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듯 50대가 되었다. 지나간 시간만큼이나 수많은 일들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꼬맹이였던 두 아이들이 이제는 스무 살이 넘는 숙녀들이 되었고 아내도 나도 자연스럽게 흰머리가 많아졌다. 내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나의 부모님들도 가만히 머물러 계시지는 않으셨다. 더 많이 늙고 두 분의 이마에 생긴 주름들이 그 긴 세월을 다 얘기해 주고 있다. 나 혼자만 보며 살다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서 가장이고 부모라는 타이틀이 더 붙어졌다. 내 인생은 더 이상 혼자 만의 인생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책임져야 했고 걱정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헤쳐 나갔어야 했다. 숙명이었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지난 25년 넘는 시간 동안 내 삶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0년을 살아온 지난 내 인생의 절반이었던 셈이다.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의미라고 믿고 살아왔다. 그것이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엄청난 성공도 아니고 남들도 다 하는 그저 중간정도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남들도 하는 것이었고 나만 특별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지난 25년간 가족만을 위해 산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고 그리고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가끔씩은 즐기면서 살아온 것 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갈수록 “나”라는 존재보다 아이들, 아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 위주의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그래도 불평이나 불만이 있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나를 위한 인생을 사는 즉 나에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가 오면 지금보다는 더 나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그래서 좀 더 여유 있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그런 부푼 꿈을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마치 고등학교 때 3년만 참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에 들어가면 더 나은 삶이 올 것이라고 했던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말처럼 나는 나 스스로에게 그런 식으로 당근을 주고 내 마음을 달래 주곤 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를 돌아봤을 때 나는 여전히 똑같은 삶을 살고 있었고 오히려 더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나를 보면서 우울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둘째 녀석이 대학에 합격하던 해에 나는 기분이 최고조였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손을 타지 않아도 살아갈 성인이 되었다는 해방감과 길고 길었던 사춘기 방황의 시간들이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어깨춤이 절로 나오던 적이 있었다. 허무하게도 그런 나의 기대와 희망은 담배 연기처럼 금방 사라졌고 성인이 된 두 아이들은 매일 또 다른 숙제를 나에게 던져주었다. 물론 더 이상 아이들을 픽업을 하거나 차로 데려다주거나 손잡고 같이 놀아 줄 필요는 없지만 이제 그들은 또 다른 고민을 내게 던졌다. 그것들은 늘 불안한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것들이었고 그런 것들은 단순히 나의 몸과 마음을 주는 것으로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또 그런 고민들을 무시하거나 지나칠 수는 없었고 같이 부딪치면서 헤쳐 나가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줘야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내내 그리고 내가 호주라는 낯선 나라에 와서 자리 잡는 동안 내내 아내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였다. 아이들이 독립적인 성인이 되고 나도 회사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아내는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심 이제는 싱글 인컴에 의존하는 경제적인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좋았지만 아내의 빈자리는 오롯이 나의 몫이 되어버려다. 결국은 그 자리를 채워야만 하는 의무감이 새로운 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외로움은 덤이었다.
그쯤에서 나는 생각이 많아졌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그 모든 질문들이 나 자신을 찾고 싶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요즘에는 백세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이제 딱 인생의 반을 살아온 것이나 같다. 마라톤으로 치면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아가는 시점이고 축구로 치면 전반전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는 딱 그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이제 후반전도 전반전처럼 살아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할지 결정해야 할 때라고 본다. 만약 후반전도 전반전처럼 산다고 하면 그 결과는 뻔해 보였다. 행복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후회만 남는 삶만 살다가 게임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때가 나를 다시 찾아서 나를 돌보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늦었다고 생각될 수 도 있다. 그렇지만 괜찮다. 아직 후반전이 통째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다. 지금 와서 나를 찾아 내 삶을 살겠다고 아이들에게 아내에게 말하면 어떤 반응들이 나올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싫었다. 여전히 나는 아이들과 아내의 감정과 반응에 휘둘리고 그들의 감정을 걱정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어서다. 내가 지금 나를 찾고자 함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싶어서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말이다. 그래야만 내가 더욱 아이들에게 든든한 백이 될 수 있고 아내를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이가 50대쯤 된 남자들은 나처럼 자식들을 이제 막 다 키웠고 은퇴라는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예상해 본다. 대부분은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을 것이 분명하고 자기 자신을 오롯이 돌보거나 그러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막상 그 긴 시간들이 지나고 나서도 여전히 희망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연재될 글들은 나와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50대 아빠들이 더 이상 좋은 아빠 그리고 자상한 남편으로만이 아닌 자기 자신을 찾아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를 응원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내가 최근에 자아를 찾기 위해 생각하고 시도하고 경험한 것들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의 말를 해 주고 싶었다 - 늦었지만 괜찮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