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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Nov 02. 2023

당신의 근육은 정직하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금세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근육이 +30 상승한 접니다... 쿨럭 



 10월은 2023년 중에서도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한 달이었다. 우울로 인해 어영부영 보내버린 상반기를 제외하고서라도 하반기는 조금 더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동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수강신청을 하고 난생처음 그림책 출판에 입문했으며, 10월 말에는 몇 년 동안 쓰디쓴 패배를 맛본 (하지만 올 해도 포기하지 않은) 브런치 공모전 마감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독박으로 강아지와 아이의 육아까지 도맡아 했으니 그야말로 눈 떠 있는 시간들은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던 한 달이었다. 잠잘 시간도 없는 바쁨 덕분에 올 한 해 중에서 남편에 대한 미움을 가장 덜 품을 수 있었던 건 꽤나 고마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이런 와중에도 잊지 않고 해낸 일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4개월 전 입문했던 클라이밍! 운동이란 것은 스스로와 타협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늘어지는 성격의 일이라 몽땅 놓아버리지 않기로 했지만 대신 10월 한 달은 두 개의 마감이 있었기에 스스로에게 조금의 타협점을 두기로 했다. 일주일에 4번 가던 클라이밍을 2번으로 줄이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은 줄을 연결하지 않고 혼자 문제를 풀 수 있는 볼더링이라는 종목을 제외하고서는 아래에서 줄을 잡아주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한 달은 함께 운동을 했던 언니 부부도 2주간 휴가를 떠난 터라 나에게는 클라이밍에 대한 갈증을 채워줄 이가 없었고 10월은 전보다 훨씬 느긋한 운동 스케줄을 소화하며 지냈다.



 주말을 보내고 클라이밍장에 갈 때면 며칠 동안 자극을 받지 못하고 굳어버린 근육들이 아우성을 쳤다. 하루 여섯 시간 이상을 책상 앞에 앉아 꼼짝도 않고 있었더니 허리가 딱딱하게 굳어 운동에서 잠시 멀어졌던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새 클라이밍화에 겨우 적응시켜 놓은 발도 오랜만에 느끼는 고통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예전처럼 두 시간을 꼬박 클라이밍에 쏟아붓는 노력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었고 말이다. 클라이밍장에는 일명 ‘고수’로 불리는 분들이 너무도 가뿐하게 내가 해내지 못한 코스를 나비처럼 사뿐사뿐 뛰어넘고 계셨기에 초조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심호흡을 하며 분주함을 가다듬기로 했다. 마음이 바쁠수록 부상을 당할 위험이 더 높아지는 것이 바로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정성스럽게 스트레칭을 하며 주말 동안 굳어버린 근육을 풀어주고 굳은살이 박힌 손가락 마디에 시간을 들여 테이핑을 해주었다. 그리고 난 뒤에는 자동으로 줄을 잡아당겨주는 오토 빌레이라는 장비와 내가 착용하고 있는 벨트가 잘 고정되어 있는지를 여러 번 확인한 뒤, 가장 쉬운 코스부터 차근차근 근육을 깨우며 천천히 올랐다. 뻐근하던 근육들이 유연해지는 그 느낌을 위해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키보드 위에서 날아다니던 손가락들은 크고 작은 홀드를 움켜쥐면서 또 다른 자극을 만끽한다. 한창 굳은살이 박혔던 손바닥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 동안 금세 말랑말랑해졌지만 11월부터는 다시 하얀 초크가루가 가득 묻은 채로 묵묵하게 벽을 오르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장 최근 읽었던 '하지 않는 삶'


 어려운 루트를 개척할 때마다 두 팔의 근육들은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한다. 한 번 개척한 루트는 다음 도전에서는 조금 더 쉽게, 그다음 도전에서는 그보다 더 쉬이 정복할 수 있다. 근육들이 어느새 어려운 루트를 해결해 낼 만큼 성장한 까닭이다. 조금의 게으름을 부리기라도 한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도 순식간이지만 대신 근육을 차근히, 조심스레 깨우기만 한다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벽 위를 자유롭게 건너는 자신의 모습을 다시 만나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어렵게 내 것으로 만든 것들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멀어진 시간 동안 몇 달 전의 내 모습이 까마득하게 느껴지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의 몸은, 당신의 근육은 오롯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정직하게 흘린 땀이 새겨놓은 것들을 말이다. 이 공식은 비단 클라이밍이나 운동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물을 한 컵 마시는 사소한 습관부터 잠자기 전에 스마트폰 대신 책을 읽는 습관이나 글을 쓰기 위해 매일 책상에 앉는 노력 또한 근육을 키우는 일처럼 천천히 시간을 들여 쌓아가야 했으니 말이다. 사소하지만 이렇게 겹겹이 쌓인 시간과 노력들은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엄마로 살아가며 이따금 책상에서 멀어지기도 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의 몸은 여전히 오래된 습관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석양을 보며 달리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책 냄새가 가득한 도서관에서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즐거워지는지, 이른 새벽에 키보드를 두드리며 느끼는 희열이 나의 삶에 얼마나 큰 동력이 되는지 말이다. 몇 번을 멀어지고 또 가까워지고를 반복하는 중이지만 나는 평생 이렇게 밀고 당기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살 것이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보듬으면서. 시간을 들여 아주 천천히 마음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깨워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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