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 엄마가 되어간다.

-6 : 니 아빠 바람났다.

by 조안

< 내가 우리 엄마가 되어간다. >


-6 : 니 아빠 바람났다.


경단녀가(경력단절된 여성) 되는 사람 중에 몇 명이나 자의적으로 되었을까? 청춘을 다해 이뤄 놓은 나의 커리어를 잘라내는 고통과 출산의 고통 중 무엇이 더 아플까? 출산과 육아를 여자들에게 전담? 시키면서 주변인들은 다양한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그간의 경력이 있는데 아이 키우다 컴백할 수 있지, 다시 일 시작한다고 하면 다 도와줄게,’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위로인지 모르겠다.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한번 쉼표를 찍으면 그 옆에 마침표로 마무리가 된다.

출산으로 인한 몸은 자연스레 회복이 되지만 경력단절로 생긴 생채기는 나도 모르게 곪아서 여러 가지 마음의 합병증을 일으킨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일상의 아니 하루의 루틴이 생겨난다. <기상-아이들 아침 및 등원 준비-등원시키며 커피 한잔-아침 설거지 및 집안 청소-장보기-아이들 하원-저녁 준비 및 저녁-아이들 목욕 및 재우기-육퇴>

이런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수없이 단순해지고 유치해지기 시작한다.

어느 해인가 남편의 생일 때 생전 받아오지 않던 생일선물들을 하나둘씩 가져오기 시작했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명품? 지갑, CK브랜드의 니트 카디건, 그리곤 손글씨 카드 등.. 막장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언년이야? 이렇게 고급진? 선물 주는 사람이?

“어찌 알았을까? 지갑 바꿀 때 된 거?”

“뭔 소리야? 지인들이 준거지, 할 일 없어?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네 “


난 집에서 할 일이 너~~ 무 없어서 쓸데없는 의심과 힘들게 일하고 들어온 남편 의심하는 한심한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내 엄마와 아빠는 처절하게 싸우고 치열하게 살아오였다. 결혼하신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두 분은 처절함이 아닌 치사하게 싸우시면서 살아가고 계시다.

엄마는 막내딸로 자랐고 아빠는 큰아들인데 한량으로 자랐다.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여자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남자가 만났으니 조용할 일 만무하고 ‘이해’라는 단어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찾지 못하셨다.


내 엄마와 아빠는 열정 만랩이시다. 뭐든지 대충대충은 없었다. 부부싸움을 할 때도 끝을 볼 때까지 누구 하나가 넉다운 될때까지 한다. 대부분은 아빠가 각서를 쓰며 백기를 드는 경우가 99%이다.

각서의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다시는 새로 양복을 맞추지 않겠다. 다시는 술 먹고 늦게 들어오지 않겠다. 다시는 누나 속상하게 하지 않겠다. 뭐 이렇다. 아침에 각서 통을 열어 확인하면 어린 나이에도 다리에 힘이 다 빠졌다. 그렇게 치열하게 아이들 가슴 졸이게 하며 싸운 결과물이 이거란 것에 어린 맘의 억장이 무너졌다.


중학교 2학년 때쯤 일이다. 엄마가 이모를 붙잡고 울며불며 아빠 욕을 하고 있었다.

“언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애들 아빠 분명 바람피운다니까”

“아이고 미경 아빠가 그럴 사람은 아니지, 제발 진정하고”

“진정? 언니도 미경 아빠 편이지? 내편은 없다니까”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확신했다. 아빠가 바람피운다고..

내 아빠는 종로에서 양화점을 운영하셨다. 말도 잘하시고 특히 멋쟁이셨다. 늘 아침이면 와이셔츠를 다려서 입고 나가시고 구두에서는 광이 나질 않는 날이 없었다. 여름이면 살랑살랑 거리는 양복바지에 빽구두를(흰색 구두를 어른들 이렇게 불렀다) 신고 다니셨다. 머리는 한가락도 흐트러짐 없이 빗어 올리시고 사우나는 거의 매일 다니셨다.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매너도 좋으시고, 손도 큰 편이시라 한턱도 잘 내시고, 그런 아빠를 엄마는 지독히도 미워했다.


아빠의 바람을 확신한 엄마는 미용실 문을 닫고 의자에 앉아 멍하니 거울만 쳐다보고 계셨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걱정이 되어 쉽사리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빠는 유난히 일찍 출근길에 나섰다. 잠시 후 엄마는 서둘러 우리를 깨우며 알아서 밥 먹고 학교에 가라고 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나는 동생을 깨워 아침을 먹고 등교 준비를 했다.

추운 겨울날인데 엄마는 얇은 코트에 머리에는 모자를 쓰시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아빠 뒤를 쫓기 시작하셨다.


아빠는 이른 아침 염천교 쪽 거래처에 가서 주문한 구두를 챙겨서 종로의 가게로 향했다고 한다. 사람들 출근 전에 진열장 청소 및 신상품으로 디스플레이를 하고 다시 옷을 챙겨 입고 가게를 나섰다고 한다. 아빠는 길 건너 건물로 들어갔는데 순간 아빠를 놓쳐서 그 건물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건물엔 안과와 여러 병원들, 그리고 사무실들, 지하에는 사우나가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1시간 넘게 겨울 추위와도 맞서 싸우며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들어갈 때와 사뭇 다르게 멀끔하고 개운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다다다 다음은 어디지? 이제 그그그 그년 만나러 가?”

추위에 입이 얼어서 말로 제대로 못하시면서도 현장을 잡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 보단 사우나하고 나오시는 아빠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이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아빠는 엄마의 그런 모습이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고 하신다. 한편으로는 자기를 의심하는 엄마한테 서운함도 있었지만. 아빠는 온몸이 얼어서 덜덜 떨고 있는 엄마를 데리고 설렁탕집에 가서 뜨끈하게 몸을 녹여 주었다. 그리고 가게로 데리고 가서 그날 가져온 예쁜 신상 구두를 엄마한테 선물로 주셨다. 집에 가서 미용실 열지 말고 쉬라며 택시를 태워 보내셨다고 한다. 택시 창문을 내려 끝까지 “오늘 일찍 들어와, 내가 언젠가는 잡아 낼 거야”라며 귀여운 경고를 날리셨다고 한다.


그 후로도 한동안 엄마는 아빠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긴 했지만 아빠 바람의 해프닝은 그렇게 사그러 들었다.


그런데 가끔 ‘정말 해프닝이었을까? 아빠는 엄마가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는 한다. ^^




내가 결혼한 그 해 겨울에 아빠는 검은색 가죽 롱코트를 입으시고 안에는 흰색 목폴라 니트를 입으셨다. 풍채가 좋으신 편이라 여밈 단추를 풀고 검정 구두를 신고 우리 집에 오셨다. 남편은 적잖은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한다. 커다란 황제펭귄이 들어오는 줄 알았다고.


“강서방? 오늘 시간 있나? 이태원 샵에 가서 가죽 코트 하나 맞춰줄게”

이전 16화내가 우리 엄마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