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진단은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여는 일
“상담 심리사, 1차 진료기관, 식습관의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 처럼, 자폐 아이들이나 성인들이 주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의료 전문가들이 자폐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향상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왜냐면 진단을 받지 않은 당사자들이 식습관의 어려움, 불안이나 우울 등으로 찾아갔을 때 자폐라는 정확한 진단을 줘야 포괄적으로 지원을 줄 수 있습니다.” 토니 애트우드 박사
“고모 무슨 말이야? 왜 내 애가 ADHD라는 거야? 내가 유치원에서 통합학급 교사인데 왜 내 아이를 모르겠어? 고모가 이민 가고 우리 애를 본지가 8년이 넘었는데 민우를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전화기 너머의 조카가 (목소리 상으로) 정색을 하고 반문했다. 어차피 내가 부모들에게 자녀의 자폐나 ADHD 를 알려주면서 제일 많이 듣던 말이라서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내가 부모들에게 자녀의 진단명을 알려주고 개입을 하는 기준은 엄마가 열린 마음의 당사자여서 조금만 개입해 주면 수월하게 이해를 하고 방법을 찾을 경우와 아이가 신경 다양인 이란 사실을 몰라서(보통 부모중에도 같은 신경다양인인 경우가 흔함) 그 집안의 배가 난파되기 직전이어서 바로 전문가가 개입해야 할 위급한 상황일 때 자발적으로 개입을 한다. 분별력 있는 따뜻한 성품의 조카이기에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아니, 니 아이는 ADHD 맞아. 주변에 자기 애가 자폐나 ADHD 인데 놓치는 교사들 흔해. 그리고 고모 말을 믿어야 민우의 삶도 부부 삶도 좋아져.”
반신반의하는 조카에게 한참을 설명하고 나서 관련된 유투브와 각종 참고 자료를 보내줬다. 다음날 조카에게 연락이 왔다.
“세상에, 고모 말이 맞네. 백퍼 ADHD 네.”
그 뒤에 조카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로 표현되지 못했던 말들을 토해내며 울었다. 가족의 관계가 파편처럼 부서져 있다고,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도록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 때문에 너무 괴로웠다고, 아들의 반복되는 실수들 때문에 부부 싸움이 잦고 부자의 관계가 파탄이 난 듯해서 이혼을 생각하기도 했다고 했다. 겨우 세 식구가 사는데 부자 지간에 언제 서로 언쟁이 붙을지 몰라서 밥을 셋이서 먹을 수가 없고, 가족간에 일상적이고 편안한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려웠다고 실토를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행한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들의 정체를 알고 나니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본인도 매일 반복되는 아이의 실수들과 건망증 때문에 화도 내고 잔소리도 많이 했다고 했다. ‘싸가지 없는 놈’이라며 사회적 규범과 잣대가 높은 아빠에게서 민우가 많이 혼나고 벌을 받았다고 했다. 아빠와 정 반대의 아들은 애시당초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가 없어서 아빠에게 부당하게 많이 혼나고 무시를 당했다며 죄책감이 밀려온다며 반성했다. 너무 멀쩡하게 보이니 “안”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아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상상해 보지 못했다며 자책을 했다. 그래서 조언했다.
