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혼자서도 잘해요
양은냄비와 뚝배기의 차는 무엇일까? 무심씨는 싱크대 수납장을 열고 눈에 보이는 그것들을 보고 고민에 빠진다. 라면은 양은냄비? 된장찌개는 뚝배기? 무심씨는 지금 무엇이 먹고 싶은 걸까?
무심씨는 뜨겁게? 청춘을 보냈다. 공부도 일도 사랑도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달렸다. 그런데 지금 무심씨는 마치 오늘도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고 제3의 성 ‘아줌마’로 성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무심씨에게 그녀가 나타났다.
무심씨는 유난히 나이 차이 많은 언니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족히 10살 이상은 차이 나는 언니들이랑 술잔을 기울이며 고된 하루를 보내곤 했다. 연륜이 있는 아니, 다시 말해보자. 다양한 삶의 케이스를 쟁여 놓은 언니들이 무심씨에게는 가끔 부싯돌 이 되어 준다.
“무심아? 넌 신랑이랑 하니?”
“언니? 뭘요?”
“야? 뭐야, 육아맘 되니 순진해요! 야?”
“하하하 언니도 참, 언니는 형부랑 해요?”
“하하하, 글쎄?”
“그러면서 저한테 왜 그러세요? 언니도 참…”
“그래도 난 열심히? 하면서 살거든”
무심씨가 가자 좋아하는 야심(野心) 언니는 억대 연봉에 송파구에 ‘말하면 뭐해’하는 주상복합에 살고 있다. 형부도 한 시대를 풍미하던 사업가였다. 지금은 은퇴해서 소소하게 투자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무심씨가 본 남자들 중 No.5안에 드는 매력남이다. 그런데 언니에게는 ‘글쎄다.’다.
“무심아? 내일 시간 되니? 내가 그쪽에 갈 일이 있는데 가는 길에 잠시 들를게”
“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일은 무슨, 라운딩 가다가 잠시 시간이 비어서 너 줄 것도 있고 “
다음날 언니는 처음 보는 차를 타고 무심씨네 동네에 왔다. 잠시 유치원 앞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하려는데 낯선? 젊은이? 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무심씨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무심아? 연하 씨야, 요즘 내 라운딩 코치해주고 있거든”
라운딩 코치? 무슨 라운딩 일지.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는 눈에서 알 수 없는 달콤함이 철철 떨어졌다. 그날 밤 무심씨는 야심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잠시 통화 가능하냐고.
“어? 무심아, 무슨 일이야?”
“언니? 집이세요?”
“응, 조금 전에 들어왔어.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요, 오전에 그러니까 조금 궁금해서요”
“하하하, 연하 씨?”
“네,”
“뭐가 궁금한데? 뭐 어떤 사이냐? 이런 거?”
“아니, 그냥, 좀”
“의학적 케어? 메이트야, 언니가 요즘 갱년기잖아”
“네?”
“말 그대로 자연치료요법이야. 특히 여자는 갱년기가 되면 호르몬 균형이 다 깨지고 음양의 조화도 필요하고”
“형부는요?”
“우리? 하하하 44살 넘어가니 남녀가 아니더라고, 그 사람도 그렇겠지만 서로 그냥 가족이야. 쓸쓸하게도”
“무심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언니는 지금 몸도 마음도 아주 편안해, 니 형부? 그 사람도 아마 나와 같지 않을까? “
무심씨는 야심언니가 한 없이 부러웠다. 야심언니는 50은 넘었지만, 여자로 살고 있었다. 스멀스멀 꿈틀거리는 그것과 마주봤다. 외면하지 않고.
‘젠장, 왜 하고 싶은거야? 할 사람도 없는데’가 아니고 ‘하고 싶으면 해야지’로 나름의 길을 찾은 것이다.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여자를 잃어 버리고 아니,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는 중년 여성들의 ‘여자’는 안녕한지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무심씨는 깨달았다. 왜 수많은 남성들이 야동에 빠지는지, 남자들은 알까? 여자들도 그렇다는 걸.
혼자서도 잘할 수 있지만, 가족에서 다시 남녀로 만나 무심하지 않게 잘할 수는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