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티 커피 산업 들여다보기 (3)
미국에서 커피 시장이 이렇게 변화해오는 동안, 우리나라는 어떠한 변화들이 있었을까?
우리나라의 1st Wave는 1970년대, 동서식품이 인스턴트 커피를 보급하기 시작한 이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전까지는 주로 다방에서 소비되던 커피가 인스턴트 커피의 보급 이후 집에서나 사무실에서도 더 자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두번째 물결은 스타벅스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 2000년 경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대 1호점을 시작으로 서울의 주요 도심에 스타벅스가 생겨나면서 유사한 형태의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 공간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기 시작했고, 할리스, 이디야, 카페베네와 같은 한국형 카페 전문점들이 생겨나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한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테라로사는 2002년 강릉을 기반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미국보다 약 10년 정도씩 늦은 타이밍으로 우리 나라는 커피 시장의 변화들을 흡수해갔다. 테라로사 이후 커피 리브레, 앤트러사이트, 알레그리아, 테일러 커피 등이 2010년 전후로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짚고 가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커피 시장과 미국 커피 시장의 다른 점이다.
<‘카페’ 중심의 한국 커피 시장>
유로모니터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8년 기준으로 전세계 카페 시장의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원두커피 및 믹스 커피 시장 규모는있어서는 10위권에 그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커피 시장이 굉장히 카페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지시하기도 한다. 조금 더 자세히 비교해보기 위하여 미국 전체 커피 시장의 소비 상황별 (구 성비)Map과 우리나라 Map을 한번 비교해보도록 하겠다.
2017년 기준으로 미국 시장의 Segmentation을 잠시 살펴보면, ($1=1,000KRW) 가정 전체 80조 원 정도의 시장에서 , 이 중 63(79%)조 원이 ‘집이 아닌 밖'에서 소비되는 커피 음료 등에서 발생하고, 나머지 17조 원은 집 안에서 소비되는 원두/ 캡슐/ RTD에서 발생한다. 전체 시장 규모에서 카페가 구성하고 있는 비율은 25% 수준으로, 21.5조원 수준이다. 카페 이외의 장소에서의 소비로는 편의점 6.3조 원, 호텔/레스토랑/푸드코트 혹은 케이터링에이 18.5조 원, 맥도날드/던킨 등에서의 빠른 서비스 리테일이 13.5조 원, 오피스 시장이 3.2조 원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카페'에서의 소비 21.5조 원 중 10조 원 정도의 매출이 스타벅스의 단일 브랜드에서 발생하여 카페 카테고리에서의 40% 수준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이라는 것이다.
<2017 US Coffee Market Map_Away From Home> 출처: SCA
<2017 US Coffee Market Map_At Home> 출처: SCA
[한국] 전체 커피시장 사이즈 - 약 12조 (2018 기준)
위의 미국의 분류기준과 유사하게 시장을 구분하고 추정해본다면,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은 수치를 도출해낼 수 있다.
# Away From Home
# At Home
<2018 한국 커피 시장>
출처: 닐슨 리서치, 편의점 회사들 IR자료, 커피 전문점 수와 평균 매출을 통한 추정치입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전체 시장에서 커피 전문점(카페)이 차지하는 것이 70% 수준 이상이다. 미국의 25%와 비교한다면 압도적인 숫자이다. 미국에 비해서는 집에서 원두를 내려마시는 시장이 굉장히 작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밖에서 마시는 커피의 경우에도 호텔이나 레스토랑, 맥도날드 같은 Quick Service 매장보다는 카페에서 소비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미국과 한국의 카페 개수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미국의 카페 개수는 40,000 개 내외로 추정되는 반면, 한국은 2018년 기준으로 88,000여 개의 카페 업종이 등록되어있다. 5000만 인구를 감안한다면, 인구 570명 당 카페가 1개 있는 셈이다. 미국 카페 시장 규모가 우리나라의 2배 이상의 사이즈라는 것, 미국의 인구가 우리나라보다 약 4배 정도 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의 카페 시장 규모는 유독 업체 숫자에 있어서 규모있게 성장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한국에서 두드러진 카페 시장의 비중으로 유추할 수 있는 점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에 비하여 커피를 마시는 상황 중 ‘카페'가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그래서 원두커피 시장이나 인스턴트, 캡슐커피 시장의 구성비가 미국보다 훨씬 작다. 이 현상과 반대되는 하나의 특이한 데이터는 바로 RTD 시장인데, RTD 커피는 2018년 기준 1조 3천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며, 국내 커피 시장의 11% 정도의 구성비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RTD 커피는 매일유업(카페라떼)와 남양유업(프렌치카페) 중심으로 컵 형으로 발전해왔다가, 이후 스타벅스가 동서에게 라이센스를 맡기면서 병입 프라프치노와 컵형태의 RTD OEM을 맡기면서 본격적으로 시장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현재 편의점에 들어가면 콩카페와 같은 베트남 연유 커피부터 보헤미안 로스터스의 '강릉커피'까지, 정말 다양한 RTD들을 만날 수 있다.
