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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파동 강작가 Mar 21. 2019

인도 위의 노란 보도블럭, 횡단보도에는 왜 없지?

너의 이름은... 시각장애인 유도블럭!!!


거리를 걷다 보면 점과 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발에 걸리고 부딪히는 블럭이 있다. 인도에는 으레 설치가 되어 있는 평범한 블럭이다. 너무 당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보니, 보통은 이 블럭을 보고도 무심히 스쳐지나가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모아스토리를 시작하고 시각장애인들과 이지트립(easytrip.kr) 촬영을 기획하면서부터 이 블럭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블럭들과는 달리 노란 색 바탕에 가로, 혹은 세로 선과 동그란 점이 박혀 있는 이 블럭. 사람들에게는 점자블럭이나 시각장애인 블럭으로 불리지만, 이 블럭의 정식 명칭은 시각장애인 유도블이다. 




시각장애인 유도블럭은 말 그대로 시각장애인의 갈 길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선과 점으로 이루어진 점자처럼, 이 블럭 역시 선과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이렇게 긴 선은 방향을 뜻한다. 이 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 이 점은 어떤 뜻일까? 바로 '멈춤' 표시이다. 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다 멈춰서야 하는 장소에 이르면 점으로 표시하여 멈추라고 안내하는 것이다. 보통은 횡단보도, 길이 막혀 있는 곳, 엘리베이터 앞 등에 점으로 이루어진 블럭이 자리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인들에게는 정말로 필요한 보도블럭이지만, 서울의 인도에는 시각장애인 유도블럭이 끊기지 않고 깔려 있는 경우가 드물다. 보통은 인도의 진입 부분, 끝 부분, 횡단보도 앞 정도에만 블럭이 깔려 있고 그 외에는 유도블럭이 보이지 않는다. 비장애인이 볼 때면 멈추는 것만 알려줘도 족하다 싶을지 몰라도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유도블럭이 언제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채 계속 길을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하지만 만일 유도블럭이 끊기지 않고 깔려있다면? 아래의 영상을 보면 그런 상황에서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유도블럭을 활용하는지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시각장애인이 케인으로 유도블럭을 치면서 걸어가고 있다.



이 영상은 도쿄에서 한 시각장애인이 걸어가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도쿄의 인도에 깔린 유도블럭은 끊김없이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땐 한국과 다른 모습에 낯설고 서먹하여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었다. 하지만 길에서 마주친 시각장애인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왜 이렇게 설치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영상의 시각장애인이 사용하고 있는 스틱은 '케인'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이 케인을 유도블럭의 선 사이에 넣고 좌우로 계속 치면서 길을 간다. 블럭이 끊기지 않고 설치되어 있으면 케인을 활용해 블럭이 가리키는 대로 계속 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끊김없이 길을 인도할 수 있는 유도블럭의 유무는 시각장애인들의 이동권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분명하게 보이는 시각장애인 유도블럭



이렇게 끊기지 않도록 설치되어 있는 시각장애인 유도블럭의 색깔은 노란색으로, 선명하고 분명하게 칠해져 있다. 중간에 하나도 빠짐없이 설치되어 있고 선명한 노란색으로 존재감이 강렬한 편이다. 시각장애인 유도블럭의 강렬한 존재감은 비장애인들에게 '이 블럭은 시각장애인들이 보다 쉽게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라는 이미지가 전달되는 효과가 있다. 



평지와 수평을 유지한 길



유도블럭 뿐만 아니다. 횡단보도 앞의 경계석도 평지와 수평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렇게 턱이 없고 평평한 곳에서는 시각장애인 뿐 아니라 휠체어, 유아차, 어린아이들, 노인들까지도 편하게 다닐 수 있다. 길에서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없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이동환경에 대해서만큼은 여러 시도를 한 모습이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횡단보도 위였다.



횡단보도에도 시각장애인 유도블럭이 깔려 있다.



도쿄 거리의 시각장애인 유도블럭은 횡단보도 앞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횡단보도 위에도 깔려 있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이게 뭘까? 하고 생각했지만, 두 번째 보았을 때에는 '시각장애인들의 길이 끊기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횡단보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건너는 순간까지도 깔려 있는 이 유도블럭은 시각장애인의 불안한 마음을 해소해 주고,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환경을 장애인의 기준에 맞춰 모두가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환경으로 바꾸는 것에는 대단한 아이디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보도블럭을 새로 깔 때 유도블럭을 좀 더 많이 깔고, 횡단보도를 새롭게 조성할 때 유도블럭을 같이 깔면 된다. 






그런데 왜 예전에는, 유도블럭이 없는 횡단보도가 비장애인의 기준에 맞춰진 횡단보도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횡단보도에도 유도블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왜 알지 못했을까?


그것은 내가 비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불편함, 내가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상대가 말하지 않고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물론 상대가 말한다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 역시 높고. 그래서 '횡단보도도 시각장애인에게는 길이 이어지는 곳이다'라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환경을 장애인의 기준에 맞추고, 모두가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환경으로 바꾸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장애인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조금만 더 경험하면 모두에게 편리한 유니버셜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인도와 횡단보도에도 이렇게 끊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유도블럭이 깔리게 되는 날을 상상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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