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은 틀려도 괜찮다고 말했다

지우고 다시 쓰는 마음에 대하여

by Jessie



연필은 틀려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저는 연필을 좋아합니다.



연필을 떠올리면 초등학교 시절, 옆자리 짝꿍의 책상이 먼저 떠오릅니다. 지우개는 이미 사라지고 이빨 자국만 선명하게 남아 있던 연필. 그 아이의 얼굴은 희미해졌지만 연필만큼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연필은 늘 저의 오감을 채워주는 도구였습니다. 종이 위를 긁는 사각거리는 소리, 손끝에 닿는 가벼운 무게, 조금씩 닳아가는 연필심.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져도 그 지난함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연필만큼은 제가 쏟아붓는 시간을 정직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업이 막힐 때면 연필이 사각거리는 asmr을 종종 듣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다시 식탁에 앉아 무언가를 써 내려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조용한 새벽 다섯 시, 창밖에는 조도 낮은 몇 집의 조명만이 켜져 있는 시간. 저는 그 고요를 붙잡듯 연필을 쥡니다. 뾰족했던 연필심이 점점 무뎌질 때까지 하얀 종이 위에 생각을 남깁니다.


무언가를 쓰는 일이 조금 덜 두려운 이유는 아마 그 시간들 덕분일 것입니다. 연필은 언제든 지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 쓴 문장도, 흔들리는 마음도 다시 고쳐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연필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자주 이어집니다.


아빠는 연필을 항상 칼로 깎곤 하셨습니다. 연필깎이를 두고도 이면지 위에 연필을 올려두고 조용히 칼을 움직이던 손. 투박하지만 정직하게 깎이던 그 모양을 가끔 떠올립니다. 말수가 적었던 아빠의 시간은 그 손끝에 담겨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사랑이 어떤 모양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투박한 손끝에서 다듬어진 연필심을 떠올립니다. 무뚝뚝한 손끝에 머물던 까만 연필심 하나.


사이공에서도 저는 여전히 문구점에 들러 연필을 삽니다. 화려하지 않은 검은색의 연필들. 그리고 이제는 아이와 식탁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종이를 펼쳐 놓습니다. 제가 흰 종이 위에 글을 쓰는 동안, 아이는 스케치북 위에 그림을 그립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을 앞에서 먹구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


”틀려도 괜찮아, 지우개로 지우면 되니까 “


그 말을 건네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 말은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 닿기 이한 말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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