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영 Jun 04. 2023

작꿀이를 기다리며

긴 임신 기간 1/3 지점의 생각들  

4주차 때 썼던 글을, 14주차를 맞이하는 지금 퍼블리시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이여서 서랍속에만 모셔두었다가 이제 올린 글. 이제 곧 14주차가 되겠지만, 아직도 24-5주 정도 남았다는 사실... 인간의 임신 기간이 이렇게 길다니... 


12주차까지는 입덧이 어느정도 있어서 하루 하루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게 좀 더 임신의 메인 일과처럼 느껴졌다. 12주가 되니까 마법처럼 입덧이 조금 더 줄어들었고, 지금은 물 많이 마실 때 울렁거리는 것 빼고는 괜찮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임신을 하게 되면서 겪게 된 신체적인 변화도 크지만, 가장 변하게 된 것은 나의 사고방식이다. 임신을 했던, 출산을 한 혹은 임신을 앞두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과 응원, 그리고 공감의 마음이 형성되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더 관대한 마음이 생긴다. 예전에는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의 떼씀도 이제는 어떤 행동인지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흡엽인들에게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내 작은 행동들이 작꿀이(태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되돌아보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작꿀이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커나갔을 때, 이러한 모습일 때 어떻게 하지?의 상상들을 계속해나가게 된다. 7주차 쯤에 태아보험을 들때, 12주차에 첫 기형아 검사를 했을 때, 아이의 자폐를 고백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각 순간마다 나를 대입해서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아이가 지나치게 폭력적인 경우 (케빈에 대하여 영화 리뷰가 큰몫...), 동성을 사랑할 경우, 왕따나 학폭을 당하는 경우 등등. 이러한 나의 몽상들이 단순한 걱정보다는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마음의 근육들을 키워주는 역할이 되었으면 한다. 

30대 후반에 되도록,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라고 줄창 외치며 달려온 것 같은데 삶의 시소에서 반대편 축이 무겁게 떨어지며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그 변화 자체가 그런데 예상보다 기분 나쁘지도, 불안하지도 않고 받아들이기 어렵지도 않다. 나 자체가 목표이지 않은 삶도 충만할 수 있는 것 같다. 


작꿀 12th week


작가의 이전글 엄청난 확률의 아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