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無心)씨

10. 가출

by 조안

무심(無心)씨


10. 가출


무심씨는 중학교 때까지 잘~나갔다. 소위 뒤에서 껌 좀 씹는 친구들 중의 한 무리였다. 게다가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도 아주 잘해서 선생님들의 지지까지 받고 있었다. 한마디로 잘 나갔다. 새로 생긴 중학교라서 선배들의 뭐 그런 드잡이도 없었고 남녀공학이라 어른들의 ‘사랑과 전쟁’ 못지않은 애정사도 넘쳐났다.

무심 씨 중학교 앞에는 동사무소가 있었다. 가끔은 잘생긴? 대학생으로 보이는 까까머리 어른들이 여러 가지 일을 처리했다. 고약한 무심씨 남자 선배들은 그들을 대 놓고 비아냥 거렸다.


“있잖아, 저 형들은 UDT야,”

“그게 뭐예요? 선배?”

“음, 우리 동네 특공대”

“아니지, 동방불패지”

“그건 또 뭔데요?”

“동사무소 방위는 불쌍해서 패지도 않는다”


이 무슨 시답지 않은 농담인가? 그런데도 어린 무심 씨눈에는 그저 멋진 선배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무심씨는 한 대학의 부속 여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와는 다른 긴 역사를 자랑하고 문화와 예술, 그리고 가톨릭 학교라 나름 엄격한 교칙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무심씨는 처음 접해보는 정갈한 교복에 랜드로버에서 아빠가 사준 검은색 단정한 단화, 그리고 엄마의 살색 스타킹을 신고 등교를 했다. 어색하지만 기분 좋은 어색함이었다. '여고생’이 작은 환호성을 보냈다.


“무심아? 오랜만이다. 이야, 교복 끼 깔 나는데?”

“누구? 아, 근심이구나, 오랜만이다.”

“무심아? 너 혼자 학교 가니까 좋니? 씨X”


사실 무심씨 중학교 친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무심씨만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것도 인문계 사립 여자 고등학교에. 친했던 친구들은 중3 때 작은 방황으로 잠시 학업을 쉬어야 했다. 그때 함께 하지 못한 무심씨 그대로 그 무리에서 도태되었다. 그렇다고 무심씨의 고교시절이 평탄했던 건 아니다. 중학교 시절을 날려버린 탓에 학업이며 친구들이며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고3 늦가을 무렵 무심씨는 수많은 질문 속에 살아야 했다. ‘너의 성적은 아니? 갈 수 있는 학교가 몇이 될 거 같니? In seoul은 해야 하지 않을까? 등” 그런데 정작 집에서는 아무런 질문도 관심도 받질 못했다. 무심씨의 엄마는 살기 바빠 그랬다고 하는데 무심씨 생각엔 아마도 그녀의 언니 뒤치다꺼리에 지쳐 그런지 무심씨의 학업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차곡차곡 쌓아 놓은 갈등이 무심씨 혼자 폭발해 집을 나섰다. 눈에 보이는 옷 몇 벌과 책, 글쎄 책은 왜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다이어리를 바쁘게 챙겨 넣어 집을 나섰다. 한마디 남기고


“그래, 씨 X, 나 하나 없어지면 되는 거지? 찾지 마”

그 길로 무심씨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부산 가는 마지막 열차표 주세요”

“23시50분이고 19,500원입니다.”

“네, 잠시만여”


아무리 찾아도 지갑은 보이질 않았다. 청바지 주머니엔 정확히 9,800원이 있었다. 무심씨는 결국 부산행 열차를 타지 못하고 근처 약국을 돌아다니며 9,800원어치 약을 서서 집으로 갔다. 그날로 인생을 끝내고 싶었다. 무심씨는.


집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정확시 2시 15분이었다. 그런데 모두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가족들에서 무심한 존재일 거라 생각한 무심씨는 사온 약을 한 입에 털어놓고 울기 시작했다. 짧은 19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감기는 눈꺼풀을 힘겹게 견디며 ‘그때 친구들이랑 같이 부산엘 가야 했어’라는 생각을 하며 두 눈을 내려놓았다. 눈을 감은 세상 속은 빛으로 가득 찼다. 꽃무늬 앞치마를 두른 엄마는 정갈하게 무심씨 도시락을 싸고 출근길에 아빠는 잠든 무심 씨의 볼에 뽀뽀하며 행복이 가득하길 바랐다. 그런데 현실은 …


“무심아? 얼은 일어나, 학교 늦어, 어딜 밤늦게까지 쏘다니고 지금까지 자는 거야?’

무심씨는 두 눈을 뜨기 전에 지옥에 왔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이렇게 엉덩이랑 등짝이 아플 일이 없고 귀가 찢어질 듯한 엄마의 고함소리도 들릴 리 없다 생각했다. ‘드디어 난 죽은 거다’


“안 일어나?”


지옥도 천국도 아닌 현실이었다. 약국에선 늦은 밤 잠이 오질 않는다는 청소년에서 안정제와 청심환을 쥐어 줬던 것이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무심씨는 화난 엄마의 얼굴이 그렇게 빛나 보이고 반가운 건 처음이었다




30년 후 무심 씨는 다시 한번 집을 나왔다. 엄마도 아빠도 아닌 남편과 딸이 있는 집을 나왔다. 남편과의 깊은 감정의 골이 넘쳐흘러 다신 안 볼 사이처럼 소리를 지르고 나왔는데. 갈 곳이 없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보았는데 연락처에서 전화할 곳이 한 곳도 없었다. 부모님들은 걱정하실까 봐, 친구들은 창피해서, 그렇다고 그저 가벼운 친분에 연락처만 저장한 사람들한텐 더더욱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무심씨를 아프게 한건 쇼윈도에 비친 초라한 자신을 마주해서다.


자정을 넘겨 숨을 고르고 집에 들어가 보니 남편과 딸은 30년 전과 똑같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다른 게 있다면 두 눈을 뜨고도 느낄 수 있었다는 거. 지금 무심씨는 지옥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문뜩 30년전 오늘이 생각난다. '그때 부산엘 갔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을까?"


무심 씨는 동이 틀 때까지 소파에 앉아 새로울 거 없는 하루를 맞이했다. 그런데 그날의 아침은 무언가 새로웠다. 무심씨에게는



이전 09화무심(無心)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