다시 카페 시장으로 돌아가서 짚어보자.
우리나라 카페 시장은 어떻게 이렇게 유독 성장해갈 수 있었을까?
<한국 카페 시장 성장의 요인 - ‘공간'에 대한 수요와 프랜차이즈들의 공급>
카페 시장 성장의 자연스러운 요인은 당연히 ‘한국인들이 커피를 더 마시게 되었다'라는 간단한 전제일 것이다. ‘커피'라는 중독적인 음료가 소개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접하게 되고, 하루에 한 잔 마시던걸 두 잔 마시게 되는 것- 즉 소비인구가 늘어나고 인당 소비량이 늘어나는 것 -이 자연스러운 성장의 요인일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카페 시장의 YOY 두자릿수 성장률은 이러한 자연발생적인 ‘커피 소비량'의 성장에만 원인을 찾기에는 어려운데, 카페라는 공간이 ‘커피를 마시는 공간' 이외에도 다양한 상황에서 소비되는 공간으로 성장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페의 성장은 단순히 ‘식품 카테고리 사업의 성장'으로만 규정짓기는 어렵다. ‘공간 산업의 성장'과도 맞물려있는데, 이는 사회적인 요인인 한국 주거 환경에서 기인한다. 집에서 주로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미국과 달리, 획일화된 좁은 도시형 아파트 혹은 원룸/투룸에 사는 한국의 젊은 층들은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서울에서 집을 구매하는 비용이 계속 늘어나면서 혼인율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1인 가구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데, 이 1인 가구들은 대부분 3평~10평 이내의 좁고 층고가 낮은 공간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결혼을 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부부들의 경우에도 사정이 더 낫겠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우리나라의 주거 구조는 대부분 표준화된 구조를 지닌 아파트 위주로 형성되어있고, 전세라는 특이한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집 내부에서 개인의 개성을 발현시키기 쉽지 않다. 이러한 주거환경에서는 누구라도 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더 개방감이 좋고, 볕도 잘 들고, 층고도 높은 카페 공간에서 지내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고객 보다는 ‘카페 공간을 즐기는 고객'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카페에 와서 커피가 아닌 쥬스나 차를 마시더라도, 집에서보다 더 쾌적하게 노트북으로 일을 할 수도 있고 책도 더 잘 읽을 수 있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 보다 훨씬 덜 수고롭게, 집보다 더 좋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내 방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예쁜 감성 사진도 남길 수 있다. 한국에서 카페는 ‘내가 머무는 동안 최고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성비를 지닌 공간'이다. 우리나라의 ‘카페'는 커피를 마시러 가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책을 보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가족들끼리 외식을 한 뒤 들러 시간을 습관적으로 보내는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카페들의 영업시간은 ‘커피'를 마시는 시간대에 제한되어있지 않다. 대부분의 큰 매장들은 밤 10시 혹은 11시 정도까지 영업을 하는데, 이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으로 카페를 인식하는 외국인들에게는 몹시 놀라운 사실이다.
카페 공간에 대한 수요를 꾸준히 키워온 카페 공급자들은 초기에는 주로 프랜차이즈 사업자들이다. 1999년 스타벅스 한국 진출 직전에 생긴 할리스를 필두로하여, 2000년대에는 이디야, 카페베네, 투썸플레이스와 같은 한국형 프랜차이즈들이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영업을 시작하였다. 이 때 카페는 치킨집, 편의점과 함께 막 은퇴하기 시작한 베이비부머들(1950년대~1960년대생)들의 큰 창업 아이템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카페 프랜차이즈들은 뛰어나고 세밀한 메뉴얼로 커피업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사람에게도 손쉽게 카페를 오픈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그들의 시장 진입장벽을 한없이 낮춰주었다.
프랜차이즈는 수익 구조는 ‘새로운 매장이 오픈할 때 발생하는 수익(주로 인테리어 수익)'과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Recurring revenue(핵심 제품, 부재료 등을 유통하면서 생기는 수익 및 브랜드 로열티)’로 구분될 수 있는데, 한국의 많은 카페 프랜차이즈들은 전자의 매출과 이익율이 더욱 높게 설정해놓았다. 그래서 ‘더 많은 수의 카페 오픈’이 단기적인 목표가 되곤 한다. 직영으로만 출점을 하는 스타벅스는 2000년 한국 진출 이후 10년동안 327개 정도의 매장을 출점했던 반면, 2008년 더욱 다양한 디저트(와플, 젤라또) 메뉴를 강점으로 오한 카페 베네는 약 3년만에 프랜차이즈 매장을 500여개 출점하였고, 5년이 된 2013년 시점에는 오픈한 매장 점포 수가 1,000여개에 달하게 되었다. 이런 단기간의 외형적 성장의 부작용은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2011년 경 부터 점주들이 ‘급매물'로 매장을 내놓는 움직임이 보였었고, 매장 수의 성장을 뒷받침하지 못해 계속 낮아진 매장 운영 퀄리티와 해외로의 무리한 확장으로 2018년 카페베네를 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카페베네처럼 드라마틱하게 흥망성쇠를 겪은 사례는 아니더라도, 카페 파스쿠치나 엔젤인어스 등 대기업이 주도해온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매장 수 성장에 비례하는 매출액 성장을 도모하지 못한채 ‘매장 수’ 중심의 성장을 해왔다. (이는 출점할 때 마다 매장 당 평균 매출이 하락함을 의미힌다.) 출점하는 매장마다 안정적으로 성장해온 브랜드로는 2800여개에 이르는 이디야나 투썸플레이스, 할리스 정도가 있다.
