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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영 Nov 01. 2018

10년차

맥주 마시고 반쯤 취한 상태에서 쓰는 회사 생활 리뷰

나의 첫 본격적인 사회생활은 2009년 겨울의 두산이었으니 - 이제 정말 일하기 시작한지 10년차를 향해가고 있다. 

아마도 거의 퇴사직전에 찍은 폴라로이드_ 이제는 이과장 민과장 노과장 그리고 나 

만 9년의 세월동안 나는 세 곳의 조직을 경험했다. 

건설기계 제조업/중공업 베이스의 두산 전략실과, 
사회혁신가를 지원하는 비영리 법인 루트임팩트 
그리고 맛있는 커피 생활을 제법 잘 가이드하고자 하는 에이블커피그룹. 

오늘은 아주 가볍게 10년동안 내가 나에 대해서 알게 된 점 / 일에 대해서 알게된 점들을 몇가지 적어보고자 한다. 

1. 리더는 중요하다. (여전히) 


이건 나라는 캐릭터에서 더 두드러지는 특성일 수도 있는데 - 리더는 정말 너무 중요하다. 
9년 전 쌩뚱맞게 두산 Tri-C팀에 지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게 된 것도 Tri-C팀의 리더인 최재우 전무님(현 부사장님)이 학교에 강연을 오셔서 너무나 진솔하게 본인의 이야기를 한 것에 매료되어.. 가 시작점이었다. 

물론 입사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분이 한달만에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나 팀장님이 교체되는 것을 겪었던 나이지만, 그래서 다시는 리더(만)을 보고 이직을 결정하지 말아야한다고 결심했던 나이지만 여전히 리더는 중요하다. 사실 지금 생각하는 리더는 이제는 CEO 레벨에 가깝지만. 

리더는 당신이 변화시킬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이면서 당신의 환경과 조직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 그의 대부분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은 대상이면 함께 하기 어렵다. 좋은 리더는 자신의 생각과 결정 그리고 인성을 모두 객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하루하루의 객관화를 통해서 냉정하게 더 좋은 생각의 아젠다를 만들고, 더 좋은 자신의 모습을 단련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고가 유연해야 하고, 끊임없이 '중요한'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조직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 민감하고 예민하게 한 명 한명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어릴적(=주니어 적)에는 나를 잘 이해해주고, 발견해주고 나를 잘 육성시켜주는 리더가 좋은 리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좋은 '사수'의 정의에 좀 더 가까운 것이었다.  그리고 리더가 나를 싫어한다면 - 안타깝지만 그것은 퇴사해야 하는 마땅한 사유로 생각된다. (=슬프지만, 그럴만한 공적인 이유가 있다면). 과거의 나도 그러한 대상이었던 적도 있고, 당시에는 그저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그가 고용할 수 있는 의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 하고 그와 함께 한 제한된 인원의 한명이었고, 그녀/그가 만든 조직에 함께이고자 하면 그가 그린 그림에 큰 도움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2. 성장은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가 보내는 하루안에 달려있다. 

사실 이건 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삶 전반에 해당되는 이야기. 
예전에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급 행복해졌다가 삶의 만족도가 빠르게 회귀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 정말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제는 왜 그러한지 이해가 너무 잘 된다. 

