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도 가고, 올해에도 가는 통영 국제음악제
작년 통영 국제음악제 공연을 보러 통영에 갔다. 나는 판교에서 통영으로, 친구는 제주에서 부산을 거쳐 통영으로, 먼 길을 떠나 통영에서 만났다.
음악제만 생각하고 여행을 갔는데, 세상에 벚꽃 천지였다. 음악제를 벚꽃이 만개하는 시즌에 하는 것! 여행을 준비없이 하는 스타일인 둘은 머리가 둘이어도 벚꽃이 핀다는걸 모르고 갔다. 서프라이즈 선물이나 다름 없었다. 바보들만이 만끽할 수 있는 서프라이즈 벚꽃 선물이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봉수로에 벚꽃이 만발했다. 사진은 모두 작년 사진이다.
봉수로 구석에 위치한 찻집에 갔다. 수도권에서는 보기 힘든 이 감성. 이걸 위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은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 뭘 먹든지 '서울에서는 이 맛이 없어'라고 말하는 골수 서울 헤이러들이다. 둘 다 타지에서 올라와 서울 생활에 지쳐서 그렇다... (그런데 실제로도 좀 그렇지 않은가?)
밖에 비가 조금 왔는데,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니 날씨가 아쉽지 않았다.
봉수로에있는 '봄날의책방'에 가서 여행 책도 뒤적거리다가 밥을 먹으러 봉수골에 갔다. 금붕어가 사는 독이 있는 아구찜집이다. 분위기가 시골 할머니네 집에 온 것 같았는데, 덕분에 밥이 더 달았던 것 같다. '봄날의책방'은 민음사 유튜브에 통영 여행을 하는 영상을 보고 따라 간 곳이었다. 작은 책방이라 주인장의 취향을 볼 수 있어 즐거웠다. 채식 요리책을 하나 살까했는데 내려두고 왔다. (살걸)
도착한 당일에 공연을 보러 갔다. 사실... 양인모 때문에 간 여행이었다. 작년에 양인모 연주가 너무 좋아 내내 바이올린 연주만 듣고 살았었다. CD 플레이어가 없는데도 CD를 샀으니 팬심이 대단했다. 공연장 기둥에 크게 붙은 포스터를 보고 너무 가슴이 두근거렸다. 공연장도 정말 좋았다. '이렇게 크고 세련된 공연장이 바다 바로 옆에 있구나...!'하고 놀랐다.
공연을 다 보고 펜션에 돌아와 소주를 마셨다. 제주도에서 온 친구가 제주에서 만든 술인 혼디주와 미상을 들고왔다. 세련되고 웅장한 공연장과 대비되게 펜션 분위기가 너무나도 황조지 여행의 그것이라... 젊은 여자 둘이 이런 펜션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는게 웃겼다.
다음날은 배말칼국수, 톳김밥을 먹고 박경리 기념관에 갔다. 배말칼국수집은 체인인 것 같은데, 예상치 못하게 맛있었다. 네이버 평점이 높지는 않던데... 남쪽 사람들 입맛이 굉장한가보구나 생각했다.
우리는 박경리 선생님의 고향을 찾으면서 '김약국의 딸들'도 안 읽어서는 안되겠다 생각했기 때문에 여행 전에 '김약국의 딸들'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여행 중에도 틈틈히 읽었고 아마 친구는 다 읽고 토지를 읽고 있는 중이었던 것 같다. 통영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김약국의 딸들'을 추천한다. 통영이 고향인 박경리 작가님이 통영을 배경으로 썼기 때문에, 여행지가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고 소설도 재밌게 읽힌다. 박경리의 책이라 하면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지만, 워낙 막장 스토리라 도파민이 팡팡 터지면서 재밌다. 한동안 '김약국의 딸들' 스토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한가지 재밌었던 점이 있는데, 나는 소설 속 사투리를 거의 못 알아들어서 대충 넘어가는 대사가 많았는데 남쪽이 고향인 친구는 사투리 대부분을 이해했다고 한다.
