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無心)씨

11. 이별

by 조안

무심(無心)씨


11. 이별


무심씨는 살아온 세월의 길에서 적잖은 이별을 경험했다. 이별이, 헤어짐이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알기도 전에 만났다. 처음에는 몰랐다. 이별이란 걸 어떻게 바라보고 스칠 때 아픔과 지나갔을 때의 먹먹함을 알 수 없었다.


무심씨가 아마도 국민학교 1~2학년 때 일이다. 그때가 첫 번째 이별이다.

무심씨 작은 아빠는 홀로 아들을 키우며 살았다. 뭐 친할머니가 계시긴 하셨지만 워낙에 곱디고운 아씨 출신이라.. 학교를 마치고 동생이랑 공터에서 조금 놀다 집에 들어갔는데 무심씨네 집은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찾았어? 어디 있데?’

“아직 못 찾았어, 아이고 그 불쌍한 녀석 어디 있는 거야?”

그렇게 시간은 흘러 하루가 지났다. 어스름 새벽에 칼로 베는 듯한 전화벨이 울렸다. 말없이 눈물 흘리는 엄마의 얼굴에 무심씨는 아직 잠들어 있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무심씨의 사촌동생은 한강 고수부지에서 찾았다. 한창 고수부지 공원 공사로 여기저기 파놓은 웅덩이에서.

친구의 신발이 빠졌는데 본인이 찾아 준다며 새로 사준 운동화를 물가에 곱게 벗어 놓고 물로 들어가 나오질 않았다고 한다. 어린 아이라 따로 장례를 치르지는 않고 가족들끼리 동생을 보내주었다.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동생을 왜 볼 수 없는지 무심씨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무심씨의 작은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에 넋을 잃고, 친할머니는 새끼 잃은 자식의 눈물에 가슴이 미어져 술 한고푸 드시고 우시고, 무심씨의 엄마는 이런 시댁 식구들의 모습에 화나 나서 그런지 연신 무심씨 아버지에게 소리만 질러 댔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사촌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해당 건설사와 작은아버지는 합의를 보고 그 합의금으로 새 아파트를 사셨다고 한다. 그리고 몇 해지나 결혼도 하시고.


무심씨는 첫 이별에 대함에 있어 낯선 것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아픔의 무게와 깊이, 그리고 슬픔의 시간, 이 모든 것들이 ‘돈’이란 것에 희석되어 흩날린다는 것을.


무심씨에게 있어 가장 쓸쓸한 이별은 그녀의 이모와의 이별이다. 무심씨에게 있어 이모는 뭐랄까 엄마였으면 하는 존재였다. 지고지순하고 자식들을 위해 온 맘과 정성을 다하시고, 화려하지 않고 조용하며 아프지만 살뜰히 때를 꼼꼼히 밀어주던 사람이었다. 무심씨가 고등학교때 뇌종양 판정을 받으셨다. 평소에 두통을 달고 살다가 아니, 참다 참다 ‘큰 병원’이란 곳에 가서 처음으로 가서 받은 삶의 성적표가 그것이었다. 3년간 두 번의 수술과 치료를 받으시다 무심씨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떠나셨다. 가끔은 떠나고 나서야 그 아래 자리가 드러나는 법이다.


무심씨는 대학 새내기인데도 이모의 병상을 지켰다. 아침 일찍 병원을 나서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저녁 무렵에 다시 와서 이모의 망가진 침대 시트를 갈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뽀송뽀송한 새 옷으로 갈아 입혀 드렸다. 머리도 곱게 빗어 넘겨드리고 스킨, 로션도 빠짐없이 발라 드렸다.

“막내딸이 어쩜 이렇게 이쁘고 착해요? 석님 꼭 닮았네”

“막내가 우리 무심이 나이면 내가 이렇게 떠날 생각 못하지”

무심 씨 이모는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과 딸이 있었다. 딸은 자기 새끼 어리다고 엄마의 병상에서 하루도 잠을 자지 않았다. 아들은 행정고시 시험 준비하다 이모의 병으로 포기하고 은행에 들어가서 바쁘다고 얼굴도 비치질 않았다.

