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다는 것은 어쩌면 끊임없이 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없기에 내가 속한 조직은 물론 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도 소통해야 합니다. 혼자 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해가 갈수록 더 느낍니다.
그때 특히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리더, 그리고 리더십입니다. 하지만 사회적경제조직에서의 리더십은 전통적인, 일반적인 조직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란 기대가 있어요. 물론 요즘에야 어느 조직이고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요. 그럼에도 일반기업이 위계적인 구조 속에서 하향식으로 의사결정을 주로 한다면, 사회적경제조직은 상향식 의사결정이 중심인 구조 속에서 리더가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으로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보일 것을 기대합니다.
어딘가 달라야 하는 리더십. 그래서인지 사회적경제 영역에선 리더의 역할과 덕목 등 리더를 둘러싼 이야기가 많아요. 조직이 세운 목표나 의무를 달성하기 위해 리더의 역할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회적경제조직이 일반기업과 구조적으로 다른 지점은 구성원의 역할에 대한 강조라고 생각합니다. 구성원들 각자의 민주주의적 사고방식과 태도, 공동체로서 갖는 책임의식 등이 일터 안에서 작동하기를 기대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민주적 원리로 운영되는 조직에서의 경험이 많지 않아요. 책임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어떻게 작동되고 관리되는지에 대한 경험 말이죠. 그렇게 ‘다름’에 대한 학습이 많지 않다 보니 막상 민주적 운영에 기반한 조직에서 일한다고 해도 적응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습니다. 머릿속으로 그리는 민주적 원리에 바탕해 움직이는 조직과 내가 겪는 조직 운영 논리 사이에서의 갈등, 혹은 나의 가치관과 내가 속한 조직의 가치관 사이의 격차,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상황 등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죠. 리더뿐만 아니라 구성원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실무자의 이야기, 중간 관리자의 이야기, 초기 입사자의 이야기 등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나와야 하고 논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개념이 ‘팔로워십(followership)’과 ‘팀프러너십(Teampreneur)’입니다. 팔로워십은 단순히 리더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목표를 위해 주도적으로 행동하고 책임을 지는 태도를 말합니다. 팀프러너십은 여기서 더 나아가 팀 구성원 모두가 기업가적 마인드를 가지고 조직의 혁신과 발전을 도모합니다.
일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긴 쉽지 않겠죠. 그래도 일한다는 것이 그 외의 욕구(여행, 쇼핑, 휴가 등)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만 작동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 내린 지시에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 내가 이 조직의 주인이란 생각을 하면서 책임감 있게 일하는 것, 수평적 조직문화 안에서 팀워크와 사회적 가치 창출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문화와 제도에 익숙해지기까지 개인의 노력은 물론 조직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겠죠. 그렇게 밀당하듯 조직의 문화와 나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좀 더 우리 조직문화에 적합한 사람을 선발하는 것도 필요할 테고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사회적경제조직에서의 채용은 일반기업과는 어딘가 달라야 할 것 같은데요. 채용공고에서부터 말이죠. 한 사람이 선발되어 우리 조직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그 과정을 체계화한 좋은 사례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살펴보고 싶습니다!
토스 채용 페이지가 정답은 아니겠지만, 사회적경제 조직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찾을 때도 어떤 사람을 찾는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등을 충분히 설명하는 작업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규모가 어떠한지, 또 어떤 산업군에 속해 있는지 등 조직 운영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인은 여럿일 겁니다. 일반기업의 사례들은 참고할 것이 많은데 사회적경제 조직에선 상대적으로 참고 사례가 많지 않아요. 물론 조직마다 상황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니 정답은 없지만, 다양한 사례들 속에서 힌트를 얻어 나의 문제, 혹은 내가 속한 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을 텐데요.
그래서 조직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논문을 찾아보려 했는데 말이죠. 제가 키워드를 잘 넣지 못한 것인지 맘에 드는, 적절한 논문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흑흑. 직원들의 업무 성과 향상이나 조직 충성도 등의 관점이 아니라 민주적 원리로 작동하는 조직에서의 직원의 경험과 역할, 관계의 조율 같은 것들을 다룬 논문을 찾고 싶었거든요.
대신 우리나라 대표적인 마을기업 사례로 꼽히는 제주 무릉외갓집에 관한 논문인 <무릉도원올레권역 마을만들기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를 살펴봤습니다. 15년째 이어오고 있는 무릉외갓집의 성공 뒤에는 리더와 구성원들의 균형 잡힌 협력이 있었기 때문일 텐데요. 무릉외갓집을 만들 무렵,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마을 공동사업을 고민했던 초기 이장님의 서번트 리더십과 이후 무릉외갓집이란 브랜드의 가치와 소비자 신뢰를 유지해 온 다음 이장님의 리더십,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마을주민들의 팔로워십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더십의 변화 속에서도 어떻게 구성원들과 함께 탄탄히 사업의 기반을 다져올 수 있었을까요?
