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할 관계들

영원한 관계는 없다

by BM

2008년 호주로 이민을 오면서 사실상 한국에서의 모든 관계들이 자동으로 정리가 되었다. 당시 연락하고 만나던 초/중/고등학교 친구들, 대학 동기 선후배들, 그리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만들었던 좋은 분들과의 관계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고 갑작스러운 생활환경의 변화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 물론 소수지만 아직도 카톡으로 가끔 연락하거나 한국 방문을 하면 연락해서 소주 한 잔 정도는 할 수 있는 몇몇 지인들 하고는 여전히 그 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호주에 처음 왔을 때 제일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내가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어야 했다 것이었다. 20년 넘게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만들었던 그 많은 관계들을 한 번에 뒤로 하고 건너온 남의 나라에서 나에게는 내 가족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아내도 나와 다를 바 없었다. 한국에서 주기적으로 만나던 가족, 친구들, 지인들 등등 하루아침에 아무도 없는 나라에 왔으니 아내가 얼마나 마음속이 텅 빈 것 같았을까 싶다. 더군다나 아내와 나는 한국에 살 때도 종교가 없었다. 만약 우리가 기독교이든 불교든 뭔가 종교를 믿고 있었다면 아마도 좀 더 빨리 관계 형성을 빨리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리 호주가 가족중심적인 사회라고 하지만 이민 초기에 우리 가족끼리만 서로 쳐다보면서 잘 사는 그런 형태의 삶에 쉽게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전보다 가족과의 많은 시간 특히 퇴근 후의 여유로운 삶에 대해 상당히 만족했지만 그것도 초반에만 그랬다. 점점 살아가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려서 사는 삶도 필요로 했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시드니에서 나처럼 IT분야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들 모임을 찾게 되었고 그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2008년 당시 그 모임은 멤버가 몇 명 안 되는 소소한 모임이었다. 모임의 주제는 대부분이 호주에 와서 어떻게 하면 취업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 공유와 함께 서로를 연결하는 네트워킹이 주를 이루었다. 호주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한국에서 이민 와서 취업을 준비 중이었던 분들도 있었다.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드물었다. 나는 호주 와서 의외로 취업을 빨리 하는 행운이 있었지만 의외로 그 과정 자체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고 나에게는 좀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래서 이 모임을 통해 나의 취업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기로 했다. 동시에 이 모임을 통해 새로운 관계 형성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 후로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분들과 관계를 맺었다.


세상 사는 것은 어디서 살든 사실 다 비슷하다. 호주에서 산다고 해서 뭐 그리 특별한 것은 사실 없다. 그리고 의외로 시드니에서는 한국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미국처럼 이민 사회가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법 된다. 이민은 나무뿌리를 통째로 빼어서 새로운 땅에 심는 것과 같다고 했던 예전 한국 회사의 어느 부장님의 말씀처럼 나는 나의 뿌리를 새로운 땅에 다시 심었고 나에게는 성장하기 위한 새로운 영양분이 필요했었다. 인간의 성장은 여러 가지로 가능하지만 그중에서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들도 많다. 인간은 역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민 와서 처음 몇 년 동안은 주위의 모든 가능한 영양분들을 빨아들였다. 즉,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분들과 허물없이 관계를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것저것 재고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 인연을 맺은 관계들은 그래서 참 다양했다. 우선 앞서 말했던 IT모임에서 만났던 개발자들, 사람 좋은 카페 사장님 (알고 보니 대학교 선배님 어셨다), 청소 회사 사장님, 치과를 운영하는 의사, 아이들 수영 학원 강사, 농구 선생님, 등등 참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나의 가까운 관계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중에 일부는 주기적으로 저녁 식사도 하고 가끔은 소주도 한잔씩 기울일 수 있는 관계도 있었다. 호주 사회는 철저하게 가족 중심의 사회이다 보니 관계 형성과 유지에서도 이것이 꽤나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나와 어느 가족 남편이랑 서로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부인들끼리 사이가 안 좋거나 아이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으면 그 관계가 오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만들어진 나의 관계들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이 성장기에 들어가면서 나와 아내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주위와 신경을 쏟아부었다. 두 아이 모두 성장기에 들어가서 많은 방황을 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고민들을 털어 내면서 내 주위의 그 어떤 것들도 나에게는 아이들보다 우선순위가 될 수가 없었다. 두 아이 모두 중고등학교를 지나면서 꽤나 힘든 과정들을 보냈다. 본인들이 가장 힘들었겠지만 옆에서 보고 있었던 나와 아내도 이민 와서 가장 힘든 시간들이었다. 아이들은 방황을 많이 했고 정체성 혼란과 자아실현에 대한 중압감 등등으로 꽤나 어려운 시기를 보냈고 아빠로서 엄마로서 나와 아내는 아이들에게 집중했어야 됐고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아이들에게 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관계들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반드시 아이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 스스로 예전보다 다른 관계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누구를 밖에서 만나더라도 그들과의 대화에 잘 집중하지 못했고 시간적으로도 짧은 만남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쯤 되면 사실 상대방들도 대충 눈치를 치게 된다. 이쯤 되면 관계가 자연스럽게 소원해지게 돼버린다. 그나마 그래도 나를 평소에도 많이 이해해 주고 그러던 사람들은 늘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으면 나를 기다려주고 연락하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주고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곤 했지만 결국 관계는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에너지를 쏟아붓느냐에 따라 관계의 질이 달라지게 된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참 많은 관계들을 정리했다. 나 스스로 그런 것들을 유지할 만한 체력이 없었다. 정신적인 체력과 육체적인 체력 모두 다.