박경리 기념관 들어가는 초입에 카페가 있는데, 포스기에 '뭐무꽁'이라고 써있다. 너무 귀여워... 커피빵과 라떼를 시켰다.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박경리 기념관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벚꽃 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이고, 유채꽃밭이 드넓다. 기념관 안도 잘 구성이 되어있어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은 흥미가 생긴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박경리 작가가 여성으로서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는 어떠했는지, 드라마 판권 계약을 어떻게 하게되었는지 등 작가와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박경리 작가와 박완서 작가와 나란히 찍은 사진이 정말 좋았는데, 최애와 최애가 같이 사진을 찍은것을 목격한 느낌이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진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날도 공연을 보여 하루를 마무리했던 것 같다. 참 웃긴 일이지만, 공연보다 통영 풍경이 더 마음에 남는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여행다운 여행이었다.
여기서부터 시간순이 잘 생각이 안나지만 오미사꿀빵을 샀고 충무김밥도 먹었다. 충무김밥이 좀 단촐하게 나오길래 기대를 안했는데, 세상에 단순한게 생긴것이 진짜 맛있다. 이번 통영에서도 먹고싶은 음식 2위다. 1위는 서문시장에서 사서 소주 안주로 먹었던 자연산 돌멍게다. 3위는 도다리 쑥국, 4위는 멍게 젓갈.
아래 사진은 이순신 공원이다. 여기도 벚꽃이 피어 예뻤고, 남해의 다도해가 인상깊었다. 섬이 많은 남해의 바다는 볼게 많아 재밌다. 공원은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보고 나오려고 했는데, 바다를 보며 한 대화가 깊어졌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도 '친구가 최고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는 방법' 같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아마 고향을 나와 외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 하는 고민이 아닐까 싶다.
대화를 하다보니 어두워져, 나오는 골목에 있던 고양이를 찍은 사진은 배경이 시컴하다.
저녁엔 공연장에 또 갔다. 베르트랑 사마유와 양인모의 포스터는 매우 큰 버전으로 하나 얻었다. 지금도 내 방에 있다.
사실 음악제는 유명한 곡 보다는 좀 더 실험적인 곡이 많이 연주된다. 영화제에서 일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상업 영화보다는 독립 영화를 많이 상영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친구와 같이 듣는데 걱정이 좀 있었다. 내년에도 다시 같이 오고싶은데 친구가 '에이... 내 취향은 아니네' 하면 어쩌나. 나는 내년에 또 같이 오고 싶은데. 그것은 내 기우였고 오만이었다. 생각보다 내 취향은 좁고, 오히려 클래식을 많이 안 들어본 친구의 취향은 넓고 관용적이었던 것. 공연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같은 공연을 듣고 숙소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수런수런 말소리와 함께 공연장만 밝게 빛나는 컴컴한 길을 걸으며 친구는 공연이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또 같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마지막날 아침, 게으른 둘은 여행 내내 일출을 못봤다. 하지만 바다가 코앞인 숙소에서 바다만큼은 실컷 봤다. 왼쪽에 있는 사진은 숙소에서 찍은 사진으로, 마지막 날에는 이 길을 산책했다.
봄 도다리가 제철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도다리 쑥국을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는데, 이것이 정말 여행의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해외 여행보다 국내 여행이 더 재미있는데, 아마 이렇게 철 따라 바뀌는 풍광과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어서인 것 같다.
친구들과 연꽃이 필 때에는 부여로, 벚꽃이 필 때에는 통영으로, 등유 난로가 그리워질 계절에는 포천으로, 여름에는 동해로 여행다니며 나이들고 싶다.
조선의 나폴리 안녕! 곧 다시 만나.
작년에 여행했던 친구와, 올해에는 두 명이 더 합류해 이번에는 네 명이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계절따라, 음악제따라, 영화제따라 친구들과 여행하는게 바로 사는 재미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