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티 커피 산업 들여다보기 (4)
한국 스페셜티의 커피 브랜드의 시조 격인 브랜드는 2002년에 설립된 ‘테라로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인텔리젠시아가 그랬듯, 테라로사 역시 소비자의 수요를 예측해서 나온 브랜드가 아닌 일본 여행에서 우연히 커피에 빠진 김용덕 대표가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더 파고들고 싶어서 만든 브랜드이다.
2000년 후반부터는 ‘커피 리브레’, ‘앤트러사이트’, ‘모모스’ 등의 브랜드들이 테라로사의 영향을 받고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2013년도, 2014년도에는 ‘빈브라더스’와 ‘프릳츠’가 등장했다. 2015년 이후부터는 직접 로스팅을 하지 않지만,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들에게서 원두를 도매로 받아 사용하면서, 복수의 매장을 운영하는 카페 전문 브랜드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수수 커피’, ‘어썸 커피’, ‘카페 어니언’ 등은 매장을 늘려가며 자신만의 블렌드*를 특정 로스터리 브랜드와 협업하여 만들어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커피 브랜드에서 근무했던 바리스타들이 독립하여 개인 브랜드 매장을 오픈하고, 소량의 생두를 직접 구매하여 자가 로스팅하는 경우들도 더욱 많이 생겨나고 있다.
*다양한 원산지의 커피 열매를 사용하여 만든 원두 상품을 말한다. '스페셜티 커피 산업 들여다보기(2)에서 언급한 '싱글 오리진'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위스키의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 Whisky)’ 개념과 유사하다.
현재 한국 커피 시장에서 스페셜티 커피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카페 시장에서 놓고 보자면, 위에 언급된 주요 브랜드들의 카페 및 원두 도소매 매출의 총합은 1,000억~1200억원 원 언저리로 추산되어 10조에 가까운 전체 카페 카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로 크지 않다.
스페셜티 원두를 도매로 받아 사용하는 카페들에서 발생하는 음료의 매출까지 고려한다면 3,500억 원 전후의 규모로 추산할 수 있다.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들 등에서 판매되는 커피를 고려하더라도 150억~200억 원 정도가 추가되고, ‘폴 바셋’의 커피를 스페셜티 커피라고 고려한다면 500억~600억 원 정도가 추가된다.
이렇게 대형 브랜드 매장들의 매출을 포함해도 현재 ‘스페셜티 카페 시장’ 아직 5,000억 원 미만의 수준이다. 전체 카페 시장 규모인 10조 원의 5% 정도에 해당되는 점유율이다. 이를 빈도로 환원하면, 우리가 ‘카페’에서 마시는 20잔 중 1잔 정도가 스페셜티 커피인 셈이다.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은 점점 트래픽이 많은 도심 쇼핑몰이나 백화점에서도 찾을 수 있게 되어, 실제 생활권에서 마주하게 되는 임팩트는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2012년 신세계 죽전 용인점에 첫 발을 내딘 테라로사 이후, 2014년에는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커피 리브레’가 빵 브랜드 ‘오월의 종’과 함께 콜라보 매장을 오픈하고 이어서 강남 고속터미널 파미에 스테이션에도 오픈하였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를 발견할 수 있는 건 신세계, 현대, 롯데 등의 공간을 기획하는 MD들의 스페셜티 커피 매장에 대한 니즈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으로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제공해야 하는 시대에 오프라인 유통사들은 점점 웹 혹은 핸드폰 화면으로는 전달하기 힘든 감각적인 ‘어떤 것’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식음료 분야는 그중 가장 기대기 쉬웠으며, 이 중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통사들의 러브콜 우선순위가 되었다. 공간 기획력을 갖춘 스페셜티 카페 브랜드들은 유동이 거의 없는 상권, 외곽 상권에서도 고객 집객을 성공시킨 입증된 사례를 갖고 있었다. 이는 카페라는 카테고리가 다른 종목 대비 SNS를 통한 파급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카페는 식당에 비하여 식사 시간뿐만 아니라 오전/ 오후 시간대에도 고르게 집객을 일으킨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은 대부분 카페 매장과 도매 사업을 병행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다. 앞서 살펴본 미국 브랜드의 모델 중 도매 사업과 매장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인텔리젠시아와 가장 유사한 형태라고 볼 수 있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가장 선도적인 브랜드인 테라로사는 카페 사업이 아닌 도매사업으로 먼저 출발하였다. 2002년 경 로스팅을 시작하여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 호텔 등에 납품하는 도매 사업을 먼저 시작한 뒤, 이후 카페 매장을 오픈하였다.
