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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영 Jan 01. 2019

일 생활의 복기

2018년 기억하고 싶은 것 몇 가지

강추위와 힘없이 맞이하게 된 감기 연속 2회분 덕분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연말. 평생 낮에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 연말에는 새로운 시간대에서 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후 3-4시 경 겨울에 집에 햇빛이 눈부시게 들어온다는 점, 그 시간대에 소파에 등을 기대어 앉아 책을 보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집이 좋은 환경이라는 걸 이사온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난뒤에야 알게 되었다. 

사실 시간을 쪼개고, 나누고 기념하는데 영 소질이 없는 편이지만 - 기억력이 점점 안 좋아지기 때문에 기록용으로 2018년을 기록해본다. 아쉬웠던 순간들은 짚어보고, 더 나은 19년을 만들어보기. 

# B2B 영업의 시작 

올해 초 있었던 일의 가장 큰 변화는 새로운 직무를 하나 더 하게 된 점인데, 바로 로스팅한 원두를 우리 매장이 아닌 다른 카페, 오피스, 레스토랑 등에 영업하게 되는 일이었다. '영업'이라는 어감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와닿을텐데, 나는 일을 시작한뒤부터는 영업이 비즈니스의 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서 맡게 되어 무척 설레는 변화였다. 주로 매장과 관련된 업무들을 하고 있었는데, 점점 매장이 많아지고 팀이 커지게 되면서 변화에의 속도에 대한 갈증이 조금씩 마음에 생겼었고, 영업이란 너무나 오랜만에 나와 고객의 1:1 플레이어서 링의 환경, 속도감을 내가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다는 데에서 무한대로 기뻐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돌이켜보면 이것은 영업을 잘 몰랐던 시절 나의 착각..ㅋ) 

영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는 매장 마케팅하면서 오랫동안 뒤로 묵혀(?)두었던 거시적인 사고력을 오랫만에 가동시켜보고, 시장 전체의 환경을 Mapping 해보겠노라! 라고 호기롭게 Key Question들을 뽑고 카테고리별로 만나볼 고객 리스트들을 쭉 적어본 기억이 난다. 카페들도 종류별로 세부적으로 나누어보고 카페 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오피스, 호텔 등은 각각 어떻게 커피를 선택하는 의사결정을 하는지, 의사결정자는 누구인지 등을 샅샅이 파악하고자 했다. 오랜만에 리뷰를 하면서 그 당시의 질문들을 Recap 해보는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다. 

1-2분기에 답하고 싶었던 질문이었으나 너무 Stretch된 목표였던 걸로..

지금 연말에 돌아보니 꽤 많은 종류의 고객군들을 만났는데 아직 그 생태계를 온전히 이해한다고까지 샅샅이 알고 있다고 하긴 어렵다. 그래도 영업 1년차 관점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을 몇가지 적어본다면...

1. 의사결정자의 '군'을 모두 알고 있는 게 유리하다.  
규모가 작은 클라이언트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메인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 1명과 그를 둘러싼 누군가들이 존재한다. Option을 Raise하는 사람과 승인하는 사람, 예산을 관리하는 사람이 모두 다를 수 있고  Tasting하는 사람이 다 다를 수 있다. 각 의사결정자 군은 우리 브랜드를 다른 관점에서 좋아할 수 도 있다. 커피 맛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경쟁우위일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맛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개인의 기호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무기를 갖고 있는게 중요하다맛, 원두의 다양성, 교육, 사후 서비스, 브랜드력, 고객이 브랜드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언가, 마케팅 써포트 등등. 

의사결정자 '군'을 아는 것이 또 중요하고 더욱 강력한 이유는 메인 의사결정자는 항상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연초에 오랫동안 관계를 맺던 고객사의 매니저는 우리의 교육을 우수하게 수료하고 내부의 그라인더를 직접 교체하는 등 적극적으로 커피 맛을 관리해오셨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 카페를 떠나시게 되셨다. 매니저님이 주도해서 바꾼 커피 레시피는 절대적인 관점에서는 더 좋은 맛을 내는 방향을 바뀌었지만, 남아계시던 사장님은 우리와 매니저님만큼 스킨십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그 레시피에 대한 공감대가 낮았고 변화들에 대하여 언짢게 보시게 된 경우도 있었다. 이 고객사는 떠나지 않았지만 초기에 우리를 결정한 한 명의 의사결정자가 이직을 하게 되는 경우 원두가 휙휙 바뀌는 건 종종 있는 일. 

