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의 공기들이 하나 둘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저녁의 시간이 시작된다. 낮의 더위에 초점을 잃은 듯하던 사람들의 동공에 가로등의 불빛이 비치며 저녁의 생기를 띠기 시작한다. 태양이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고 버스 정류장 전광판의 빛이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한다.
눈과 귀가 모두 멀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 오늘도 낮 동안 양지의 세계로 나가 가면을 쓴 이들의 언어와 몸짓을 배우며 열심히 흉내 냈다. 나도 그들과 똑같은 얇은 영혼을 가지며 남을 속이고서 기쁨과 슬픔의 중간에서 적당히 역할놀이를 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낮 동안 들끓던 체온을 서서히 내리며 나의 음지식물과 같은 심장을 조심스레 안고 집으로 향할 때면, 고요한 밤, 내 숨소리마저 어색해지는 공기 속에 혼자 놓인 이 밤을 또 견뎌내야 한다. 노란 소파에 누워 허공을 응시하면, 한여름의 매미들처럼 나의 귓등을 간지럽히던 수많은 말들이 내 눈앞에서 나의 수면을 방해한다.
나에게 온갖 말을 쏟아붓는 사람들의 입에서 냄새가 난다. 어렸을 적에 키우던 햄스터 두 마리가 서로 잡아먹은 채 죽어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햄스터가 죽어 있던 작은 사각형 통 속에 코를 갖다 대자, 더 이상 생기가 없는 유기체의 피비린내가 났다.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눈빛에서 그때 그 피비린내가 난다. 차라리 내 눈과 코와 귀가 멀어버렸으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죽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이라면 나는 오히려 ‘살아 있는 것’에 더 가깝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