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나를 찾자

누구도 나를 찾아 주지는 않아. 결국엔 내가 해야 하는 것

by BM

나를 찾기로 맘먹고 제일 먼저 생각난 질문이 "어떻게 나를 찾지?"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보편적인 생각으로 치자면 뭔가를 찾는다는 것은 그전에 그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이벤트가 있었어야 하고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인지했다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껏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잊어버렸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나서는 그냥 나는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그것이 나의 아이덴티티였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남편으로서 아내를 위하고 가정 경제에 보탬을 주고 우리 가족에게 뭔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그것들을 해결하는 나. 그것이 바로 나였다. 별 불만이 없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나도 친구나 지인들과의 사회생활을 하곤 했었지만 그것들은 늘 우선순위가 아주 낮고 어느 순간부터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둘째 아이 녀석의 계속되는 방황의 시간들을 옆에서 보고 그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같이 보내면서 처음으로 내가 지쳐간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온 가족이 둘째를 위해 애를 써다가 어느 순간 이러다가 우리 가족 모두가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내가 더 많이 신경 쓰기로 하면서 매일매일 나의 하루가 둘째 아이와 같은 리듬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모라는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이런 것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무엇이든 받아주고 이해해 주고 사랑으로 그 모든 것들을 보듬어 주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것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뭔가가 계속 쌓여만 갔었고 그걸 난 나중에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도 아이만큼 고통을 받고 신음하고 있었던 것이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시간이 모든 것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고 지냈던 것 같다.


그렇게 쌓였던 나의 상처들이 터지면서 나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고 때로는 무섭기도 했다. 이것이 사실은 내가 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때 당시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고 살았구나 아니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왔구나라고 말이다.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더 이상 아이에게 도움이 못되고 나 스스로 무너질 수 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를 찾기로 했다. 나도 내 인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결심은 우선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나의 가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내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첫째 아이와 아내가 있었고 둘째는 두말할 것도 없이 나를 필요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다시 일어서야만 했고 무엇보다도 먼저 나의 삶이 일어서서 나의 일상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것이 나를 찾기로 한 이유였다.


막상 나를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그럼 뭘 해야 하지?" "어떻게 나를 찾아야 하지?" 등등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제일 쉬운 것이 인터넷을 뒤져서 남들은 어떻게 했나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책들에서 뭔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필요한 책들을 검색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내가 멍청한 짓을 하고 있었다고. 나를 찾는 일을 왜 남에게 물어봐야 되고 남을 통해서 알아야 하지? 나를 제일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결국은 나잖아. 아주 쉽고도 결정적인 사실을 무시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당장 인터넷 검색과 책검색을 멈추고 하얀 A4 용지 한 장과 펜을 꺼내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한 것이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 싫어했던 것들 힘들어했던 경험들 무엇보다도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것들을 나열해 보는 것이었다. 나를 온전히 뒤돌아 보았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자아 찾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부터 지금 오늘 당장 나를 알고 나를 찾아야지 하는 생각을 버렸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거의 5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들을 어떻게 오늘내일 일주일 또는 한 달 만에 다 끝낼 수 있나. 그래서 처음에는 시간 날 때마다 A4 종이에 생각나는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나의 여정은 나의 기억이 아직도 살아 있는 유년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냥 내가 어릴 적에 어떤 것들 좋아했고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싫어했으며 특히 어떤 것들을 할 때 "재미"를 느꼈는지를 집중적으로 끄집어 내보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등등 그 시간들의 타임 트랙을 따라서 여정을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노트를 사서 출근할 때, 점심시간, 커피 브레이크 시간, 퇴근 안 기차 안에서 계속 써내려 갔다. 한 줄도 두줄도 그냥 정리되지 않은 문장들을 줄줄 적기만 했다. 심지어는 주말에 혼자 카페를 가거나 도서관을 가면 늘 노트를 들고 가곤 했다. 약 3개월 정도의 시간이 딱 걸렸다.


그렇게 적은 것들을 나 혼자 도서관에 앉아서 읽어 보았다. 제일 먼저 떠올렸던 생각이 '아.... 나는 역시 문과체질이구나'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IT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조금은 웃음이 나왔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연재를 통해서 다시 하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정리된 노트를 읽고 났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과 마음은 체한 듯이 막혀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도 최소한 두 가지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내가 가장 많이 쓴 단어를 찾았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위로'라는 단어였다. 그동안 나는 위로를 갈망했던 것 같다. 살면서 아이들을 위로해 주고 아내를 위로해 주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주면서 진작 나 자신을 위로해 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쌓아 두기만 했던 것이었다. 두 번째로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알게 되었다.


노트를 덥고 생각을 해 봤다. 어떻게 하면 내가 위로받을 수 있을까?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나? 긴 생각과 고민의 끝에 나의 결론은 결국은 내가 나를 위로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에게 말을 해야 한다. 누군가에게서 위로를 받으려면 다른 사람에게 우선 말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결론은 '일기'를 쓰기로 했다. 위로받고 싶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지 말고 가슴속에만 묻어두지 말고 글로 쓰자. 이것이 나의 일기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일기는 1년을 넘었다. 물론 매일매일 쓰지는 못한다. 그냥 쓰고 싶을 때 쓴다. 그런데 믿지 못하겠지만 일기를 쓰면서 힐링이 되고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말을 하듯 위로받고 싶은 말들을 일기에 그대로 써내려 갔었다. 글쓰기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두 번째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나만의 책을 쓰고 싶은 것이었다. 오랜 전 희망 사항이었고 글쓰기는 나의 본능을 자극하고 재미라는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한 계기가 된 것이고 이렇게 나는 지금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나 스스로를 찾고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애쓴 보람을 느꼈다.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50년 긴 인생동안 그렇게 진지하게 나의 삶에 대해서 돌아보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앞으로는 실천하는 것만 남았다. 가족들도 찬성했고 응원해 주었다.


여러분들은 나를 찾고 나를 위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이번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 결국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나를 찾고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다 하고는 살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적어도 한 두어 가지는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번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비록 지금 나는 경제적인 이유로 IT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물론 지금 하는 일도 나쁘지는 않다) 이렇게 나를 다시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갈망하는 것과 나의 가족이 아니 나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혹시 살면서 번아웃이 왔다고 느끼거나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인생을 살다 보니 나를 잃어버렸다거나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오시는 분들이 계시면 지금이라도 자신을 우선 찾아보시길 권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처럼 글로 적어보거나 아니면 휴식을 하거나 또 아니면 여행을 떠나거나. 중요한 것은 결국엔 그 누구도 타인이 나 자신을 찾게 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엔 내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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