2. 영업에도 마케팅은 중요하다. 
영업에서 Made를 만드는 것은 결국 '원두를 살 시점' '우리를 Short - List 상에 떠올리고' ' 그 중에서 선택할 것'이다. 원두는 에스프레소 그라인더더에 연동해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성 상, 구매 수요는 신규 창업 수요 혹은 원두를 교체할 때의 수요 두가지에서만 비롯된다. 보통 원두는 오픈 초기에 선택하고는 1년 정도는 큰(?)이슈가 없으면 쭉 사용하는 편이어서 고객이 언제 교체할지는 미지수. (물론 카페들이 많이 오픈하는 시기가 봄에 몰려있긴 하지만) 그를 위해서 잠재적인 고객들의 인식 속에 존재하는 것은 중요하다. 마치 브랜드가 끊임없는 활동성을 보여주는 차원에서도 소소하게 크고 작은 액티비티를 해나가는 것 처럼 - 영업에도 고객의 마인드에 항상 들어서있는 것은 중요. 나로써는 좋은 점은 매장이 B2B 영업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마케팅 쇼룸이기 때문에 연계성을 갖고 생각을 해나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런것 치고는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느낌..) 

영업차원에서 우리의 잠재 고객은 어디에 모여있는가? 그들에게 더 좋은 메시지를 전달할 채널은 무엇인가?를 오랜만에 고민하면서 조금 더 직접적인 채널들을 많이 고민했었는데, 역시 결론은 현 시대에는 송출 채널 (장소)를 고민을 하기보다는 좋은 컨텐츠를 만들고 기다리는게 최적의 마케팅이라는 생각. 어떻게 Reach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뾰족한 컨텐츠를 만들고 기다리는 게 훨씬 더 유효한 접근방식이다. 크고 두리뭉실한 이벤트를 만들기보다는 굉장히 구체적인 주제로 이벤트를 열어서 그 관심사에 맞는 고객들을 모집하는 것이 훨씬 좋다. 이를테면, '로스터스 토크(헤드 로스터와 콩 관려하여 나누는 캐주얼한 토크 자리)'를 몇 차례 기획했었는데 그보다는 보다는 우리가 로스팅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 콩을 선정하는 이야기를 쪼개어서 주제로 피처링하는 것이 더 좋은 컨텐츠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의미에서 '추출' 파트 중 '그라인더'만 세부적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눈 후속 컨텐츠 세션은 큰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11월 카페쇼 기간에 마련했던 카페 오너 혹은 잠재적 창업자를 위한 '마케팅/브랜딩 세션'은 오랜만에 참패(?)한 기분이 든 찝찝한 토크여서 스스로 반성을 많이 하게 했던 이벤트였다. 공간 기획부터 공간에 어울리는 액티비티들을 기획하는 것, 마케팅/커뮤니케이션을 총 망라하는 내용을 과외하듯이 친절하게 전달해주고 싶은 것이 나의 욕심이었으나 사실 내용 자체는 전혀 쪽집게가 아니었기 때문에 (매장업의 왕도는 A * B = C가 아니기 대문..) 고객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을까 많은 반성을 하기도 했다. 다시 쓰는 지금도 타이핑이 오그라들게 반성 중..

좁혀서 다행이었다 _ 카페쇼 기간을 맞이해 진행한 '그라인더' 세션
2번 모두 혼을 담았지만 혼을 빼았겼던 마케팅 세션 


3. 고객의 마음 속 들여다보기 
5년전 우리 브랜드가 정말 사소하고 작을 시절 부터 콜드콜을 하는 데 익숙하던 나이기에 영업을 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케팅 담당자로써 다른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를 만나는 것은 두 브랜드에게 상호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업무였다면, 영업 담당자로써 다른 카페의 매니저/ 사장님을 만나는 일은 '원두 교체 고민을 안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그냥 쓸데없는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콜드 콜이지만 나와 상대방의 반응도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영업을 시작한지 3개월차 쯤 되었을 때 나의 가장 큰 고민은 '계속해서 만나서 이야기하던 대상'이 '갑자기 사라지는' 순간들을 보면서, "왜?"라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던 시점이 되면서부터였다. 그냥 콜드콜로 연락했던 대상이 나의 연락을 씹는게 아니라, 미팅을 좋은 분위기에서 마치고 Follow up 연락을 이리저리 하던 차에 갑자기 사라져버린 대상들. 탁구 랠리를 시작하고 내 서브가 끝나고 2세트 치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사라진 그런 느낌? 띄어진 공 그대로 자유낙하하고.. 그들은 왜 사라지는가? 

그럴 때 마다 소환당하는 나의 상사 L과 앉아 케이스 별로 상대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같이 복기해보았는데, L은 사실 개별 건보다는 '그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한' 나의 눈치없음에 대하여 더 짚어주었다. 이는 사실 L 뿐만 아니라 두산 시절의 상사들도 이야기해준 피드백인데, 바로 '상대방이 직접 말하는 컨텍스트 이외 숨겨진 상대방의 맥락이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코멘트를 줄기차게 몇 번 들었었는데 십년만에 또 다시 듣게 되다니. 역시 사람의 약점은 피나는 노력이 없으면 시간이 가도 그대로 그냥 존재하고 있다. (진실) 

아직도 나와 대화해가는 상대의 전체적인 상황이나 맥락을 파악해가는데 있어서는 부족함이 많지만, 이제는 아주 조금의 상상력이 더해져가고 + 내가 초반부에 상대방을 더 잘 알기 위해서 물어봐야 할 질문들을 더 많이 알게 되긴 했다. 내년에는 더 나아지길 기약해본다. 