무릉외갓집은 2009년 ㈔제주올레의 지역사회공헌사업인 ‘1사(社)1올레’를 통해 공기청정기 전문기업인 ㈜벤타코리아와 무릉2리가 자매결연을 맺고, 벤타코리아의 제안으로 2009년 12월부터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철 농산물 정기배송 서비스 사업을 진행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2011년 주민들이 출자해 마을기업을 설립했고, 2013년 마을기업으로 지정됐죠(참고로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 2리는 제주올레 11코스의 종점이자 12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합니다).
논문의 목적은 무릉도원올레권역의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문제점을 분석하고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는 것에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해당 지역은 풍부한 자연 및 문화자원(곶자왈, 해안 등 자연자원과 도요지, 하멜 표류 관련 문화자원 보유 등)이 있지만, 생활권이 분리되어 있고 마을 간 연계가 부족하고, 그동안 기후를 고려하지 않고 사업이 추진됐으며 관광객 체류 프로그램이 부족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고 서술합니다. 그리고 활성화 방안 12가지를 제시합니다. 그중 하나가 무릉외갓집 홍보강화입니다.
무릉외갓집의 초창기 브랜드 기획부터 상품구성, 온라인쇼핑몰 구축, 회원모집 등에 자매결연을 맺은 벤타코리아의 지원이 컸다고 해요. 꾸러미 사업을 진행하는 초기 단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물론 회원 확보일 텐데요. 이때 1사1촌을 비롯해 자매기업, 친구기업을 통한 기업회원 가입을 먼저 추진하고, 마을주민, 조합원 지인을 통한 회원 가입 홍보와 기존 회원을 통한 신규회원 가입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초기 회원들은 가입할 때 연회비 43만8천원을 일시불로 납부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1년 뒤 재가입율 70% 육박했다고 하니 만족도가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 있죠(현재는 월간 비용 납부).
월꾸러미 사업만 진행했던 무릉외갓집은 회원들의 다양한 요구와 마을기업의 안정적 운영 등을 위해 점차 사업 다양화를 시도합니다. 서울 등 육지로 배송되는 월간 꾸러미, 영어 교육도시의 외국인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주간 꾸러미, 감귤 단품 꾸러미 등을 세분화하기 시작한 거죠. 특히 제주 내부에서 이뤄진 주간 꾸러미 사업은 마을주민이 직접 배송해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피드백을 가지며 공감대를 높일 수 있었다고요.
꾸러미 사업은 안정적인 농산물 수매가 중요한데요, 수매에 앞서 작년 대비 원가 분석, 시장 조사를 통해 생산자들에게 먼저 가격을 제시한다고 해요. 카톡이나 문자, SNS를 통해 규격 등을 제시하고 원하는 농가가 신청하는데 이때 무릉외갓집이 일일이 농가를 방문해 당도 측정, 신선도, 산미도 등을 평가해 수매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렇게 퀄리티 관리가 되었기에 고객 유지가 가능하겠죠.
무릉외갓집은 마을주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마을기업입니다. 그래서 마을과 마을이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설립 초기부터 출자금 배당금의 50%를 마을에 환원하는 등 상생 경영을 펼치면서 주민들의 신뢰를 얻고 있죠. 무릉2리 주민들은 마을기업을 통한 농산물 직거래 외에도 지역에 있는 폐교를 활용한 농촌생태문화체험, 누룩만들기, 된장만들기, 감귤수확 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전체 매출의 90%가 마을주민들과 농부들에게 생산과 인건비로 지급되고 있고요. 수익 대부분이 마을에 환원된다는 것은 그들의 지속가능성에 믿음을 줍니다. “수익을 많이 내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농부들의 농산물을 매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무릉외갓집의 철학이니 그 철학을 지켜가는 과정이겠지요.
지난 2022년, 무릉외갓집은 폐교가 된 마을 분교로 자리를 옮기고 복합문화농장으로 변신했습니다. 농산물 꾸러미 배송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기존 농산물 판매장이 협소해짐에 따라 과거 마을주민들의 배움터였던 무릉동 분교 자리로 사업장을 확장·이전했다고요. 무릉외갓집에 참여하고 계신 마을주민들의 이야기를 좀 더 살펴보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관련 정보가 많지는 않더라고요. 참여하는 분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직 구성에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해를 거듭할수록 그 끈끈한 관계를 어떻게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 구성원들의 참여는 어떤 식으로 독려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관련 자료가 어디 있는지 아시는 분이 계신다면 알려주세요!
요즘 사회적경제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어요. 직접 다녀올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죠. 그래서 행사들을 아카이빙하는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순전히 제 욕심 채우기(...) 용도로 만들었는데요, 사회적경제 행사 중 자료집 다운로드가 가능한 포럼, 세미나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현장에서의 열기를 느끼긴 어렵겠지만, 텍스트만으로라도 에너지를 얻고 싶은 맘입니다.
연말에 가까워질수록 어떤 결과를 냈는지 묻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맺는 관계나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란 존재를 전부 설명해주진 못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원하든 나는 나 자신일 뿐이니까요. 나로 존재해야 하기 위해선 나는 어떤 사람이 되려 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일하는 나에서 한 걸음 떨어져 고유한 존재로서의 나를 찾는 11월의 첫 주 되시면 좋겠습니다. 곧 뵙겠습니다!
뉴스레터 오늘의 논문에 실린 글을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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