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 엄마가 되어간다.

-7 : 엄마의 영정사진

by 조안


< 내가 우리 엄마가 되어간다. >


-7 : 엄마의 영정사진


내 엄마는 벌써 여러 번의 이별을 했다. 꼬꼬마 시절 기억에 없는 아빠와의 이별, 떠나보내기 전까지 지독한 사랑임을 모르고 떠나보낸 엄마의 이별, 그리고 언니와 오빠와의 이별….

내 할아버지와의 이별은 아주 먼 기억 끝이라 보이질 않고 내 할머니와의 이별은 후회와 통곡의 시간이라 기억이 아프고 엄마가 가장 힘들었던 이별은 내 이모와 삼촌과의 이별이었다.


일찍 혼자되신 할머니가 비운 자리를 이모와 외삼촌이 어르고 달래 내 엄마를 키우셨다. 두 분이 떠나실 때 내 엄마는 세상을 잃으셨다. 아마도 그때부터 엄마는 홀로서기에 물집이 잡히고 넘어져 울기도 하셨다.


세상이 지겨웠다. 아침에 눈이 떠지는 것도 눈을 감았다 떠도 계속 밤인 것도 지겨웠다. 다른 엄마들처럼 핸드폰에 아이들 사진이 몇천 장씩, 동영상은 하루에 두어 번은 찍고 뭐 이런 것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무너지지 않고 새끼들 끓어 안고 견뎌 내는 것이 중요했다. 내 엄마 말대로 남들 안 키우는 새끼 키우는 것도 아닌데 유달스럽게 그랬다.




“민수야? 지금 어디야?”

“어디긴 집이지. 지금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들어왔어”

엄마는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한동안 울기만 하셨다.

“왜? 뭔 일인데?? 어디야?”

“지금 세브란스 왔는데 그런데”

“그런데 왜? 말을 해야 할지”

화가 났다. 분명 무언가 안 좋은 일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엄마의 말로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암 이래”

세 글자에 모든 게 정리되었다. 전화기 넘어 우는 내 엄마가 열이 나서 아파 내 앞에서 울고 있는 내 새끼처럼 안쓰럽고 손가락이 오그라들게 아팠다.

“엄마? 내 말 들리지? 유방초음파? 음. 걱정하지 말고 괜찮아.”

아파 우는 내 아이 보듬어 달래듯 무서움에 서글픔에 떨고 있는 내 엄마를 마음으로 안아 달래기 시작했다.

“내가 언니한테 연락해서 지금 보낼게, 나는 내가 가야 하는데 애들 봐줄 사람이 없어서 그러니 걱정 말로 병원에 있어. “

지금도 마음 한편 가시가 되었다. 그때 달려가지 못한 것이.


다행히 엄마는 1기라서 절제는 하지 않고 종양만 제거하는 수술을 하기로 했다. 암에 있어서 1기~4기? 당사자들에겐 그 무게감과 공포는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당신은 암입니다”

“당신은 곧 죽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들린다.


내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할머니처럼

“ 더 살아 뭐해, 자식들한테 짐만 되지”

“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못 해?”


그렇다 치열하게 진절머리 나게 삶을 살아내신 엄마는 ‘암’이라는 예상 밖의 놈을 만나 억울함에 살고 싶음에 울부짖었다. ‘그러게 내 엄마가 어떻게 살아오셨는데, 그깟 암이?’


유난히 더웠던 7월 엄마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마취에서 깬 내 엄마는 역시 마포 귀빈미용실 원장 ‘김석자 원장님’이었다.


“선생님? 내 가슴, 내 가슴은 있나요?”

“네,, 환자분, 유방은 암 조직과 림프절 몇 개만 절제했습니다.”

“그럼 내 가슴, 내 가슴 멀쩡한 거죠?”

“네, 가슴은 보존했고요 유두 아래에서 겨드랑이까지는 절개선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른 이 넘은 나이에 암 수술을 하셨는데 자신의 탐스런(내 엄마는 서양 글래머 스타일이다. 작은 키에 허리는 잘록하고 가슴은 아주 탐스럽게? C컵을 70 넘어서까지 유지하셨다.) 가슴의 존재 유무에 웃고 울으셨다.


꼬박 한 달 이상을 내 집에서 엄마 병간호를 했다. 병원에서 교육받은 식단대로 식사 준비, 배액 주머니는 시간 맞춰 용랑 체크하고 소독, 매일매일 목욕 및 보습.

다행히도 탐스런 엄마의 가슴은 봉긋하지는 않지만 작은 상처를 품었지만 여전히 여자임을 뽐냈다.


내 부모가 아플 때? 내 아이가 아플 때?

난 내 부모님이 아플 때 더 아팠다. 손바닥에 있는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사라질까 봐 아프다.




“민수야? 준형이네 갔더니 아주 옛날 사진들을 크게 액자로 만들었더라고”

“맞아, 요즘 옛날 사진 복원도 많이 하지”

“그럼 혹시 이것도 가능할까?”

엄마는 빛바랜 플라스틱 접시 액자를 가지고 나오셨다. 약 40년 전에 귀빈미용실 원장님으로 동네동 주름잡으셨을 때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등 동남아 여행을 다녀오셨을 때 사진이었다. 액자를 열어 사진을 꺼내보니 뒷면에 작은 필름이 붙어 있었다.

“어머? 필름도 있네? 내가 사진관 가서 물어볼게”


필름은 너무 오래돼서 복원 활 수 없고 사진은 색상 복원을 해서 액자로 만들었다.

태국 파타야 해변에서 수영복에 검정 물안경을 쓰시고 환하게 웃는 내 엄마의 30대 모습


“엄마? 액자 나왔어, 울 엄마 이쁘다.”

“어머나? 이게 가능하네.. 세상 좋아졌다. “

민수야? 이 얼굴 좀 봐 , 주름도 없고 다리도 얼마나 통통하고 섹시하니?”

“그러게 우리 엄마 이쁘네”

“ 나 소원이 있는데 이 액자로 영정사진 해줘”

“뭐? 어떻게 수영복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해?”

“뭐 어때?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 그 순간을 품고 가고 싶은 건데”


그렇다. 뭐 어때, 한평생 세상 소풍 왔다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품고 떠나신다는데


역시 내 엄마는 신여성이다.

영원히 마포 귀빈미용실 김석자 원장님이시다.


당신의 딸이라서 행복합니다.

당신의 삶을 놓지 않고 “여자”로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굴곡진 삶을 치열하게 버텨주셔서 존경합니다.


다음 생에는 엄마의 소원대로 술 한잔 걸치며 세상을 노래하는 멋진 남자로 태어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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