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지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빨리 가는 법 대신, 멈추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by Jessie



나는 늘 바쁜 사람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어딘가로 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시골에서 자라며 배운 하루는 늘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집안의 기척, 논과 밭으로 나가는 가족들을 배웅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던 시간.


조금 더 자라서는 할머니의 꽃무늬 바지를 꺼내 입고, 분홍색 장화를 끌며 밭으로 향했습니다. 장녀라는 이름은 늘 한 발 먼저 움직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 시간들을 건너며 몸에 밴 속도는 생각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사이공에서도 저는 여전히 이른 아침에 눈을 뜹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습관처럼 하루를 앞당겨 시작합니다. 하나는, 내가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새벽이라는 시간이 누군가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의 시간은 자주 흐릿했습니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우울이 하루의 표면에 얇게 내려앉아 있었거든요. 남편은 멀리 있었고, 아이는 늘 제 손을 필요로 했습니다. 해야 할 일은 분명했지만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바쁘게 움직였는지도 모릅니다. 멈추면 무너질 것 같은 마음에 쫓기면서요.


하지만 이곳에 와서야 조금 다른 방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들은 가까이 있을 때보다 멀어졌을 때 더 또렷해진다는 것을.


가족의 마음도, 친구들의 시간도 그리고 나의 속도도.



요즘의 저는 앞을 보기보다, 발끝을 자주 내려다봅니다.

빨리 가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대신 늦어지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교와 조급함을 조금 덜어내고 나니 그 자리에 걸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생겼습니다.

여전히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눈길이 갑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러움이라기보다 잘 닦인 길을 가는 사람에 대한 조용한 존중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은 속도를 내지 않으면서도 멈추지 않는 사람입니다.

멈추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제가 닮고 싶은 것은 빠른 사람이 아니라 꾸준한 사람이라는 것을.


저는 조금 늦어지기로 했습니다. 서두르기보다 멈추지 않는 쪽을 선택합니다. 달리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한 편에 남아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저를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다만 이 조용한 다짐은 내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보여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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