여름 햇살이 따가울 무렵 이모는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가족들은 모였다. 사촌언니가 딸내미를 데리고 병원 복도에 앉아 있는데

“얘? 너는 네 엄마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옷이 그게 뭐니?”

야광 분홍색의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언니에게 어르신들 눈살이 찌푸려 들었다.

“무심아? 우리 콩이 좀 데리고 있어 줄래?”

“알았어, 언니, 내가 우리 집에 데리고 가서 보고 있을게”

그 길로 언니는 근처 시장에 가서 하얀색 티를 사 입고 나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여는데 울리는 전화벨에 무심씨는 첫 번째 이별이 떠올랐다. 그리고 알았다. 이모가 떠났다는 것을..


모두가 슬픔에 허덕이는데 그렇지 않은 한 명이 있었다.

“무심아? 네가 어려도 너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네가 부의금 좀 받아야겠어. 절대 자면 안 되고 누가 물어봐도 말하지 말고 꼭 갖고 있어야 해. “

무심 씨의 이모부다. 본인의 부인이 떠났는데 그깟 부의금이 뭐라고 어린 무심 씨를 붙잡고 해선 안될 소리를 해댔다. 어린 무심 씨는 그런 이모부의 말이 뭐라고 삼일 밤낮을 설쳐가며 부의금을 지켰다. 장례가 끝나고 이모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작은 편지 하나 가 있었다. 본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덤덤하게 얼룩진 종이에 써내려 갔다. 은행원이던 이모부는 살림살이에서 10원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모가 떠났을 때도 이모의 부재보단 돈의 부재를 걱정했었다. 자식들도 엄마의 부재보다는 날아간 본인의 미래와 곁에 있는 자기 자식 걱정에 더 바빴다.


무심 씨는 그런 이모의 삶을 어루만졌다.

“이모, 나에게 있어 이모는 우주 세상 최고였어, 최고의 엄마였고, 최고의 요리사였고, 최고의 친구였어. 그리고 이모, 깨끗하게 매주 목욕 데리고 가 줘서 고마웠어, 비엔나소시지도 맛있었고, 요구르트도 고마워, 이모, 슬퍼하지 마, 기뻐해, 이 답답한 사람들 곁 떠나는 걸, 알았지?”




무심 씨는 쓰라린 이별과 마주한 이를 보았다.


오롯이 엄마가 있었기에 지금의 본인이 설 수 있었다고 울고 있는 한 사람. 세명의 아이를 친정엄마가 먹이고 입히고 키워주셨고, 꽃 같은 내 딸 고생할까 살림살이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어머니를 떠나보낸 이를.


“울어요, 참지 말고 울고 싶은 만큼 울어요, 아픈 만큼 아파해요. 그리고 보내지 마세요. 왜 벌써 보내세요? 그냥 자연스럽게 품고 있을 만큼 품고 있다가 그러다가 손 놓을 기운이 생길 때 그대 보내세요. 알았죠? 자식들 앞이면 어때요? 내 엄마랑 이별인데, 나도 엄마 앞에서는 새낀데. 새끼가 어미 앞에서 울고 보채는 건 당연한 거예요. 눈물 참고 있는 딸내미보다는 엉엉 울고 있는 딸내미가 더 보기 좋으실 거예요. 그러니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슬퍼해요. 그러고 나서 밥 먹어요. 많이. 엄마 앞에서 밥 많이 먹어요. 그럼 어머니 좋아하실 거예요. 내 새끼 잘했다고. 품어 안아 주실 거예요. “


이별은 마주할 때마다 다르고 결코 익숙해 지질 않는다. 그저 그 앞에 서 있는 내가 달라질 뿐이지.


무심 씨는 어미 잃은 그녀의 어깨를 꼭 안아주고 아린 맘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앞으로 무심 씨가 마주해야 할 수많은 이별들을 상상해 보며…


가을바람이 참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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