인생(=좁게는 우리 삶의 시간) 사실 생각보다 너무나 정직한 것이어서 내가 어떻게 쓰고자하는지의 방향대로 그대로 결과값이 나오곤 한다. 다른 사람한테 한 번 웃으면 두번 웃음이 돌아올 것이고, 말을 걸면 친구가 될 수 있다. 회의록을 매일 적다보면 회의록 정리의 귀재가 될 수 있고, 회의록 정리의 귀재가 되면 회의를 주재하는 능력이 자연스레 키워진다. 회의를 주재하는 능력이 키워지면 사실 자신이 원하는대로 의사결정의 방향을 끌어갈 수 있다. (몹시 정치적인 것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이 사다리의 흐름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참 애석하다. 회의록을 정리하는 건 한 면에서 봤을 때에는 '내가 막내여서 이런 귀찮은 일을 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어릴적에 빠르게 잘 정리하는 스킬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나중에 정말 많은 곳에 잘 쓸 수 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두산에서 주니어로써 끊임없이 써댔던(?) 전문가 인터뷰와 미팅록들이 정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당시에도 번역을 수반하는 일은 툴툴거리면서 했던 기억이 있지만...ㅋㅋ) 가장 오래 했던 공작기계 프로젝트에서 하루에 3-4건씩 있었던 전문가 인터뷰를 저녁방 호텔에 돌아와서 정리하다보면 오늘의 key implication이 머였는지, 내일 더 물어볼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그려지기도 하고 떠돌던 분석이나 새로운 가설들이 하나로 합쳐지기도 했다. 사실 어렵고 난이도가 높은 일 (그것이 산업에서 나오는 것이든 직무에서 나오는 것이든)일 수록 자발적으로 이러한 일들을 하는 것을 권한다. 하루에 1-2개씩만 써도 빨라질 것이고, 빨라지면 잘 하게 될 것이고, 잘 하게 되면 그 이후 5년 10년동안 다른 사람 대비 해서 훨씬 더 많은 일들을 잘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 외에도 참 도움이 되는 많은 좋은 습관들이 있다. 
월요일이 되기 전에 그 주를 미리 계획하는 것.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생각들, 꼭 다루어야 하는 내용들, 의문점들을 미리 뽑아가는 것. Occasion에 따라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Material을 다르게 준비하는 것. 먼저 연락하고, 먼저 Progress를 부드럽게 체크하는 것. 

이 작은 '미리'와 '먼저'들은 정말 많은 차이를 만든다. 일주일에 한번씩 정말 성공한 사람의 강연을 누적으로 듣는 것 계속 듣는 것 보다 오늘 내 생활을 시작하는 10분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cf. 다소 꼰대스러운 Compound Interest 개념의 Learning에 대한_ 내가 참 좋아하는, You and Your Research 강연. 

3. 좋은 팀원과 좋은 매니저(혹은 팀장)은 전혀 다른 역량을 요한다. 당신이 좋은 팀원이라면 나쁜 팀장으로 시작할 확률이 크다. 

가장 뼈아픈 사실. 
그리고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좋은 중간 관리자가 되는 법. 
중간 관리자가 된지 벌써!! 5년이 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끊임없이 회귀하는 것 같은 이 슬픔.. 

좋은 팀원은 - 훌륭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고 동료 팀원들에게 좋은 동기부여와 자극을 주고 행복한 에너지를 빵빵 나누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반면 좋은 매니저 (혹은 팀장)는 

1) 팀이 가야 하는 방향성을 잘 설정하고 
2) 우리 팀의 역량을 총합으로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3) 1+2를 고려하여 목표치를 잘 잡고 조금씩 스트레치해가면서 목표를 달성해가야 하는데, 여기서 어긋날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이 참 많다. 
4)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공적으로 일정 수준이상의 존중(=Best는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전제로 깔려있다. 

1)은 방향성은 잘 설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좋은 팀원이었던 사람들은 2)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참 힘들다. As-Is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자신의 팀원 시절 최근 퍼포먼스나 역량 기반으로 과업의 단위를 내리는 경우들이 많고 (=이러면 과대평가하게 된다) 그에 못 미칠 경우 감정적으로 실망하게 되는 경우들도 종종 있다. 과거에 나도 얼마나 그런식으로 오해를 많이 했던 가 - 를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다. 

4)번 존중을 꾸준히 받는 일은 참 어렵다. 하지만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발을 디뎌 나가는데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목표나 방향성보다 누구를 위해서 / 누구와 함께 그 일을 하느냐에 더 큰 감정적 동기부여를 받는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지 잘 이해하려면 당신이 마음 속 깊이 존중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려보아라.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팀원일 때에는 주로 Struggle 해야 하는 대상은 1)내가 맡은 과업 2)직속 상사 로 한정된다. 
매니저 혹은 팀장이 될 때에는 그 대상이 먼가 레벨*가짓수로 무한대로 늘어나는데, 

1) 내가 팀과 함께 달성해야 하는 과업 / 타임라인 
2) 갑자기 바뀌는 조직의 과업 우선순위/ 환경 (목표나 우선순위가 갑자기 바뀐다) 

3) 팀 간 있을 수 밖에 없는 리소스 관련 커뮤니케이션 
4) 팀원들의 동기부여 및 성장
5) 팀원간의 Chemistry 
6) 팀원과 나의 Chemistry  
7) 과업에 대하여 다른 팀/ 상사에게 주기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기 

이렇게 정신없이 있다보면 사실 '내 동기부여나 내 드라이브'는 관리 항목에도 들어가지 않게 된다. 

