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無心)씨

9. 휴지

by 조안

무심(無心)씨


9. 휴지


무심씨는 2주에 한 번씩 어디를 간다. 처음에 무심씨는 이곳엘 가기까지 많은 망설임과 선입견과 싸워야 했다. 사람들은 이곳에 다니면 뭐랄까? ‘정상은 아니야’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야. 이곳엘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여기 한번 가볼래?’라고 권유를 하면 ‘내가 미친 거 같아? 그래??’라고 공격을 받기도 한다. 무심씨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일을 겪기 전까지는 …


무심씨의 언니 ‘그녀’는 젊은 시절 꽃같이 예뻤다. 자그마한 얼굴에 무용으로 다져진 몸매, 사교적인 성격 덕에 늘 그녀 주변엔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예쁘고 성격 좋으면 여자들은 싫어할 법도 한데 털털한 성격에 여자들에게 조차 인기가 많았다. 무심씨는 그래서 언니가 싫었다. 늘 비교의 대상이었고 무심씨의 ‘못남’을 지적하고 늘 새 옷만 입었다. 무심씨는 그녀와 나이 터울이 있었던 터라 그녀가 입다 기억에서 사라지면 무심씨의 옷이 되었다. 유일하게 무심씨가 언니보다 잘한 건 ‘공부’였다. 그렇다고 무심씨가 전교에서 노는 수순은 아니었고 그녀가 바닥 가까운 곳에서 놀았던 터라 언니 덕을 톡톡히 봤다.


무심씨가 아마 20대 중반인 어느 날이었다.

“무심아? 어디니? 언니 좀 살려줘”

“뭔 소리야? 살려달라니? 장난해? 나 바빠”

“지금 언니 집으로 좀 와줘:


무심씨는 서둘러 일을 정리하고 그녀 집으로 향했다. 이상하게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언니는 보이질 않았다.

“언니? 어디 있어?”

“무심이니? “


그녀는 침대 밑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 조심스레 그녀 손을 잡고 꺼내 보니 얼굴이며 온 몸이 멍투성이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이 자기 속이고 끌고 가서 협박하고 때렸다. 이야기 속 ‘그들’을 알아내기 전에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옷을 입히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극심한 충격으로 인한 극도의 불안장애 상태고 전치 3주의 타박상 및 외상을 입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곳’에 입원하여 치료하기를 권했다.


“23 병동으로 가셔서 문 옆에 벨을 누르면 담당 간호사가 나올 겁니다.” 수없이 다녀본 신촌의 종합병원에서 23 병동은 없었다. 도대체 23 병동은? 한참을 찾아 헤맨 후 복도 벽에 아파트 현관문 같은 문하나, 그 위에 ‘23 병동’네 글자가 오묘하게 쓰여 있었다. 그녀를 데리고 그곳엘 들어가 보내 새로운 아니, 아주 낯선 장면들이 슬라이드 넘겨지듯 했다. 23 병동은 정신과 병동이었고 그녀는 그곳에서 약 열흘 동안 상담 및 관찰 치료를 받았다. 그녀가 퇴원 요청을 하며 무심씨에게 마지막 한 말은

“무심아? 여기 입원해 있으니 살아야겠단 생각밖에 안 들더라, 그대로 미쳐버리고 싶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어, 이제부터 법적으로 내가 직접 해결해 나갈게”


그녀는 지금의 표현을 빌리자면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였다. 유부남이었던 선배 언니의 친구가 모든 걸 속이고 계획적으로 접근해 그녀의 관심을 끌고 부인과 함께 공모해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돈을 요구하는 협박을 했던 것이다. 다행히 긴 소송 끝에 그들은 사기죄와 공갈협박죄로 처벌을 받았다. 그 후로 무심씨는 정신과를 ‘응급실’이라고 생각을 했다. 사람을 구하는 응급실.


출산과 육아로 무심씨는 균형을 잃어 가고 있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이뤘던 무심씨의 세상과 사람들이 하나 둘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무심하게도


“아무리 아기가 먹다 남긴 거라 해도 밖에 나가 일하는 신랑 주면 안 되지”

“아프니? 아기한테 옮기지 않게 단도리 잘하고”

“내가 아기 잠시 봐줄 테니 또순이 필요한 장 봐오던지”


“저, 사업자 폐업했어요”

“고생했다. 차 막히기 전에 얼른 집에 들어가, 또순이 깰라”


하도 봐서 손때가 가득한 사업자등록증을 폐업 등록하고 오는 길에도 사람들은 무심하게 무심씨를 무시했다. 다, 무너져 내렸다. 그날. 여행용 화장지를 사서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다 써버렸다. 눈가에 발진이 날 정도로.


아이를 재운 무심씨는 무심하게 베란다를 쳐다보다 옷걸이 걸린 옷들을 보며 캐리어 벨트를 찾아 걸어보았다. 튼튼하다. 한 동안 만지작 거리다 친정엄마가 오시자 바로 슬리퍼에 잠옷 바람으로 정신과로 향했다.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 후로 무심씨는 2주에 한 번씩 그곳엘 가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온다.


그곳엔 유난히 휴지가 많다. 상담실에도 대기실에도, 상담 치료실에도,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들 손엔 축축한 휴지 한 뭉치씩들이 들려져 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들은 손에 들고 있는 젖은 휴지를 휴지통에 쉽사리 버리질 못한다. 무심씨도 그랬다. 한동안은 두 손 가득 젖은 휴지를 집까지 가져왔다.


무심씨 순서를 기다리는데 얼굴은 퉁퉁 부었고, 코끝은 새빨갛게 달아 오른, 2년 전 무심씨가 걸어 나온다. 아직도 눈과 코에서는 뜨거운 그것이 흘러내리고 꽉 찬 목구멍 탓에 말을 나오질 않고 손에 쥔 휴지가 떨어질라 조심스레 카드를 꺼내 결제를 한다.


‘살았습니다. 당신도. 시간이 흐르면 휴지도 마를 겁니다.’


무심씨는 그녀를 향해 무심하지 않게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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