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영 Jan 01. 2022

판교 사람과 낙원동 사람

2021년 돌이켜보기

작년 나를 돌이켜보았을 때 지배적인 감정은 조급함이었다.

조급함은 나이듦과도 연관이 있기도 하고, 모두에게 적용되었던 매크로인 코로나나 부동산의 변동성과도 관계가 있었고,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성장 속도와도 연관이 있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내가 함께 졸업한, 대학교의 피어(Peer)들의 현재 지위와도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조금씩 층층이 쌓여왔던 그 조급함이 올해에는 외부로 더욱 많이 분출되었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시간들도 많았다. 그 조급함에서 비롯한 화를 표현하고, 또다시 금방 상대가 질리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연초로 돌아가서, 아니면 순간순간으로 돌아가서 무엇을 어떻게 달리했을까를 떠올려보면 딱 뾰족한 수가 그려지진 않는다. 그저 오히려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면 좋았을까, 아니면 이렇게 드문 드문 일어나는 게 좋았을까에 대한 생각 정도.


그러던 여름날, 매일 아침 새롭게 태어나서 그날 하루만 최고로 만족스럽게 살아내는 것 같은 D를 낙원동 근처의 툇마루 집 된장예술에서 만났다. 그날 유독 머리가 짧은 동자승처럼 보였던 D에게, 나는 툇마루 집의 숭늉이 담긴 얇은 양은 주전자가 잘 어울린다고 농을 던졌다.



"은근히 사람들은 자기가 소유한 사물이랑 닮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제 지인들은 제 차(폴로)랑 저랑 너무 닮았데요."


"오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차가 어울려요?"


"서영님은.. 테슬라가 어울려요."

테슬라?
제네시스나 레이보다는 기분이 좋은 대답. 하지만 왜?

"머랄까.. 판교 사람 같다고나 할까. 미래지향적이에요."



판교 사람이라니! 나는 판교와 정말 먼 합정에 살고 있었는데.. 판교의 도시계획도 안 좋아하고 판교의 건물들도 안 좋아하고 판교의 카페들도 안 좋아하고 판교에서 살거나 일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합정 힙스터처럼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판교까지 갈 줄이야..


이 판교 사람 비유는 그 뒤로도 종종 대화의 토막으로 꺼내어 내가 왜 판교 사람으로 보였을까, 혹은 근본적으로는 왜 미래지향적으로 보였을까에 대한 대화로 이어져갔다. 주로 내가 쓰는 글에서 느껴졌다고 하는데, 나는 내가 주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무언가 자기 계발적인 언어를 써야 할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다고 변명을 하곤 했다. 브런치 미안해

하지만 D보다 훨씬 더 미래지향적인 것은 자명했다. D의 하루는 더 좋은 음을 내기 위해 악기와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날들로 채워져 있었다. 작업실의 볕이 잘 드는 시간이 계절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 몸으로 느끼며 연습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즉흥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보냈다. 레슨이 취소되는 날에는 좋아하기도 했고, 달달한 것들을 즐기며 계속 음악을 연주했다.

처음에는 D가 워낙 현재형의 사람이어서 내가 상대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라고 위안을 했다. 하지만 내가 어느 정도로 현재형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은 계속 맴돌았다. 그 질문은 계속 나를 괴롭혀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본인은 얼마만큼 현재형인지, 또 나는 얼마만큼 그렇게 느껴지는지 질문하곤 했다.

그 질문을 타인과 스스로에게 할수록 답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더 나은 미래나 성장을 위해서 오늘을 쏟는 비율이라고 한다면, D의 매일매일의 연습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목표나 결괏값이 분명한 것들에만 시간이나 에너지를 쓰려는 습관, 태도일까? 아니면 많은 하루의 의사결정을 그다음 날이나 그다음의 일주일, 또 그 미래들이 모여서 만들 더 먼 미래를 기반해서 내리는 시야일까? 오늘 쓰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을 꾹꾹 누르고 엉덩이 붙이고 자리에 앉는 모범생병이 미래지향적인 것일까? 아니면 명예욕으로 세상에 무언가 족적을 남기고 싶은 근본적인 욕망에서 기인하는 어쩔 수 없는 행동들의 일관성인 것일까?


2022년에는 미래에 대한 조급함을 덜어내고 하루하루에 보다 집중하고 몰입하고 싶다.  하루들을 온전하게 집중할  있는 에너지를 항상  유지하고 싶다. 무용한 것들을 보다 많이 만들어내고 싶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의 37살을 나중에  자세히 들여다볼  있게 영상이든 글이든 많은 것들을 남기고 싶다. 무언가를 기획할   끝을 시뮬레이션해보거나 효용이나 목적을 생각하는  조금은 덜어내고 싶다. 테니스를  자주 치고 싶고, 술은  즐겁게 마시고 싶고,  좋은 대화들이 많이 오갔으면 좋겠다.

판교에서 낙원동으로  발짝 가는 2022년이   있길.



작가의 이전글 농구가 나에게 알려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