2000년대부터 2014년경까지 한국 카페 시장은 프랜차이즈 사업자들이 많은 부분 견인해왔다고 볼 수 있다. 2010년 중반부터는 소비자들의 ‘프랜차이즈 카페'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줄어들게 되는데, 이는 소비의 주역으로 성장한 밀레니얼들이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경험'보다는 ‘개인화된, 나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을 소비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점과 인스타그램의 등장과 연관성이 있다. 2015년 이후 소비자들은 점점 희소가치가 있는 작은 커피 브랜드들을 찾기 시작하였고, 그 곳에서의 특별한 공간, 커피, 베이커리 경험을 SNS에 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2015년 경 전체 카페 시장의 20% 수준을 차지하던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2018년 기준으로 15% 수준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매장 수 기준, 출처: 소상공인 진흥원 / 공정거래위원회
<현재 한국의 카페 시장 - 공간 경쟁의 고도화>
2010년 중반부터 더 ‘특별한 공간을 지닌 카페'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카페 공간들도 점점 진화하기 시작하였다. 해외 커피인들은 한국의 카페를 보면서 크게 두가지 점에서 무척 놀라는데, 바로 어마어마한 대형 공간의 카페가 이익을 내면서 유지될 수 있다는 점 (=그만큼 수요가 뒷받침된다는 점)과 카페 공간들의 인테리어들이 전세계 카페들을 압도하는 수준으로 고도화/선진화되어있다는 점이다.
물론 해외에서도 큰 규모의 카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처럼 500평 이상의 대형 카페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 국가는 드물다. 미국이나 유럽, 호주와 같은 커피가 일찍이 발달한 나라들은 대부분 커피를 짧은 시간 내에 소비하거나 테이크아웃 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카페가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더 개방감이 좋고, 더 트렌디하고, 더 웅장한 카페들이 계속해서 발달해왔다. 2016년 경 대림창고를 시작으로 대형 매장들이 서울 시내와 서울 인근의 김포, 파주, 양평 그리고 나아가 부산, 대구, 창원 등의 지방에도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또한 최근 오픈한 카페들은 굉장히 고도화된 인테리어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리테일 공간 인테리어 트렌드는 카페들이 이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카페들의 공간 구현 능력은 전 산업을 통틀어 가장 상위 수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몇몇 커피 브랜드들의 주도하에 오래된 건물들의 색깔을 살리면서 다시 리뉴얼하는 재생 건축으로 이루어진 케이스들도 많다. (예: 카페 어니언) 최근 한국에 진출하기 시작한 고가의 유럽 가구 브랜드들을 가장 대중적으로 먼저 만날 수 있었던 공간들은 백화점이 아니라 서촌 Mk2와 같은 카페들이었다. 내부에 식물을 많이 활용한 플랜테리어도 3-4년 전부터 카페들이 먼저 선보여왔다. 최근 공간들 뿐만 아니라 각종 제품에도 녹여지고 있는 레트로 트렌드는 5-6년 전 커피 한약방이 감도 높게 선보였었다. 최근 가장 감각적인 공간을 보여주는 카페들은 이제 현대미술의 경계에 있는 공간 구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카페들이 공간을 더욱 매력적인 색깔로 만들어가갈 수록, 또 그를 소비하는 고객들이 적극적으로 공간을 포스팅할 수록 - 카페의 전통적인 성공의 지표였던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의 출점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어졌다. 서울 내에서도 역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 유동이 별로 없는 외진 지역에서도 공간과 컨셉을 매력적으로 만들면 고객들은 인스타 후기를 보고 몰려가기 시작했다. 2010년대 초, 트래픽이 거의 없는 합정동의 안쪽 골목에 위치한 앤트러사이트나 빈브라더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수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었다. 서울 외곽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만날 수 있는데, 용인 논밭의 한가운데에 글래스하우스(유리온실) 컨셉을 한 알렉스더 커피도 Out of nowhere인 위치에서 크게 선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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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로 커피 유튜브, 안스타의 월요일 커피 라이브에 출연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21년도 8월)
*바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yKjbT38lipc&t=874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