다시 나를 찾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고민하던 시기에 내 주위를 돌아보니 남아 있는 인간관계가 거의 없었다. 결국엔 2008년 처음 그때로 돌아가게 된 것 같았다. 다시 나와 아내와의 관계만 남았다. 이래서 아내와 잘 지내야 한다고 다들 그러나 보나. 나보다 인생을 좀 더 사셨던 선배들이 아이들 다 키우고 나중에 나이 들면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아내 밖에 없다고 늘 내게 말하곤 했는데 5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에서야 그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무엇일까?


살다 보면 관계를 딱 잘라서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젊은 남녀가 연애를 하다가 서로 헤어지면서 관계를 정리하거나 같이 살던 부부가 이혼을 하면서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그런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간관계라는 것은 그렇게 일부러 억지로 정리되는 경우보다 자연스럽게 왔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관계는 마치 버스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참 많은 버스가 왔다가 간다. 그중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버스가 오면 우리는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둔다. 그러다가 원하는 목적지에 데려다줄 수 있는 버스가 오면 그제야 올라탄다. 원하는 버스를 올라 타고나서도 혹시 뭔가를 두고 내렸거나 아니면 중간에 목적지가 바뀌면 중간에서라도 내려서 그 버스를 그냥 가게 하고 다음 버스를 또 기다린다. 그리고서는 다시 새로운 버스에 올라타게 된다. 이렇듯 긴 세월에 보면 누군가가 계속 나에게로 왔다가 또 사라지거나 또 만나거나 이런 것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늘 생각했다. 그런 관계를 소중히 오래 유지하고 싶으면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관계라는 것은 노력하지 않고 애쓰지 않고 돌보지 않으며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이 신경 쓰고 그것들에 우선 수위를 두고 사는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나는 나의 지인들과 멀어졌다. 그들도 안다. 때로는 기다려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라져 간다. 나는 그저 그동안 타고 왔던 버스에서 내린 것이다. 이제는 다른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제 아이들에게서 한 발짝 물러서서 나의 삶으로 다시 돌아와 나를 위해 살아가보자고 생각한 후로 나의 관계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라진 관계들을 다시 찾아서 회복시켜야 하나 아니면 다시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야 하나. 나의 결론은 후자였다.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의 삶에 대한 태도가 예전하고 달라졌다. 두 가지 방향으로 달라졌다. 첫째는 명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행복한 기운들을 느끼고 싶었다. 둘째는 나를 위로해 줄 수 있고 또는 내가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혹자는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면 내 답은 이거다 - "늦었지만 괜찮아"


