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라이킷 1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앙성을 아시나요?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하너미 캠핑장에서 등유 난로를 처음으로 개시하다

by 윤선미 Mar 22. 2025

코로나 시절 덥석 샀던 등유 난로를 들고 날이 좋은 2024년 늦가을에 충북으로 캠핑을 떠났다. 구매한지 적어도 3년이 넘었는데 한 번도 안 켜본 등유 난로를 켠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길이었다.


원래 캠핑을 종종 같이 가던 왕씨와 나(이 둘이 돈을 나눠 등유 난로를 구매했다), 그리고 캠핑 초보 친구가 함께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새 등유통을 들고 주유소에 들어갔다. 등유통 뚜껑도 못 따는 바보들에게 앙성면 농협 주유소 직원분은 친절하게 등유를 팔아주셨다. 리터당 1300원, 우리는 5리터짜리 작은 통을 사서 통을 다 채워 육천얼마를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undefined
undefined


작은 SUV에 경량이라고는 모르는 인간들이 캠핑 짐을 구겨넣어 항상 이렇게 피난을 가는 것 같은 상태로 캠핑에 간다. 뒷좌석에 탄 친구는 이제 아예 면역이 되었는지 그래도 신난다고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해준다. 앙성면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보고 캠핑장으로 출발한다.


사실 여정을 시작하기 전, 집 지하주차장에서 친구에게 캠핑장 근처 하나로마트나 농협을 찾아봐달라고 했다. 핸드폰으로 뭘 찾아보던 친구는 '하나로마트 안성'을 네비에 찍으라고 했다. 네비에 '하나로마트 안성'을 입력하니 경기도 안성시의 하나로마트가 나왔다. 캠핑장 근처에는 '하나로마트 안성점'이 없고 답하니, 친구는 그럴리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 검색을 했는데 나온다고. 


한참을 실갱이 끝에 우리는 우리의 도착지가 '안성'이 아니라 '앙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동네 이름이... '앙성'이라고? 생소한 발음에 가는 길 내내 웃음이 터져나왔다. '앙성'이래 '앙성'.




undefined
undefined


캠핑장에 도착해 텐트를 치고 불을 피웠다. 가을 풍광이 멋졌다. 추운 날씨에 등유 난로에 등유를 채우고 일찍 불을 붙였다. 등유를 구입하고, 난로에 기름을 채우니 어른이 된 느낌이 들었다. 내 나이 서른 중반. 아직도 사소한 일에 '어른이 되었나'하고 생각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데, 왕씨가 식기를 하나도 안가져왔다고 이실직고했다. 분명 수저와 앞접시 그리고 개인 컵은 챙겨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말이다. 왕씨는 그날 감기에 걸려있었는데, 오는 차에서 '죽어도 가서 캠핑 가서 죽어!'라고 외치며 왔을 정도로 컨디션이 안좋았다. 그래도 이놈이 말이야, 고기를 굽는데 자꾸 가위 가져다 달라, 앞접시 가져다 달라 자꾸 부려먹어... '니가 공주님이야?'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던 우리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손하나 까딱 안한다고 '공주님'이라고 칭하는 것은 너무 차별적이다. 앞으로 '왕자님'이라고 하자. 왕씨니까, 왕자님이라는 별명이 더 잘 어울린다. 아니다. '앙성'에 왔는데 '앙자님'이라고 부르자. 몇 번의 공방끝에 그녀의 별명은 '앙자님'이 됐다. 캠핑을 다녀온지 반년쯤 되가는 지금도 우리는 그녀를 앙자님이라고 부른다.


심부름은 많이 시켰지만, 고기는 구워주는 앙자님의 은혜를 받다가 날씨가 추워져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오뎅탕을 끓여 난로 위에 얹어놓고 맥주캔을 땄다.


undefined
undefined


등유 난로가 있으니 추운 날씨가 무섭지 않았다. 작은 난로 하나가 텐트 전체를 데우고 오뎅탕까지 덥혀줬다. 아 이게 동계 캠핑의 낭만이구나. 텐트 밖에는 캠핑장의 고양이들이 부스럭부스럭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심한 기온차에 텐트 안쪽에는 이슬이 맺혔다.


배부르게 먹고 캠핑장 산책도 했다. 캄캄한 캠핑장 위로 별이 쏟아질 듯 많았다. 바람은 차가워도 친구들과 걷는 길이 즐거웠다. 평소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오르막길을 몇 번이나 올랐다. 셋 다 피크민 블룸이라는 게임을 하는데, 걸으면서 꽃을 뿌렸더니 3이라는 글자가 생겼다. 30대 중반 여자 셋이 게임 안에 3이라는 글자에 너무 감격해 서둘러 캡쳐를하고 간직했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다음날 아침은 역시 사발면. 잠옷 바람으로 드립 커피와 집에서 가져간 파지 약과까지 야무지게 챙겨먹었다. 평소에는 아침을 안 먹는데 캠핑만 가면 아침을 꼭 챙겨먹게 된다. 사발면이나, 전날에 화로에 구워둔 고구마나, 과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허기를 채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2


캠핑으로 1박 2일은 너무 아쉽다. 다음날 아침은 저녁에 먹은 것들을 설거지하고, 씻고, 텐트를 걷느라 여유가 없이 종종거려야 한다. 하루 묵었다 가는건데 정리할건 어찌나 많은지. 다음에는 꼭 2박 3일로 오자는 얘기를 하며 캠핑장을 떠났다. 짐도 좀 줄여오자는 얘기를 덧붙이면서. 트렁크가 안 닫혀 집에 못 올 뻔했기 때문이다.


캠핑 덕에 겨울이 기다려진다. 2025년 겨울도 재밌게 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주는 도토리국수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