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 엄마가 되어간다.

- 2: 쎄미나 참석으로 쉽니다.

by 조안

< 내가 우리 엄마가 되어간다. >


- 2: 쎄미나 참석으로 쉽니다.


서른여덟이란 늦은 나이에 인공수정 3번, 시험관 1번 만에 남녀 쌍둥이를 출산했다. 만삭까지 짐볼만 한 배를 두 손으로 들고 강의도 나가고 하던 일에 대한 마무리에 정신이 없었다. 임산부들이라면 한번 정도는 참석했을 법한 ‘산모교실’도 참석한 적이 없다. 아이를 임신해서 출산 후 키우는 건 ‘그저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건방짐이 하늘을 찔렀다.


엄마는 늘 그러셨다. ‘세상에 거저 되는 건 하나도 없어. 이것아’

‘엄마니까 없는 거지, 난 아니거든’ 들리지 않는 콧방귀를 뀌며 살았던 거 같다.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그 지독한 콧방귀 냄새에 숨이 막힐 듯 삶이 조여지기 시작했다.


짝짝이로 신은 신발, 밥풀에 쌀뻥과자 부스러기, 고무줄로 질끈 묶은 머리를 하고 정신과로 향했다. 미친년의 정형화된 모습이다.

“어떻게 오셨어요?”

“죽을 거 같아서 왔습니다.”

“왜요?”

“모르겠어요. 숨도 안 쉬어지고 “

“시도는 해 보셨나요?”

“네? 시도여?”

“가령 약을 먹는다던지, 방법을 생각해 본다던지”

살려고 간 곳에서 죽음에 대한 다양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공황장애와 우울증 나의 병명이었다.


치료를 받으며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도 지독히 싸웠던 거 같다. 그것들과




한 달에 두어 번은 미용실 문을 닫았다. 달력 한켠을 잘라서 “쎄미나 참석으로 쉽니다.”라는 메모를 바깥문에 붙이고..

그날이 되면 분주했다. 아이들 셋 등교 준비? 에 평소에는 손님이 앉던 의자에 앉아 거울을 보며 드라이를 하기 시작하고 구르쁘를 말아 놓고 정교하게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빠운데이션에 샤도우, 루주(지극히 엄마의 표현임)로 마무리를 했다. 어김없이 하이힐에 찰랑이는 스커트, 예뻤다. 그래서 싫었다. 나는


엄마가 가게를 비우는 날은 그 전날 아빠랑 크게 싸우던 날이던가 동네 따따부따 아줌마들이 느지막이 미용실에 들러 심하게 수다를 떠는 날이던가 아니면 전날 매상이 아주 좋은 날이었다.

엄마는 손재주가 좋아서 동네에서 나름 손님이 많은 곳이었다. 손재주만큼 소문도 잘 내고 흉도 잘 보고 해서 적도 많았다. 셔터를 내리고 콜드크림으로 화장을 지우며 우는 일이 잦았다. 크림과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빨리 자라고 소리치는 엄마가 무서웠다.


엄마는 나름의 방법으로 본인에게 처방전을 쥐어줬다.

남대문 시장에서 가서 양손 가득 쇼핑을 하고 (물론 다 본인 옷임), 진하게 화장을 하고 아줌마들과 춤도 배우러 다녔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아니라고 발뺌을 하시지만 아직까지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가사가 없는 트로트 음악에 아줌마들이 둘씩 짝지어 방에서 뱅글뱅글 돌며 step by step ~(여든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절대 아니라고 부인하심^^). 특히 봄, 가을로는 대절버스를 불러 꽃 여행 단풍놀이도 정기적으로 다니셨다.

징글징글하게 싫었다. 엄마의 그런 모습들.

그런데 그러고도 행복한 표정이 아닌 게 더 싫었다. 엄마는 얼마나 외로워었을까?


“이것아? 니들이 내 맘을 알기나 알아? 너희들 키우느라 하고 싶은 거 하기를 하나, 술을 먹기를 하나(엄마는 외할머니가 서른여덟에 혼자되어 4남매를 키우며 해 질 녘에 막걸리 드시면서 신세한탄하시는 게 그렇게 싫었다고 한다.), 화투를 치러 다니기를 하나”


아빠를 향해서는

“야?(아빠가 1살 연하셨다.) 너는 밖에 나가서 그래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어? 알기나 알아?”

“애들한테 돈이 얼마가 들어가는지? 살림살이에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

“그렇게 귀찮고 짜증 나면 차라리 들어오지 마”


엄마 생각엔 아빠와 우리가 엄마에 대해 어떠한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서러워하셨던 거다.

남편과 아이들이 “엄마 밥은? 당신 밥은?” 묻지 않는 것이 나는 서럽고 외롭다.


항상 말미에 ‘니들은 엄마처럼 살지마’라고 하셨는데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엄마처럼 살고 있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싫었던 모양이다. 엄마도 가장 싫었던 술 마시는 것 빼고 엄마의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엄마와 난 각자의 방법으로 그것과 치열하게 지지고 볶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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