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문 없는 여자입니다.
< 내가 우리 엄마가 되어간다. >
-3: 지문 없는 여자입니다.
요즘 들어 가장 존경스러운? 아니 의심스러운 이란 표현이 맞다. 오은영 박사. 육아의 신, 아이들의 오데카솔, 에르메스가 가장 잘 어울리는 셀럽,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는 그분이다. ‘어떻게 저리 침착할 수가 있을까? 오은영 박사님 아이들은 얼마나 바르게 자랐을까?’라는 의구심이 끊이질 않는다. 그분을 보고 있으면 나는 한없이 초라하고 문제적 엄마다. 방송 출연 신청을 해볼까 남편한테 물어보니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자기가 기자라 그런지 내 말이 어이가 없어 그런지.. 젠장.
유난히 더운 여름 이른 나이에 갱년기를 겪고 있는(시험관 시술 등 호르몬 치료를 많이 해서) 나에게는 최악의 여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아이들 표현처럼 겨땀파크 개장과 땀 분수를 내뿜으며 목욕을 시키는데 순간 얼음방에 들어온 듯 등골이 서늘했졌다.
“엄마? 엄마의 도리가 뭔지 알아요?”
“좀 가만히 있어봐, 샴푸 하잖아”
“그러니까 엄마의 도리가 뭔지 아냐고요..?”
“그게 뭔데?”
“엄마는 아이들을 돌봐주고 아프면 치료해주고 맛있는 거 해주고 사랑해주는 거”
“그러니까 혼내는 건 엄마의 도리가 아니야”
Oh, My God!
내 아이들은 영재도 아니다. 또래보다 앞서지도 않는다. 8살인데 아직도 더하기를 손가락이 없으면 못한다. 받아쓰기하자고 하면 세상의 절반을 잃은 표정을 한다. 그런 아이들이 나에게 ‘엄마의도리’에 대해 논한다. 내가 나의 모든 걸 접고 두 아이 들을 위해 희생? 하는데….
엄마의 표현을 빌어 ‘억장이 무너진다’
갑자기 내 엄마가 보고 싶다. 삼 남매를 키우며 일을 하며 무너진 억장이 얼마인가?
고작 깨진 기왓장 부스러기 같은 한마디에도 이렇게 아픈데…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엄마의 무너진 억장에 손끝이 저리다.
엄마가 오십이 넘고 마흔이 넘은 삼 남매를 앉혀 놓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시는 게 있다.
“니들은 나한테 고맙다 해야 해. 다른 사람 같으면 진작에 도망갔어”
“죽어라 힘들어도 새끼들 생각하며 악착같이 살았으니까 내가”
어릴 때는 아니 내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몰랐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 것을..
나는 내 아빠가 참 좋다. 이 부분이 내 엄마가 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날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 아빠를 좋아하셨던 한 분, 외할머니는 아빠를 이렇게 부르셨다.
“짜장, 우리 지 서방은 한량이여.. 한량”
외할머니가 집에 오시는 날이면 아빠는 막걸리 서너 병에 종로에서 유명한 바비큐 통닭 두어 마리를 사들고 퇴근하셨다. 물론 해가 살짝 넘어갈 쯤부터 할머니는 마루 한구석에 낮으셔서 술잔을 기울이시길 시작했다.
“엄마? 해도 안 떨어졌는데 뭘 또 마셔?”
“짜장, 해도 수고 혀고 집에 가니 나도 한잔 하는 거지”
엄마의 잔소리가 커질 무렵 삐그덕 거리며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장모님, 저 왔어요”
“아고, 우리 지 서방 왔네. 수고했어, 밥은?”
“막걸리 받아 왔는데 한잔 하실래요?”
“좋지, 내가 이 맛에 여기 오는 거야 이년아? 너 보고 싶어 오는 게 아니고”
그렇게 외할머니와 아빠는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흥에 겨워 세월을 노래하셨다.
그런 아빠도 할머니도 나는 참 좋았다. 쌍꺼풀 진 큰 눈을(유일하게 우리 식구 중에서 엄마만 쌍꺼풀이 있다. 언니도 있기는 하지만 후천성?) 부릅뜨고 소리치는 엄마는 싫었다. 아니, 이 좋은 자리에 같이 앉아서 웃으며 이야기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고.
할머니와 아빠가 남긴 술자리를 치우며 연신 땀을 닦아 냈다. 엄마는. 그리고 미용실 정리를 하시길 시작했다. 하루 종일 썼던 파마 롯트로 세척하고 파지는 빨아서 말리고(지금처럼 일회용이 아니었다), 수건은 짤순이(탈수기)에서 꺼내 가게에 널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겨우 씻고 멍하니 방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오뚜기의 아침의 시작이다.
내 엄마의 별명 ‘오뚜기’ 내가 붙여줬다. 누가 밀어도 일어나고 힘들어도 욕하면 더욱 힘차게 벌떡 일어나신다.
정확히 8시 전에 미용실 셔터를 올리신다. (어린 시절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미용실과 집이 붙어 있었다. 출입분은 따로 있었지만 늘 미용실로 들어와 집으로 가곤 했다) 그리고 곱게 화장을 하신다. 그 무렵 아빠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 출근길에 나선다.
“엄마? 아빠 국좀 끓여주지”
“야? 니엄마 걱정 좀 해봐”
아빠는 7시 50분쯤 집을 나서 302번 버스를 타고 종로로 출근을 하신다. 그리고 사우나에 들러 목욕을 하시고 양화점(수제구두 판매점) 셔터를 올리신다.
엄마는 미용실 셔터를 올리는 그 순간부터 엄마를 위한 시간은 제로다. 그걸 왜 몰랐을까?
할머니가 가시고 그날 밤, 유난히 시려 보이는 엄마의 등이 보였다. 뒤에서 살포시 안으며
“엄마? 뭐해?”
“보면 몰라? 파마 롯트 정리하지, 더워 떨어져”
민망함에 훅 떨어져 나와 파지를 정리하며 엄마랑 대화?를 시도했다.
“엄마? 오늘 손님 많았어?”
“그러게 다행히 오늘은 세탁소 아줌마가 손님을 여럿 소개했네”
“힘들었겠다”
“손님 있는 게 뭐가 힘들어 없는 게 힘들지”
“엄마는 원래 꿈이 미용사였어?”
“아니, 나도 한때는 글도 쓰고 싶고 사람들 웃기는 코미디언도 하고 싶었지”
“엄마가 글을?”
“그럼, 언젠가는 내 살아온 이야기를 쓸 거야. 제목도 생각해 놨는걸”
“제목이 뭔데?”
“지문 없는 여자”
“에이, 그게 뭐야 이상해, 안 팔리겠다.”
그리고 몇 해 지나 엄마 손을 보니 정말로 지문이 없었다.
독한 파마 약에 녹고, 고무장갑 낄 시간이 사치라며 맨 손으로 온갖 궂은일 다 하시고
그때 알았다. 왜 그리 진한 매니큐어를 바르시는지. 손톱도 지문도 남아나질 않았던 거다.
지문 없는 여자 _ 김석자 여사님_ 당신을 여자로 엄마로 아내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버리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키워주고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