본래 일본에서 생두를 수급해서 로스팅을 해왔었는데, 2008년부터 COE에 참여하면서 산지에 직접 가게 되었고 이후에는 농장과의 직거래를 하고 있다. 2019년 13개 정도의 카페를 서울-강릉-부산-제주도에 걸쳐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3장에서 우리나라 카페 시장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 ‘초대형 매장’에 대하여 이야기했는데, 테라로사가 공간감 있는 카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테라로사 대형 매장들은 규모와 그를 찾는 고객 수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상위 클래스이다. 아마 시애틀이나 상하이, 도쿄에 위치한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정도만이 비견될 수 있는 규모일 것이다.
강릉, 서종의 대형 매장에는 매일 2~3,000명에 가까운 고객들이 매일 찾는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매장들이 모두 수도권 인근이 아닌 어느 정도 운전해서 나와야 하는 ‘관광지 상권’에 가까울 정도로 수도권과 거리감이 있다는 것이다. 대형 매장들의 매출 견인으로 테라로사는 연 매출이 350억원에 이르게 되었다. 테라로사는 60% 이상의 매출 비중이 매장에서 발생한다.
커피 리브레와 모모스는 매장 매출 비중보다는 도매 사업에서의 매출이 더욱 크다. 커피 리브레는 국내 4개 매장과 산지인 과테말라에 매장을 1개 운영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매출은 도매 쪽에서 발생한다. 이 중 미국 브랜드들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특이한 점은 바로 로스팅한 원두뿐만 아니라 ‘생두 판매’를 함께 진행한다는 점이다. 미국에 비해 규모가 작은 한국 시장에서는 다양한 산지에서 직접 원두를 가져올 경우 모든 물량을 원두 도매와 자체 매장의 커피 소비만으로는 소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로스터리 브랜드가 생두를 판매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고, 생두 수입사와 로스터리 브랜드 간 경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작으면서 스페셜티 커피가 발전한 호주 같은 경우에는 스페셜티 로스터리 브랜드가 적극적으로 생두를 구매해오기 위하여 생두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2010년 중반 이후 많은 바리스타들이 독립하면서 ‘직접 로스팅을 하는 개인 브랜드의 카페’가 늘어남에 따라 기존에 커피 리브레의 로스팅된 원두를 구매했던 고객들이 생두 구매 고객으로 전환되며 생긴 비즈니스 변화일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스트롱홀드*'를 비롯하여 다양한 보급형 소형 로스터기들이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고, 도심에 로스터기를 설치하는 규제가 까다롭지 않아 작은 규모의 로스터리 카페들이 생겨나기 좋은 구조이다.**
* 2010년 경 설립된 국내 스마트 로스터기 제조 스타트업으로,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았다.
