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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선미 Sep 05. 2021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코로나 시대에 읽는 여행 에세이

정세랑 작가의 에세이 책이다. '작가님이 에세이를 쓰셨어? 그럼 사야지' 하고 받아보니 여행 에세이였다. 6월쯤 4박 5일 강원도 여행에 내내 들고 다니며 읽었다. 모래 해변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읽고, 텐트 안 야전침대 위에서 읽었다. 솔밭 아래 캠핑 의자에 따끈한 전기방석을 얹어놓고 푹 파묻혀서 읽었다.



이후 코로나 상황이 심해져 집과 집 근처 가게들만 왔다 갔다 하며 지내고 있다. 날씨가 너무 좋은 날이면 근교에 바람이라도 쐬러 나갈까 싶다가도 떨어질 줄 모르는 일일 코로나 확진자 그래프와 알파, 델타, 이제는 뮤 변이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뉴스를 들으며 기분만 더 언짢아진다. 그래도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하고 있다. 아직 백신도 맞지 못한 아이들이 더 안전했으면 좋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떻게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책으로 배운단다. 가끔은 그것이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얘는 연애를 책으로 배웠다' 같은 거다. 책읽아웃이라는 팟캐스트에 '그냥'이라는 사람도 모든 것을 책으로부터 배우는 것으로 가끔 놀림(심지어 도서 팟캐스트에서도 그것은 약간의 놀림거리가 된다)을 받는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여행을 가장 떠나고 싶을 때,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여행이 멈춘 시기에 함께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가상의 경험을 하고 싶었다'라는 작가의 말을 읽고 또 읽었다.





책에는 뉴욕, 독일의 아헨, 오사카, 타이베이, 런던 여행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들어있다. 2012년 5월부터 써 온 에세이라고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 권의 책을 쓰겠다는 생각을 놓지 않고 해왔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떤 집중력은 아주아주 긴 시간 동안 유지되나 보다.


정세랑 작가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안에서 그동안 작가가 써온 인물과 배경들을 아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갑자기 『시선으로부터』의 심시선씨를 만나게 되는 식이다. 탐조를 좋아하는 해림이라는 캐릭터가 작가의 어떤 구석을 비추는지, 엠엔엠 집의 원형이 어디였는지. 그런 장들을 볼 때마다 마치 작가가 정세랑 월드를 볼 수 있는 게이트를 반짝하고 열어주는 듯했다. 작품 속 캐릭터들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어떤 방식으로 창조하는지 듣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라서 작가님이 나온 콘텐츠를 좋아한다. <영혼의 노숙자>나 <책읽아웃>이라는 팟캐스트에서도 작가님이 나온 에피소드는 빼놓지 않고 듣는다. 그런데 작가님이 쓴 두꺼운 에세이... 거기에 이제 사진을 곁들인.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이전 작품(또는 미래 작품) 캐릭터의 원형. 정세랑 덕후에게 이 책은 작가의 거대한 작품 노트처럼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본받고 싶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라 다행이다' 생각을 하게 됐다. 요즘 마음 갈 곳이 없는 순간들이 많았다. 먼 곳의 고통이라는 글도 균형 잡히지 않는 화를 달래 보려고 썼다. 이럴 때에는 남의 균형감각을 흉내 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옆을 흘긋 보고 '착!'하고 자세를 다시 잡아봐야지. 그런 의미에서 정세랑 작가는 믿을만한 균형 잡기 사부다.


p107. 마음속의 저울이 잘 작동하는 사람들과만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마음속의 저울은 옳고 그름, 유해함과 무해함, 폭력과 존중을 가늠한다. 그것이 망가진 사람들은 끝없이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사실 이미 고장 난 타인의 저울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저 내 저울의 눈금 위로 바늘이 잘 작동하는지 공들여 점검할 수밖에.
p119. 어느 정도까지 공격적으로 말해도 될 것인가가 오래 하고 있는 고민이다. '조신하게, 예쁘게 말해'하는 식의 강요는 지긋지긋해서 굴절 없이 똑바로 말하고 싶은데 또 어느 선을 지나치면 따가운 공격성밖에 남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면서도 부정적 감정의 발산으로 그치지 않도록 적정 수준을 찾는 것……. 고민은 하는데 매번 실패하는 느낌이다. 언어는 다루는 사람으로서 정교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깎아낸 부분이 남긴 부분보다 많아 심지 없는 완곡어법을 쓰게 되고, 세게 밀어붙이는 글을 쓰다 보면 꼭 엉뚱한 사람이 다치게 되어 후회스럽다. (생략) 사회적 맥락과 개인을 동시에 온전히 이해하는 것, 내가 쓰는 언어의 요철을 없애면서도 예각을 잃지 않는 것. 그 지난한 두 가지가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인 것 같다. 실패하면 그다음 번에 다이얼을 더 잘 돌릴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한다.


여행을 쉬고있다. 아직 날 잘 설득하지 못해서 날이 좋은 날이면 마음 한 구석이 침울해지고, 여행을 간다는 친구들을 질투하다 못해 '이제 제주도 얘기 그만해!'하고 톡방을 싸하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우아한 방식으로 참고 있는 건 아니다. 에세이집의 작가의 말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p396. 하와이는 아름다웠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기적적으로 형성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생태계는 눈 돌리는 곳바다 강렬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아주 취약한 것이기도 했다. 하와이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지키려고 해도 다른 지역 사람들이 엉망으로 살면 그대로 망가질 수밖에 없는 종류의 취약함 말이다. 그래서 하와이를 사랑하게 된 나는 결심했던 것이다. 하와이에 되도록 가지 않겠다고. 제주도를 사랑하면 제주도에 너무 자주 가서는 안 되듯이. 하와이로 은퇴하겠다는 농담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여행 책을 쓰며 어떤 장소에 다시 간다면, 하고 여러 번 썼지만 앞으로의 나는 별로 여행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하와이가 아닌 어디라도, 여행의 기회를 아직 더 여행해야 할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싶다. 찾아낸 보물들을 충분히 품고 있으므로 비행기를 덜 타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한다.


'어떤 사람은 눈으로 보고, 만져야만 그것이 사랑인지 알 수 있다고요!'라고 외치는 육체파 자아에게 정세랑의 사랑 방식을 설득해내고 싶다. 먹지 않고, 밟지 않고, 그 곳에 서 있지 않음으로써 실천하는 사랑말이다. '다시 여행이 시작되면, 그때 남을 발자국들이 가볍고 잘 지워지는 종류이길 가만히 머물며 바라고 싶다.'라고 적는 우아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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