# '일에서의 나'의 페르소나는 몇 개인가?

이 역시 나의 약점 중 하나인데, 바로 '일'에서의 나의 페르소나의 스펙트럼이 경력에 비해 아직도 좁다는 점.
나는 대부분의 경우 일할 때 1)속도가 빠르고 2) 정석적(FM스타일)인 편이며 3) 오버 커뮤니케이션 4)할말을 Direct하게 한다는 점 인데, 이에 대한 변주 버젼들을 많이 못 키워왔었다. 

나의 위의 특성들은 같이 일하고 있는 그룹군이 나와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고,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환경에서는 좋게 작용할 수 있으나 그 이외의 케이스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이 나와 제로썸의 협상을 하고 있을 때에나, 나는 너무 빨리 패를 까는 혹은 잘 읽히는 쉬운 대상이다. 정말 얕은 위협도 나는 빠르게 진실로 받아들이고, 위협이 진실이라는 가정하에 나만의 플랜을 빠르게 실행해버린다. (쉽게 패닉하는 성격이고 빠르게 대안을 찾는 스타일이어서 회고의 고민없이 너무 빠르게 다음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이 나의 단점). 


올해 8월과 10월에 나의 이런 좁은 페르소나 덕분에 앗차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8월에는 협상 테이블의 마무리 시점에서 상대방이 던진 위협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서 우리의 제안을 필요 이상으로 굽힌 적이 있었고, 10월에는 내가 알던 비즈니스 상식(?)과 어긋나는 논리를 주장하는 대상에게 제대로 항거하지 못하고 허탈한 웃음만 전화기 넘어로 건냈던 순간이 있다. 둘 다 전화로 일어났던 순간이지만 그 때 내가 했었어야 하는 것은 전화를 받는 '나'로써 정보를 받아들이면서도, 위에 나온 '상대방의 의중'을 좀 더 면밀하게 파악했어야 하며 - 최대한 나의 반응속도는 늦추고 필요한 정보를 더 당당하게 요구했었어야 했다. 상대방이 친 서브를 그의 흐름대로 받아쳐내는게 아니라 아예 탁구대를 엎었어야 하는데, 나는 항상 그 서브를 어떻게 쳐내야 할까 조마조마해하는 꼴이었다. 

위악. 


위악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알게 된 건 부끄럽게도 22살 때 쯤, 동아리 리크루팅을 하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세상 제일 착한 누군가를 면접 본 뒤었는데, 나는 같이 면접을 본 동아리 회장 오빠에게 "너무 뾰족해서 다른 사람들이랑 부딪힐 것 같아요."라고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그 때 오빠는 언제나 그렇듯 시원하게 어금니를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하하하 서영아.. 쟨 하나도 안 못됬는데 지금 엄청 위악(?) 부린 거야." 라고 했다. 위악? 왜 그런게 필요한지? 사람은 왜 자기보다 악해보이거나, 쎄보이거나를 할 필요가 있는걸까? 

라고 22살 당시에는 생각했지만... 역시나 지금까지 피나는 노려을 할만한 계기가 없었던 것에 반성. 위악이 답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일하게 되는 맥락/컨텍스트, 만나게 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게 될 수록 그에 따라 나도 더욱 유연해질 수 있어야 한다. 탁구대를 내 마음대로 순식간에 엎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 내가 취할 수 있는 옵션을 '페르소나' 측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개 떠올릴 수 있는 '19년이 되었으면. 

#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 없는 일 구분해보고 문제를 재워두는 연습


이는 주로 조직과 사람 관련된 문제이다. 
나는 대부분 누군가가 어떠한 이슈로 힘들거나 할 때 들게 되는 가장 큰 욕구는 '빨리 문제를 해결해줘서 덜 힘들게 해줘야겠다!' 이고, 누군가 누군가에 대한 오해/ 갈등을 하고 있을 때에는 '속시원하게 서로 같이 얘기해서 해결해주었으면 좋겠다' 인 편이다. 그래서 어떤 문제들을 보면 그 문제를 당사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전달하고 Raise하는 역할을 많이 해왔었는데 - 그래 놓고 실제로 결과가 바뀐적은 그다지 많지 않다.

가끔은 그대로 그냥 재워놓고, 기다리고, 무언가가 저절로 풀리기를 보거나 - 당사자들이 어떻게 변화해가는가를 지켜보는게 훨씬 더 좋은 방법이다. 무턱대고 해결하고자 하는데 들어가는 나의 에너지가 아까워서라기보다는 - 그로 인해 내가 만드는 파동들이 누군가에게는 나비효과가 되어 다른 길이나 결과들을 만들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숙성시키면서 문제를 바라보게 되면, 나도 숙성된 관점과 문제도 실제 문제인 것들만 남게 될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본질과 본질의 곁가지들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해낼 줄 아는 19년의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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