**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카페 매장에서 배출되는 탄소에 대한 규제 때문에 도심에 로스터기를 설치하기 어려우나, 우리나라는 아직 환경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매장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해가면서 커피 관련 역량을 다른 기업으로부터 인수해온 블루보틀 유형이나, 콜드브루 RTD로 큰 성과를 낸 라 콜롬브같은 유형의 기업들은 아직 국내에서 등장하지 않았다. 국내 RTD 시장은 제법 규모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이 아직 뚜렷하게 진입하지 못한 영역이기도 하다.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에서 직접 콜드 브루를 판매하는 경우들도 많고, 캔입이나 병입 제품도 늘어나는 등 패키지에 대한 테스트는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반면, 편의점의 높은 판매 수수료율과 기존 RTD가 형성한 ‘2,000원’이라는 가격 장벽 때문에 편의점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그중 첫 번째로 편의점에 진출한 더부스가 있다. 더부스는 매장과 도매사업의 매출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인 뒤 편의점에 제품을 입점시켰는데, ‘4캔 만원’이라는 강력한 편의점 가격 프레임을 맞추지 못해 큰 매출을 일으키지 못하고 편의점 판매 채널을 늘려가지 않았다.
반면 국내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 ‘ARK 맥주’ 같은 경우에는 편의점에서 ‘3캔 만원’의 묶음 프로모션을 진행하여 그나마 매대에서의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RTD 상품은 ‘대량 생산’ 되어 ‘전국적인 채널에서 많이 판매되어야’ 매출과 이익 측면에서 의미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라 콜롬브처럼 직접 RTD 생산설비를 구비해서 제조 경제성을 갖출 필요도 있다.
한국 커피 시장이 2010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급팽창하면서, 해외 스페셜티 브랜드들도 국내에 관심을 갖고 진출해왔다. 앞 장에서 다룬 인텔리젠시아나 동시대의 브랜드인 스텀프 타운 모두 ‘브랜드 직영 진출’이 아닌, 그들의 원두를 사용하는 다른 브랜드로 우회 진출하였었다.
인텔리젠시아는 ‘이스팀(Esteem)’이라는 브랜드에서, 스텀프 타운은 ‘팬케익 에피데믹(Pancake Epidemic)’이라는 카페 브랜드에서 소개하였다. 이스팀의 경우에는 인텔리젠시아의 브랜드 가치로 별 어려움 없이 2015년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1호 매장으로 오픈하고 이후에도 청담 SSG 등 대기업 유통사들의 프리미엄 상권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스팀 매장은 인텔리젠시아 로고나 명칭 그대로를 간판에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인텔리젠시아의 원두나 MD들을 통해 인텔리젠시아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스팀은 큰 반응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인텔리젠시아의 브랜드 가치가 한국에서는 생각만큼 높지 않았을 수 있다는 점, 높았더라도 ‘인텔리젠시아’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 부분적인 라이선스 사업권이 브랜드를 알리는데 제약이 되었을 수 있는 점도 기인할 것이다. 하지만 카페를 공간으로 소비하는 한국 시장의 특성을 잘 읽지 못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들이 선택한 첫 매장이 브랜드의 색깔을 공간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백화점 매장인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고객들이 인텔리젠시아의 한국 매장에 기대하는 것은 인텔리젠시아의 원두를 사용하여 맛있게 추출된 커피뿐만이 아닐 것이다.
시카고 혹은 LA 베니스 비치에서 느낄 수 있는 인텔리젠시아만의 ‘공간적 바이브(Vibe)’도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따라서 다소 유동이 적더라도 인텔리젠시아의 브랜드 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로드샵 매장이 더 좋은 첫 번째 매장 출점 전략이었을 것이다.
