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하루를 더 살아줘
곧 아내의 생일이다.
늘 이맘때가 되면 나 자신이 조금은 초라해진다. 지금껏 그녀의 생일 때 제대로 된 선물을 한 적이 없었다. 평소에 생일 때 갖고 싶다고 하는 것들에 대해 나에게 은근히 힌트를 주곤 하는데 결국엔 그런 것들을 사주지 못했다. 내년에는 꼭 사줘야지 그렇게 다짐을 하고 나서 또 일 년이 지나서 생일이 다가오면 늘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아내를 참 사랑하지 않나 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게다 싶다. 그래도 전혀 오해가 아닐 정도로 나는 그동안 아내의 생일 때마다 그녀를 실망시켰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케이크를 사고 평소보다 좀 더 좋은 와인을 준비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 가끔씩 외식을 하지만 아내는 늘 집밥을 좋아하고 해서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는 좋은 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를 해서 아이들과 같이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이들도 엄마 생일 때면 늘 뭔가를 조그마한 거라도 준비를 한다. 꽃과 정성스럽게 쓴 카드를 늘 준비한다. 그래도 늘 부족하고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녀의 생일 때면 좀 풀이 죽어 있는 편이다. 아내는 그런 나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나는 무슨 기념일 같은 날들이 싫어. 당신은 나 같은 여자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돼."
기죽어 있는 내 모습을 위로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그런 기념일을 싫어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내의 그 말은 미안하지만 전혀 나에게 위로가 안되었다. 그래서 이 맘 때가 되면 늘 통장의 잔고를 보면서 한숨을 자주 쉬곤 한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나는 왜 항상 이렇게 돈이 없을까?"라고 말이다.
20대 후반에 아내를 만나서 아주 짧았지만 연애기간 그리고 결혼 후에도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늘 나의 몫이었다. 나는 그것에 불만이 없었다. 나는 그런 기념일을 기억하고 준비하고 또 같이 즐기는 것을 늘 좋아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 것들이 우리 같은 평범한 가족에게는 큰 행복이라고 늘 생각하곤 했다. 적어도 1년에 우리 가족 4명의 생일쯤은 좀 평소보다 더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유년 시절을 통틀어서 기억해 보면 나의 부모님들은 이런 이벤트를 챙기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분이셨다. 기껏 생일 때면 미역국에 고기 들어간 반찬이 거의 전부였다. 다 같이 외식을 해 본 적도 없다. 케이크를 사고 촛불을 끄는 것도 잘 모르셨던 것 같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그 동네에서 쭉 사셨던 분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 진학을 하면서 나는 홀로 도시로 유학을 갔고 도시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생일에는 으레 생일 케이크를 먹어야 되고 선물도 받는 그런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의 이벤트 챙김의 본능은 아마도 나의 어릴 적 결핍에 대한 나의 반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내는 늘 말로는 항상 나에게 이것저것 갖고 싶은 물건들을 말하지만 내가 막상 그런 것들을 기념일에 맞춰 사려고 하면 못 사게 막 말린다. 그런 것 이제 필요 없다고 그런 과소비하면 안 된다고 등등의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나의 지름신을 물리친다. 결혼해서 아내는 늘 나보다도 더 현실적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결혼 초기 신혼에는 아내도 늘 그런 것들을 많이 즐기고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 혼자 벌어오던 외벌이로서는 아이들 교육비, 때때로 보내줘야 하는 부모님 용돈, 경조사 등등이 현실로 다가왔고 아내는 매달이 보리고개를 넘기듯이 살아왔다. 그래도 내가 기죽을 까봐 한 번도 나에게 자세한 내용을 말하지는 않았다. 고마웠다. 아내는 언제나 내가 먼저였다.
그런데 나는 그 반대로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부터는 늘 아내를 아이들 다음으로 생각하곤 했었다. 특히 호주 이민을 온 후부터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마음 한편에는 늘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있었다. 아내와 나는 어른이었고 우리에게는 이민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라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그저 우리들의 결정에 따라온 것이었다. 그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늘 미안했고 특히나 한국에 살았으면 겪지 않았을 일들이 생기면 두배로 더 속상했었고 그런 일들이 생기지 않기를 늘 기도하고 또 바라고 그랬다. 아내 역시도 이민 초기에 외로움과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상당히 많이 힘들어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늘 아이들이 먼저였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아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이 호주에 있는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둘 다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곧 아이들이 사춘기라고 직감했다. 하지만 별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 그런 시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면 끝날 것이라고 여겼었다.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첫째 딸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고 그로 인해 나는 학교에 몇 번을 불려 가서 상담 선생님과 미팅을 여러 번을 했어야 했다. 아이는 공부와 대학 진학에 대한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그 나이에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신의 외모 더군다나 다른 친구들과의 비교 등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힘들어하면서 한마디로 멘탈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제일 큰 차이는 아이의 말수가 극도로 적어졌다. 첫째 딸은 나를 참 잘 따랐고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편이었는데 그 힘든 과정에 들어가면서 우리와의 대화를 거의 단절해 버렸다. 결국 심리 상담사를 만났고 온 가족이 상당을 받았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첫째 딸은 참 많이 울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내뱉는 과정에서 서럽게 울었다. 우리 가족의 최대 위기였고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내는 또 나의 우선순위에서 멀어졌다. 다행히 첫째 딸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기뻤고 다행이다 싶었지만 그 후유증은 온전히 아내와 나의 몫이었다.