“지금도 늦은 게 아니야. 평생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지금이 뭐가 늦어? 진단 주고 제일 먼저 아이에게 사과부터 해. 부모로서 네가 어떤 아이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서 미안하다고, 앞으로 너를 사랑하기 위한 공부를 많이 하겠다고, 너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사실 민우는 3년간 대학병원의 교수를 만나고 있었다. 발단은 식습관이었다.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같은 단 스낵이나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보면 끝을 볼 때까지 먹어 치워야 해서 걱정스러운 부모가 대학병원에 데려갔다고 했다. 3년동안 진료를받으며 교수가 시키는대로 노력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도 아이의 행동이 호전되지 않아서 답답함만 쌓여가고 있었다. 의지할 사람이 전문가고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어서 효과도 없는데 매달리고 있었다고 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 그러니까 내가 자녀의 진단을 도와준 사람들은 나를 “자폐나 ADHD 도사”라고 부른다. 대부분 오랫동안 상담 심리사를 만나오고 있거나 의사를 만나고 있는데도 진단을 놓치고 있는 경우에 개입을 해서 올바른 진단을 받도록 여러 가정을 도와줬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호주 로컬 지인은 내가 두 아들의 자폐와 ADHD 진단을 도와 줬는데( 그아이들도 상담심리사도 만나고 1차 진료기관에도 다녔지만 아무도 정체성을 알아채지 못했다.) 얼마후에 본인도 ADHD 진단을 받고 나서 말했다.
“루아나, 네가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세상의 문을 활짝 열어 줬어.”
반면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 그러니까 내가 진단명을 알려줘도 받아들일 용기가 없는 사람들 또는 본인의 애가 진단을 받기 전의 사람들은 나를 의심한다. 무슨 소리냐고? 의사도 아니라는데 당신이 뭐라고 그런 소리를 하냐고? 그런 경우에는 내가 할 일이 없다. 부디 아이의 삶이 평안하기를 기도할 따름이다.
“왜 간식을 사다 놓은 거에요? 이러면 내가 다 먹어 치우잖아요!”
전 남편은 가끔 화를 냈다(아래 참고 1). 그리고 다음 날 보면 사다 놓은 간식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ADHD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시기이다. 호주는 도시락 문화여서 아들의 등교일에는 도시락과 작은 간식을 넣어주기도 했고, 손님이 오면 다과를 내놓을 때 필요하기도 했고, 가끔은 저녁 후에 가족이 나누어 먹으려고 초콜릿이나 비스킷, 아이스크림 등을 사다가 놓으면 시장 한 번 보러 가지 않는 당사자가 이런 말을 하니 기가 막혔다. 그리고 왜 성인이 초콜릿과 단 음식을 절제를 못해서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 치운단 말인가?
ADHD들의 뇌가 얼마나 쉽게 무엇인가에 퐁당 빠져 헤어나오기 어려운지를 알면서 전 남편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긍정적이고 수용되는 무언가에 빠지고 성공을 하면 열정이고 능력인데 그렇지 않은 일들에 빠지면 중독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이 사람들의 뇌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들에 쉽게 이끌리고, 브레이크가 잘 작동하지 않아 중간에 멈추는 일이 너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이 내 앞에서 아이나 배우자의 행동을 하소연만해도 그 당사자들의 행동이 바로바로 읽히기 시작했다.
또래 아이들은 주식을 먼저 먹고 후식을 먹는데, 그 조절이 안되어 도시락을 싸 들고 아이들과의 만남에 나오는 엄마, 계속 애 뒤를 따라 다니며 단 거 그만 먹으라고 주의를 주며 안절 부절하는 엄마를 보면 바로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조카의 아들 민우의 단 음식 사랑을 듣고 ADHD란 사실을 모를까?
ADHD를 모르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새 아이들이 단 거를 다 좋아하지.”
“우리 애도 단 거 좋아해.”
나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 마나한 이야기를 얹지 않는다. 왜냐면 이 엄마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정도와 빈도는 비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겪는 정도와 빈도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조카는 한날 이렇게 말했다.
“만약 3년간 만났던 대학병원의 교수가 고모처럼 ADHD 아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아이들이 무엇인가에 쉽게 중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강한 음식들에 쉽게 빠지고 조절이 어렵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가기 싫어하는 애를 데리고 3년 동안이나 시간과 돈을 쓰지도 않았을 테고, 정확한 진단을 주고 아이를 빨리 이해하고 아이가 덜 힘들게 키웠을 텐데…”
1. 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루아나 저, 두 종족 두 문화 편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