예전에 IT 모임의 방장을 하던 지인이 있다. 자주 연락을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서로 공통된 점도 별로 없다. 하지만 늘 만나자고 연락하면 반갑게 흔쾌히 받아준다. 명랑하다. 그때 그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연락을 계속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최근에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참 명랑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런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좀 행복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 친구(나보다 후배다)가 요즘엔 가끔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들은 일을 많이 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정말 힘든 것은 그렇게 일을 많이 하고 나서도 아무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거나 아무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때가 제일 힘들다고 했다.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는 번아웃 증상도 힘든 일의 끝에 위로나 보상이 없어서 그렇다고 어느 작가가 쓴 것을 읽었다. 나는 이런 말에 100% 동의한다. 앞으로의 나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 적어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정말 힘든 일로 인해 무너지고 지칠 때 그 수많은 나의 관계들 중에서 나를 만나서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 그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를 나갔다. 처음에는 아내가 주말마다 일을 나가는 바람에 나 혼자만의 주말 루틴을 만들기 위해서 그랬다. 혼자 덩그러니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거나 그러고 싶지 않고 오히려 일찍 시작하고 싶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울고 싶어서 나온 눈물이 아니라 그저 흘러내리는 눈물이었다. 그 뒤로 교회를 정기적으로 다니게 되었다.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고 나면 속이 다 비어지는 느낌이었다. 일주일 동안 내 안에 쌓인 것들이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어서 좋았다. 최근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내 마음에 계속 액셀을 밟고 다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으니 안 보이는 것 들도 보이고 안 느끼던 감정도 살아났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었다. 나 괜찮아? 나 지금 잘하고 있어? 나 지금 바른 길로 가고 있어? 등등의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그 시간만큼은 그저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내가 나를 스스로 보듬어 주었다. 그래서 교회가 좋았다. 비록 교회는 사람이 아니지만 나의 두 번째 중요한 관계가 되었다. 친구들이나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최선을 다했듯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기로 했다. 내가 찼던 두 번째 관계였다. 이제 나는 주말이면 항상 교회에 나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워도 무조건 안 빠지고 나간다. 나의 유일한 위로의 공간이 돼버렸다.


50대 중반에 이렇게 나의 관계는 정리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수많았던 지난 시절의 인간관계는 다 사라지고 이제는 이 두 관계만을 유지하고 산다. 정리된 관계는 지인뿐만 아니다. 가족 중에서도 공감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더 힘들게만 하기에 정리하였다. 내가 새로 시작하려는 그 두 관계 외에 이제 더 이상의 새로운 관계는 힘들다. 아니 안 하고 싶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힘들게 만드는 그런 관계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그만하고 싶다. 이제는 행복하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또 누군가를 위로해 주고 싶은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당분간은 새로 만든 이 두 관계들을 위해 애써고 나의 에너지를 쏟아붓고 돌볼 계획이다.


혹자는 물어볼 수 있다. 어떻게 인간관계를 그렇게 칼로 무 베듯이 싹둑 단칼에 잘라서 없앨 수 있나요? 물론 그렇게 매정한 삶을 사는 것은 나쁘다. 하지만 50대 중반의 나의 나이쯤 되는 세대에 살고 있는 남자들은 관계 유지를 위해 애쓰기 위해 사용할 에너지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선택적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전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나는 행복한 삶과 위로가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정했고 그래서 그것에 맞춘 것뿐이다.


영원한 관계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새로 시작한 그리고 내가 현재 좋아하는 이 두 관계들과도 언젠가는 다시 멀어질 수 있다. 그들로 인해 또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알지만 이해하지만 그래도 한번 애써고 싶다. 50대 중반에 새로 시작한 관계는 20대 30대에 만든 관계랑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몸소 느끼고 싶다. 어쩌면 앞으로 10년 뒤 내가 60대 중반이 되면 자연스럽게 사라 질 수도 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에 방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결국에 내 곁에 끝까지 있을 관계는 오직 내 아내뿐이라는 것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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