2019년 한국에 들어온 블루보틀은 한국 시장의 특성을 잘 잘 읽은 사례로 여겨진다. 원래 2018년 3월에 오픈하기로 발표했었던 매장 출점이 2019년 5월로 1년 넘게 미루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적합한 공간’을 찾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네슬레의 대규모 투자를 받은 블루보틀이 한국에 진출할 때 한국 네슬레와 합자법인을 세운 대규모 유통사인 ‘롯데’가 기존에 갖고 있는 백화점 공간이나 쇼핑몰 공간에 오픈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블루보틀은 그쪽을 선택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부동산 전문 회사들에게 건물 검토를 맡겼으며 1년 넘게 일본 지사에서 직접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잠재 사이트를 살펴보고 의사결정을 진행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공간을 준비해온 1호점 성수 매장과 2호점 삼청점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다만 블루보틀이 현재 그리고 앞으로 ‘커피’ 그 자체로 소비되고 있는지는 장기적으로 판단이 필요한 일이다. #블루보틀 해시태그로 검색되는 대부분의 후기를 보면 블루보틀 로고가 등장하는 컵, 사이니지, 건물과 함께한 인증샷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눈치게임 성공’등의 문구 등은 아직은 ‘이 브랜드를 내가 소비했다’라는 과시성 소비에 가까워 블루보틀의 커피 맛과 커피 경험이 그 소비의 중심으로 갈 수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일본에서 도쿄 시민들의 일상 속 커피로 깊숙이 자리 잡은 블루보틀을 보자면 한국에서도 아주 어려운 과제는 아닐 것이라고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커피 경험’을 ‘카페 경험’의 중심에 놓는 것은 비단 블루보틀의 숙제만은 아니고 국내 모든 스페셜티 브랜드들이 안고 가야 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스페셜티 커피가 그저 ‘카페 공간’과 ‘브랜드’로만 소비된다면, 대규모의 자본이 더욱 멋진 공간과 브랜드를 론칭하는 경우 흔들리거나 맥없이 무너질 수 있다. 이는 많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내부자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고객들의 시선과 관심을 ‘공간’이나 ‘브랜드 로고’가 아닌 ‘커피 그 자체’와 ‘커피 경험’에 돌릴 수 있을까?
최근 2-3년 사이 국내에 들어온 호주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은 미국 브랜드들과는 또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미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이 대규모 자본을 들여서 연속적으로 오픈을 해나간 사례라면, 호주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은 예전에 호주에서 일한 한국인 바리스타들이 자신들이 일한 로스터리의 원두를 한국으로 수입하는 케이스이다.
호주 브랜드의 매장들은 굉장히 작고, 거의 단일 매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2016년 경 오픈한 상수동의 ‘듁스 GPO’나 2018년에 성수동에 오픈한 ‘모멘토 브루어스’는 각각 호주의 ‘듁스 커피’와 ‘마켓 레인 로스터스’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한국인 바리스타가 한국에 돌아오면서 연 매장이다.
규모가 작은 매장은 일반 고객을 여럿 받기에는 부족할 수 있어도, 원두 도매를 위한 쇼룸 역할을 하기는 충분하다. 일종의 브랜드 쇼룸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카페 공간은 크게 화려하지 않고, 깔끔하고 단조롭고 편안한다. 매장이 작기 때문에 고객 한 명 한 명 접대하기 더욱 수월하고, 말을 걸고 취향을 알아가기 쉽다. 그래서 비교적 ‘커피’에 보다 집중한 매장이다. 오히려 ‘커피 경험’에 대한 힌트를 더 얻어가기 쉽다.
소형 매장을 경험 중심으로 이끌어내는 것, 혹은 단일 매장을 경험 중심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비교적 실현 가능한 이야기이다. 일하는 바리스타의 절대 인원이 적고, 창업자와 항상 함께 있을 수 있어 팀의 동기부여 수준이나 응대 수준도 높게 유지될 수 있다. 또한 하루에 제한된 수의 고객과 만날 수 있어 바리스타와 고객과의 소통도 원활할 수 있다.
하지만 복수의 매장을 운영하게 된다면? 혹은 하루에 몇백 명 단위를 만나는 대형 매장을 운영하게 된다면? 어떻게 방문하는 고객에게 그저 좋은 카페 공간이 아닌, 좋은 커피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까? 다음 장에서는 빈브라더스가 그동안 브랜드를 성장시켜가면서 고민해온 고객에게 제공하는 ‘커피 경험’, 그를 갖춰가기 위해서 시행했던 시도들과 시행착오들에 대하여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