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게 하자

나는 존경받는다. 고로 존재한다.

by BM

철학자 데카르트는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계속적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것으로 믿었고 그것이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말한 것이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굉장히 임팩트가 있는 것이었다.


최근에 주일 예배에서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사랑받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말을 약간 인용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만든 문장인데 이것 또한 참 좋았다 그리고 목사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렇다. 모든 사람들은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느끼는 동안은 세상 사는 것이 신나고 좋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반대로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기분이 다운되고 심하면 우울하기까지 한다.


호주 이민을 고민하던 2007년 말 추운 겨울에 나는 고민이 참 많았다. 변화가 필요했고 그 변화에는 미래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긴 장고를 하고 있었다.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내 가족 전부를 걸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실수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플랜 B, C, D,.... 등 수많은 백업 플랜을 생각하느라 그 겨울의 추위를 잊고 지냈다.


이민이 꼭 정답은 아니었을 수 도 있다. 돌이켜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그쪽으로만 보고 고민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나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사랑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주말에 피곤하다는 핑계로 등등 모든 육아를 아내가 담당하던 때였다. 그러다 보니 아빠의 따뜻한 품과 냄새가 필요한 아이들은 매번 실망하고 울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의 울음은 어른처럼 말로 투정 부릴 수 없는 무엇가였던 것이다. 바로 "나는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기 위한 방법이 곧 나에게는 이민이었다. 삶의 패턴을 바꾸고 싶었다. 당시 한국에서 IT분야에 일하던 나와 나의 모든 친구, 동료, 선배님들은 모이면 늘 불만을 얘기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맨날 야근을 해야 해? 우리는 왜 여유로운 저녁이 없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을 해야 해? 등등.... 따로 안주가 필요 없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했고 아니 우리는 당시 그 근처도 못 갔다. 불행한 현실만 계속 탓했다.


결정을 하고 이민을 왔다. 새로운 환경을 개척하는 일은 물론 힘들었다. 주저리주저리 그런 이민의 역사를 말하기는 싫다. 그 태풍 같은 시간을 잘 보냈고 우리 가족은 잔잔한 파도 위의 배처럼 여유를 찾았다.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아침에 서둘러 허겁지겁 출근도 필요 없게 되었고 저녁 야근과 회식은 남의 나라 일이 돼버렸다. 정시 간에 바로 퇴근하고 저녁 시간을 온전히 가족들과 보내게 되었다. 가끔은 내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방과 후엔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을 픽업하는 것도 편하게 되었다. 주말이면 아이들 스포츠 활동 등등에 다 일일이 빠짐없이 함께 하게 되었다. 아이들도 웃음이 넘치고 나를 참 좋아했다. 그들의 얼굴만 봐도 알았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것처럼.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 아닌가? 맞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준 사랑만큼 아이들도 나를 사랑해 줬다. 나와의 시간들을 좋아했고 어느 순간부터 아내보다 내가 학교에 데려다주거나 행사에 갈 때 더 좋아했다. 나도 느꼈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고로 존재한다" 아빠로서의 존재를 느꼈다. 아이들이 보여준 사랑 듬뿍 때문이었다. 호주 이민을 결정하고 나 스스로 가장 잘했다고 칭찬하고 보람되었던 때였다.


그런데 사랑도 때로는 지친다. 꾸준하기 힘들다. 물론 당연한 거다. 항상 넘치는 사랑이 매일매일 될 수는 없다. 그렇게 된다면 너무 행복해서 죽을지도 모르겠다 (심장이 너무 벌렁벌렁 거려서 하하). 아이들이 성장하고 그들만의 자아를 찾기 위해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아이들과 나의 관계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점점 줄어들었다. 여전히 아이들은 나를 따르고 나를 좋아하지만 이제는 예전과는 좀 다른 사랑으로 변한 지 오래다. 특히 둘째 아이는 지난 몇 년 동안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고 그 과정에서 나와 수많은 충돌을 가졌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면서 사랑은 좀 더 무뎌지고 나도 아이들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으며 나도 그들에게 나의 다른 면을 노출시켰다.


호주는 아이가 18세가 지나면 법적으로 어른으로 부류 하기 시작한다. 부모님들이 보기에는 아직도 어린아이들이라고 보지만 그들은 이제 어른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어른으로서 권리도 많아지지만 그만큼 책임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둘째 녀석이랑 이런 부분에서 참 많이 부딪히고 싸웠다.


시간이 좀 더 흘려 이제 첫째 녀석은 몇 달 후에 대학을 졸업하게 되고 곧 풀타임 일을 구해서 독립하겠다고 한다. 사실 이미 혼자 살고 있기에 물리적으로는 이미 우리에게서 독립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직장까지 구하면 경제적으로도 독립하겠다고 했다. 부모로서 고마운 일이지만 왠지 그 말이 나에게는 좀 서글픈 말로 들렸다. 꼭 그런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말하니 너무 서운했다. 둘째 녀석은 아직도 대학생이다. 졸업을 하려면 아직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여전히 우리와 같은 지붕아래에서 살고 있지만 하숙생 같다.


이제는 "사랑받고 있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이 더 이상 나와 아이들과의 관계를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그들만의 삶을 살고자 한다. 마치 애벌레가 허벌을 벗고 나비가 되기를 원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더 이상 애벌레 이기를 싫어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아버지들이 겪게 되는 비슷한 과정일 뿐일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 본다.


그러면서 생각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랑이라는 단어로 아이들과 얶매지 말자고. 그동안 내가 전적으로 내 의지대로 그들을 사랑하고 일방적으로 그들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서로의 각자의 삶을 인정해 줘야 한다. 둘째 딸이 나에게 했듯이 나도 이제 나의 삶을 살고 그들도 그들의 독립적인 인생으로 시작해야 한다. 축하해 주고 격려해 주어야 하겠지. 그게 맞는 방향인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과 소통하고 싶고 그들의 옆에서 그들이 힘들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되고 싶다. 부모의 의무지만 부모니까 자연스럽게 하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결론은 존경받게 하자.


아이들이 나를 사랑하고 좋아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좋지만 아제는 내가 그들에게서 존경받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래서 그 존경심으로 나와 그들의 관계가 더 단단해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존경받는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것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존경을 받으려면 내가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 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어른이라고 외치는 그들의 말들에 대해 성숙하지 못하다고 무시하는 대신에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결정을 응원해 주면서 그들의 독립적인 삶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동시에 내 삶을 좀 더 진심으로 살기로 했다.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우리는 가끔씩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이라서 너무 쉽게 말하고 쉽게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누가 그랬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하는 것은 사랑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이 가족끼리 존중하고 존경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우리 아이들을 존중해 주고 아이들로부터 존경받게 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다.


늦었지만 괜찮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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