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틈으로 봄을 그리며
3월이 지나가고 4월을 맞이한 어느 날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봄내음이 한 움큼 흘러내리고 있다. 지난달에 길을 걸으며 내 눈동자에 번지던 추위가 벌써 봄바람이 되어 나의 피부에 스며든다.
3월 중순 어느 날 아파트 단지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아파트 내에 확진자가 나왔으니 2주 격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마트나 식당 등에서 배달 가능했고 아파트 단지 내를 산책할 수가 있었기에, 봄이 성큼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격리가 풀리길 기다렸다.
정확히 2주 뒤에 격리가 해제되자 중국 정부에서는 3월 말부터 각각 푸동과 푸시 지역의 봉쇄를 통지하였다. 5일간 완전 도시 봉쇄이며 마트나 식당도 문을 닫기에 배달도 불가능했기에 3월 말부터 대형 마트 및 편의점들은 모두 시민들의 사재기로 인해 물품 채우기 바빴다. 대형 마트 앞에서 줄을 서서 급히 필수 식량과 생활용품을 샀고 나름 자신 있게 격리 생활을 준비했다.
4월 1일부터 시작된 격리는 5일간 순조롭게 지나가는 듯했다. 격리를 위한 마음의 준비와 실질적인 채비를 마친 뒤라 무섭지 않았고 4월 5일 마지막 날은 다음날 가장 먼저 배달시켜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며 잠에 들었다.
4월 6일 오전 열 시, 배달 앱을 켜보니 마트, 식당 그리고 약국 등 모두 아직 영업 중지였고,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뉴스나 중국 SNS를 찾아봐도 격리 해제 통지는 없었고 아파트 내부도 조용했다. 저녁에 핵산 검사를 위해 1층으로 내려가니 건물 자체에 바리케이드를 쳐 못 나오게 막아놓고 있었다. 같은 건물에 확진자가 나와 21일 격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당장 처리해야 할 비자와 직장이 떠오르며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영사관과 출입경도 문을 닫은 상태라, 모든 것이 정지될 수밖에 없었다.
4월 8일 저녁에 정부에서 나눠주는 식량 박스를 받았다. 당근, 감자, 양파, 오렌지, 계란 10개, 우유 200ml 4병. 지금 당장 먹기에는 충분하여 별 걱정 없이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쌀통을 보니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라면도 2 봉지밖에 남지 않았다.
차분히 앉아 현실을 받아들이며 숨을 고르고 생각했다. 같은 건물에 확진자가 나와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 어떠한 구두상의 혹은 문서상의 통지를 받지 못하였다. 핵산 검사할 때,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한테 식량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물어보니, 새벽 여섯 시에 배달 어플로 한정된 수량만큼 공동구매 가능하다고 하였다. 미리 배달 앱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여섯 시에 구매하려고 하자 ‘서비스 이용이 많아 사용 불가’라는 말만 표시되고 5개 배달 앱 모두 사실상 구매 불가였다. 2만 개 한정 판매라는데 상해 인구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수량임이 분명하다. 휴지, 물, 쌀 등 가장 기본적인 물품들 또한 스스로 구매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 활동 또한 하지 못하며 나라의 불투명한 조직적 움직임에 지쳐가는 것만 같다.
오늘 아침 핵산 검사를 위해 열흘 만에 신발을 신고 밖을 나가니 녹색 잎들이 우거진 나무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며 봄을 알린다. 푸른 하늘 밑에 주민들이 하나둘씩 줄을 서며 짧은 순간의 봄내음을 만끽한다. 피부를 따뜻하게 데우며 살짝 더워지는 느낌이 반가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일부러 줄 맨 끝에 서서 천천히 계절의 공기를 들이마시니 마음도 호흡하며 단단해지는 듯하다.
오늘도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 꼬박꼬박 먹으며 때론 멍을 때리며 창문 너머 맞은편 아파트를 보기도 하고, 숨은 명작 영화들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창문을 열자 퍼지는 봄밤의 공기는 내가 놓고 온 호숫가의 돛단배가 하얀 벚꽃을 그리워하는 냄새 같다. 아련하면서도 설레는 봄의 냄새가 기쁘면서도, 텅 빈 나의 한 구석을 돌아보게 만드는 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