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 엄마가 되어간다.

-5: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by 조안

< 내가 우리 엄마가 되어간다. >


-5: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거든~~ “

“엄마, 제발 술 마시고 그 노래 좀 부르지 마”


외할머니는 서른여섯에 혼자되셨다. 외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엄마는 아마 여섯 살인가 그래서 기억이 없고, 그 누구도 할아버지에 대해선 이야기한 적이 없다.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를 ‘청상과부’라고 불렀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혼자된 여자를 옛날에는 그렇게들 불렀다고 한다. 靑孀, 가장 푸르르고 아름다울 때 혼자된 여자, 외할머니시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들에게 큰소리 치신 게 있다.

“짜장, 내가 젊어 청춘 혼자돼서 술장사 빼고는 다 해서 너네 4남매 키웠어. 사람들은 좋은 남자 만나 팔자 고치라고도 했지만 너네 먹이고 가르치느라고 한눈 한번 안 팔았어. 알아?”

(할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하실 때 늘 ‘짜장’을 붙이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그 뜻을 찾아봤다. 짜장은 순우리말로 ‘과연, 정말로, 진실로’라는 뜻이다.)


“그게 뭐 자랑이야? 당연한 거지. 그리고 누가 팔자 고치지 말라고 했어?”

“나 죽고 나면 누구한테 소리 지를래? “

“또 그 소리, 그 소리 좀 그만해, 죽을 사람은 그런 말로 안 해”


할머니의 넋두리가 그리 싫다셨던 엄마가 자신도 모르게 3남매에게 자신의 고되고 힘들었던 그리고 자랑스러운 삶을 이야기하신다.


해 질 녘 막걸리 한잔 하며 노래 부르는 게 싫고, 자식들 끝까지 책임지고 키운 거 자랑하는 게 싫고, 살림살이가 이러니 저러니 참견하는 게 싫고, 생일날 전화 한 통 하지 않고, 생전가야 자식들 코빼기도 보기 힘들다며 불평하는 것도 싫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위 편드는 게 싫었던 엄마,


그런데 내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와 할머니도 애증의 모녀 사이다. 만나면 싸우고 뒤돌아서면 눈물 나고, 지금은 ‘엄마’ 한마디에도 눈물부터 왈칵 쏟아지는 그런 사이.


막내딸인 내 엄마가 44년생이시니 할머니는 삶은 근현대사의 시작이었다. 일제 강점기, 해방, 6.25 전쟁, 할머니의 삶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시대를 겪어 내셨다. 원래는 6명의 자식을 두셨는데 살기 바쁘고 전쟁통에 2명을 잃으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남의 집 이야기하듯 “뮐러, 한 명은 똥 주워 먹고 죽었나? 어쨌나?” 무덤덤하게 이야기하곤 하시지만 내가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그 속이 어떠셨을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큰외삼촌과 이모가 떠나시고 이젠 엄마랑 외삼촌 두 분밖에 남질 않으셨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한글도 모르시고 쪽진 머리에 은색 비녀를 꼽고 늘 한복 차림으로 다니셨다. 손주들을 보면 치마춤을 올려 오핀으로 꼭 잠가 놓은 속바지 주머니에서 잔돈을 꺼내 손에 쥐어주곤 하셨다. 할머니가 오신다고 하면 미용실 문 앞에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다 놓고 이 걱정 저 걱정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할머니? 할머니는 한글도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 집을 찾아와?”

“짜장, 그게 궁금해?”

“응, 할머니 오신다고 하면 길 잃어버릴까 봐 골목에서 할머니 얼굴 보일 때까지 걱정돼”

“걱정할 거 없어, 이거 보고 찾아오지”


할머니는 또다시 치마춤을 올려 속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펴서 보여주셨다.

‘석자네: 수원터미널 524번 302번 신수동 02-716-3219’

이렇게 써가지고 다니시며 모르면 사람들에게 쪽지를 보여주며 수원에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다. 정확한 병명은 어려서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폐질환이셨다. 할머니가 생전에 막걸리만큼 좋아하셨던 게 담배다.

“할머니? 담배가 좋아? 에취”

“좋지, 짜장, 슬픔도 태워버리고 눈물도 태워버리고 세월도 태워버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엄마는 그 자리에서 토해내듯 엄마를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다른 어떤 말도 아닌 오직 ‘엄마’만을 부르고 또 부르고 하셨다.

할머니의 장례는 외갓집에서 치렀다. 병풍 뒤에 할머니 염을 시작했다. 보지는 못했지만 정말 고우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정말 곱디고운 얼굴이셨다. 자그마한 키에 작은 얼굴에 단정히 쪽을 지고 다니셨다.)


할머니의 4남매는 서로 엉켜있는 감정들을 어떻게 떨쳐내야 할지 몰랐다.

“오빠들은 엄마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병원 한번 제대로 모시고 갔어?”

“언니는 형부 눈치 보느라 엄마한테 구박이나 하고, 다들 할 말 있어?”

엄마는 막내라는 이유로 자신의 슬픔과 후회, 그리고 엄마를 잃은 아픔에 몸부림쳤다.


“가족들 다 나오세요.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 인사드리세요”

할머니는 정말 고왔다. 그리고 슬픈 듯 편안해 보이셨다.


“엄마? 엄마”

그리고 엄마는 정신을 잃으셨다. 옆방으로 옮겨 찬 수건으로 엄마 얼굴을 연신 닦아 냈다. 내가 닦아 낸 것은 땀도 아니고 눈물도 아니고 지독히 아프고 아픈 엄마의 그것이었다.


“엄마? 괜찮아?”

“우리 엄마가 있잖아 우리 엄마가 ….”

엄마는 차마 말을 못 잇고 ‘우리 엄마가 엄마가 내 엄마가’라는 말로 이별을 말했다.


할머니 장례가 다 끝나고 엄마는 그제야 그날의 일을 말해주셨다. 곱디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주름진 모습이 아닌 엄마의 기억 저 끝에 있던 푸르르게 예뻤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떠나 듯 뒤돌아 서 가시다가 엄마를 돌아보며 한 손으로 ‘훠이 훠이’ 머리를 좌우로 두어 번, 그리고 위아래로 두어 번, 그리고선 다시 볼 수 없는 엄마 미소를 남기시고 가셨다고 한다.

할머니도 50여 년의 삶의 짐을 내려놓고 그제야 미소 지으며 떠나신 모양이다.


지금 나는 내 엄마가 할머니를 떠나보낸 나이쯤 되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떠나신 그 나이쯤이 다 되어 가신다.


할머니 생각이 나실 때 엄마는 멍하니 앉으셔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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