이 눈처럼 살짝 올라가 있고 선글라스 알이 엄청 까매요.          




자훈이는 그런 현수의 남다름이 익숙한 듯 또 서글픈 듯 물끄러미 아무 말 없이 쳐다보았다. 꽃분 이모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불안한 듯 눈알을 양쪽으로 두어 번 굴리며 말했다.                




꽃분 이모: ... 

이게 보일 리가 없는데~

현수야, 느그 아부지 뭐하시농?     


자훈: 우리 현수한테 그런 거 물어보지 마세요. 

실례에요!     


현수: 괜찮아. 자훈아. 

나는 (멋쩍어하며) 아줌마보고 쌍꺼풀 수술했냐고도 했어.

우리 아빠는 제가 백일 때 가출했고, 엄마는 본 적 없어서 몰라요.

전 혼자 있으면 귀신을 봐요. 

그래서 아줌마도 보이는 걸까요?     


꽃분 이모: 음... 그렇구낭. 

현수! 의젓하네. 침착하게 말도 잘하고. 

음... 이게 큰일은 아닌데~ 그래도 내가 명색이 저승사자였잖아? 

그래서 우리 현수 할머니를 좀 뵙고 얘기를 했으면 하는데~

내가 찾아가면 할머니 모시는 신들이 좀 그럴 것 같고... 

현수가 할머니 모시고 도서관에 오믄 좋겠는데? 

괜찮을까앙?     


현수: 네... 할머니께 여쭤볼게요.     


꽃분 이모: 그래그래. 

그럼, 우리 현수랑 자훈이~ 매운 떡볶이 먹었으니깐~ 

이모가 아이스크림도 쏠께. 가서 골라봐~     


현수, 자훈: 네.               




어딘지 석연치 않은 걸음으로 아이스크림 냉장고 앞으로 가는 현수와 자훈이의 뒤통수를 꽃분 이모는 생각이 많은 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꽃분 이모: (혼잣말로) 귀신이 보인다고 저승사자가 보이진 않을 텐데... 

희한하네.

어머멍! 다 골랐어?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럼, 아이스크림 먹고들 가. 난 또 주방 들어가 봐야 하니깐.     


현수, 자훈: 네.     


꽃분 이모: 참!

다음에 볼 때 꽃분 이모라고 하고!     


현수, 자훈: 넵!                    





#4     


그렇게 현수와 자훈이는 도서관 매점에서 어색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정신없이 바쁜 꽃분 이모에게 겨우 눈인사만 하고 매점을 빠져나왔다. 

뭔가에 홀린 듯이 터덜터덜 걷던 현수는 자훈이와 함께 판산동 놀이터에 이르러서야 노을이 지는 것을 알아챘다. 

현수가 비장하게 말을 꺼냈다.               




현수: 자훈아, 저승사자는 귀신이 아니라서 내 눈에 보일 리가 없어...

(아이스크림 막대를 보며) 미안하지만... 

저 아줌마 얼굴은 악귀가 확실했어!

할머니한테 말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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