하지만 어찌보면 제일 중요한 것이 스스로의 동기부여나 드라이브이다. 

하루에도 눈싸움하듯이 눈덩이를 폭격처럼 맞는 일들이 여러가지가 발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하게 빠르게 회복하고 내가 내야 하는 에너지레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는 감정 기복이 꽤 큰 편이었던 (전형적인 ENFP였던) 나에게는 큰 과제였고 몇년 동안 감정적인 해소를 도와주었던 (이제는 전혀 아니지만) 상사가 없었으면 이렇게 되기도 참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나는 지금도 가슴이 먹먹한 슬프거나 아쉬운 일에는 집에 와서 30분동안 강도높게 (?) 울고 혼자있을 때 아쉬움을 혼잣말로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20분(?마법의 시간?) 안에 해야 하는 일들로 담담하게 집중하는 모드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자신만의 회복 탄력성을 기르는 것은 성공적인 중간 관리자가 되기 위해선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다. 

4. 일을 재미로 하는 시절은 곧 간다. 

사실 지금도 사람들한테 '그 일은 재미있어요?'라고 물어보곤 한다. 
그 순간적인 대답을 할 때 느껴지는 그 사람의 표정, 멈춤, 목소리 톤에서 많은 것들이 느껴지곤 한다. 사실 대답 자체의 텍스트 그 자체보다는 그 말을 뱉기 까지의 짧은 순간에서 그 답은 이미 결정이 난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 나에게 '일은 여전히 재미있어요?'라고 물어보면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음.. 어떤일이 재미있고 어떤일이 재미없어진지 오래되어서요.'라고 대답하게 된다. 한마디로 재미로 일하던 시절은 먼가 잊혀지게 된다. 

어떤 시점인지 모르겠지만 - 아마 3년전쯤 부터? -  어느 순간 나에게 '내가 일을 통해서 느끼는 재미나 개인적인 성취감'은 그다지 중요해지지 않은 시기가 도래했다. 그저 '그 일이 왜 필요하고, 지금 단계에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만이 중요하게 되었다. 필요한 일이면 내가 싫어하는 류의 일이더라도 할 수 있게 되고, '더 잘하기 위해' 마음을 실을 수도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죽기 살기로 마음을 짜냈어야 했다면 지금은 그런 피로도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무언가를 완전히 새롭게 알게 되거나, 내가 한단계로 좀 더 마스터하게 되었거나, 내가 만든 기획으로 성과감을 온전히 느낀다던가 하면서 오는 짜릿한 단기적 행복감은 사라지게 된 것과도 마찬가지다. 대신 하루 하루 무언가를 해낼 때 혹은 위에서 얘기한 눈덩이들을 맞이할 때 떠오르는 얼굴들이 생겨난다. 내가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누군가가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때에는 재미와는 차원이 다른 감정이 지나간다. 그 모습을 볼 때에는 그냥 너무 흐뭇하기도 하고, 남다른 도전을 이겨내고 성장했을 때에는 그 모습에 혼자 울컥하고는 한다. 그건 어쩌면 요즘 언니들이 느끼는 아이가 걸었을 때 느끼는 감정과도(?) 같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암튼 이건 내가 개인으로 느끼는 재미와는 정말 또다른 차원의 감정이고, 무엇이라고 명명해야할지 모르겠다. 

5. 그래도 일이 좋다. 

만 9년 동안 일하면서 사실 2주 이상 쉰 적이 거의 없다. 가장 길게 휴가를 썼던게 아마도 두산 시절 2주, 신혼여행 2주, 작년에 추석 겹쳐서 언니에게 다녀온 2주..
무언가 정말 마음깊이 '한달 동안 쉬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고, 쉬고 싶다라고 떠올렸을 때 내가 갖고 싶은 시간은 순수하게 약 열흘정도면 참 충분히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사실 엄청난 책임감을 갖고 있는 성향은 아닌데 왜 일이란 녀석은 그렇게 싫어지는 적은 없는지 아주 오래 멀리하고 싶은 대상은 아닌지 신기하기도 하다. 

이제 술이 깨고 있기 때문에 두서 없는 리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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