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림책을 만들었다. 글, 그림이라는 단어 옆에 나의 이름이 가지런히 담겨있는 책.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그림책에 담는다면 오래도록 꺼내볼 수 있는 좋은 선물이 될 것만 같았다.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모두 맡아서 하다 보니 어려움이 다소 있었지만 난생처음으로 도전해 보는 일 앞에서 나는 ‘엄마’로서의 성장만큼이나 ‘나’로서의 성장도 함께 경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들었던 씩씩한 엄마들과 소통하면서 ‘엄마’라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보다 ‘엄마’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들이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페이지마다 정성스레 옮겨 적었다. 독립 출판이긴 하지만 저마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책이자, 세상으로 나아가는 용기 있는 걸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문장들을 마음에 품고 산다. 어려운 순간마다 손을 내밀어주는 따뜻한 문장들도 있지만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어른이 되도록 스스로를 괴롭히는 문장 역시 존재한다. 나 역시도 학창 시절까지 부모님과 늘 아침, 저녁을 함께 보내며 많은 대화를 통해 성장했다. 그중에는 어린 나를 보듬고 껴안는 말들도 있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아프게 남아있는 문장들이 있다.
“개천에서는 용 못 난다.
근처 농공단지에 취직해서 경리로 일하는 쪽을 생각해 보고 엄마아빠도 지원을 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니 더 이상 해외로 나가지 말거라.”
바깥세상이 궁금해서 늘 기웃거리던 나와 부모님 사이에는 큰 강이 하나 있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평생을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며 다른 도시에 가본 경험이 열 손가락에 꼽히는 아빠에겐 본인이 알지 못하는 세상이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으로 겁 없이 뛰어들겠다는 딸이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이 되었을 테고 말이다. 엄마는 권위적이고 목소리가 큰 아빠 곁에서 눈물만 흘렸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나 역시도 부모라는 존재가 돼서야 그 시절,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만 같기도 하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투명한 벽처럼 그 말들이 앞 길을 가로막는 것만 같았다. 사실은 부모님이 나에게 건넨 말들이 사회적 통념상 너무도 맞는 말이었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새파란 딸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미리 건넨 충고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 말들은 오랫동안 내 발목을 잡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려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가 되고 15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이유도 그 말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일테고 말이다.
아주 솔직하게는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는 현실의 차가움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를 발견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잔뜩 작아진 내가 어떻게든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고향에 돌아와 홀로 아이를 키우며 외롭고 고단할 때면 도서관으로 숨어들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몇 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일은 나에게 유일한 자유를 누리게 해주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모집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그림책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신청하게 된 것은 무척이나 현명한 선택이었다. 평소에도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을 종종 찾았지만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들으면서부터는 아이와 함께 읽는 모든 그림책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직접 책의 내용을 기획하고 그리기 위해 더 자주 도서관에 들렀다. 그림책은 단순하고 글밥이 적어서 어린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오래도록 경직되어 있던 생각이 와장창 깨어지는 경험이었다. 어떤 그림책은 인생에 대한 철학을 깊이 담고 있었고 어떤 책은 지구의 온난화를 분명하게 꼬집었으며 또 다른 책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모두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책 속의 문장들은 짧지만 분명했고 따뜻했다.
그림책을 읽으며 나는 비로소 어린 날의 나에게 아픈 말을 건넸던 아빠를 이해하고 그 시절의 나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다. 차가운 세상에서 상처받는 딸의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을 그 마음을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도 같다. 하지만 그 시절의 아빠와 내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건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분명 현실은 차갑고도 냉정하지만 그 속에서 작은 빛을 믿고 걸음을 내디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의 몫이기에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그리고 또 차가운 현실을 걸어갈 아이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책을 빌어해주고 싶었다. 어차피 주어진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단념하기보다는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바라보면서 조금씩 걸어가 보자고. 넘어지면 일어서고, 슬프면 실컷 울고 털어내고, 외로울 땐 뒤를 돌아보면 분명 곁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희망을 말해주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엄마도 이렇게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으니 너도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사랑의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