둘째 아이는 언니랑 2살 터울이다. 둘째 녀석은 언니의 과정을 필터링 없이 그대로 봤다. 가릴 수 있거나 숨길 수 있는 환경이 못되었다. 아내와 나는 둘째 아이는 첫째 녀석처럼 그런 힘든 과정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원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공부와 관련된 그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더 많은 자유를 주기로 했다. 오로지 본인이 원하는 대학과 원하는 전공을 선택해서 나아가기를 원했다. 남들 다 보내는 사설 학원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이상 보내지 않았다. 심리 상담사와 첫째 녀석 때문에 상담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공부에 대한 중압감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는 공부와 진학과 관련해서는 그 어떤 말도 안 하기로 아내와 나는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기도는 무참히 무시되었고 둘째 녀석은 아예 처음시작부터 나에게 경고를 날렸다. 나는 아직도 그 아이의 말이 생각난다. 아마도 평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스크래치 같은 것이다.
"아빠, 나 아마도 언니보다 더 심할지도 몰라....."
충격 그 자체였다. 그냥 하는 소리겠지라고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분명히 그것이 진심이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실로 다가왔다. 아내와 나는 어른이고 부모였지만 상처를 꽤 많이 받았다. 솔직히 억울했다. 결혼해서 아내와 나는 성실한 아빠 엄마로 살아왔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왔다고 믿었는데 무슨 이유로 이렇게 두 아이 모두 똑같은 과정을 지나가는지 모르겠다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서로 부둥켜 울기도 했었다. 둘째 녀석은 자신의 말대로 언니보다 더 심했다. 그것은 도무지 아내가 감당해 내기 힘든 것들이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가 안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둘째 녀석과 나는 그 긴 터널에서 서로를 밀고 당기며 헤매고 있다.
벌써 4년째다. 그 사이 둘째 녀석도 대학생이 되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원하는 전공을 하고 있다. 대학을 들어가고 잠시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서 지금까지 둘째 녀석에게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매달리면서 서로에게 의지도 하였지만 많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몇 달 전 둘째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나한테 와서 말했다. "아빠, 이제 나 혼자 할 테니까. 아빠도 이젠 아빠 인생을 살아". 사실은 나도 그때쯤에는 지쳐가고 있었다. 줄을 잡고는 있었지만 육체적으로는 그 줄을 잡고 같이 걸어가고 있었지만 정신은 벌써 반쯤 나간 상태였다. 그러다가 나까지 큰일이 생기겠다 싶다는 시점이었다.
둘째 녀석의 의견을 받기로 했다. 다시 내 인생으로 돌아오고 둘째 녀석에 매달려 있던 내 인생의 짐을 조금 내려놓고 나니 그 재서야 아내가 보였다. 마치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처럼 나의 허무한 마음을 아내가 조금씩 채워주고 달래주고 위로해 주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무너졌을 나였다. 나는 안다. 아내가 나보다 멘털이 더 약하다는 것을. 위로받을 사람은 아내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먼저 챙겨주었다.
둘째 녀석과의 긴 전쟁에서 돌아와 내 인생을 다시 돌보기 시작한 지 2개월 정도 지났다. 지난 4년을 둘째 녀석과 그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나는 내 주위의 많은 관계들을 잃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에너지나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서 멀어졌다. 그 멀어진 관계를 한참이 지난 지금에 시점에서 다시 회복하고자 연락하기에는 너무 스토리가 길다. 설명하면 너무 피곤하다. 다시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그런 것들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 떠나고 남은 사람은 결국 아내와 첫째 딸이었다. 첫째 딸은 이제 독립해서 따로 산다. 가끔 보는 사람이 되어버린 지 몇 개월 됐다. 그래서 아내만이 나의 유일한 관계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예전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이젠 아내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 아내를 위해 아내가 원하는 것을 아내가 바라는 대로 뭔가를 하기로 말이다.
곧 다가올 아내의 생일을 위해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두 달 전에 예약을 미리해 두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서 예약을 안 하면 가기 힘든 곳이라고 해서 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내 생일날 갈려고 예약한 식당 있잖아. 그냥 취소해 줘. 그냥 아이들이랑 집에서 맛있는 것 만들어 먹자. 당신 좋아하는 와인 사서 집에서 우리 넷이 같이 말이야...."
나는 말했다. "왜 갑자기? 당신 때문에 내가 일부러 미리 부킹 한 건데. 웬만하면 가자. 일 년에 한 번뿐인 당신 생일이잖아. 당신도 그런 곳에 가서 근사하게 밥 먹고 즐길 권한이 있다고!"
아내의 대답은 짧았다. "여보, 그냥 나를 위해 그렇게 해줘. 내가 그러고 싶어"
나는 무슨 이벤트나 기념일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계획한 것들을 취소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아주 거창하거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계획을 할 일이 만무하다. 그 정도로 현실 감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범위 내에서 그래도 조금만 더 사치를 한다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아무튼 이렇게 준비하면서 그 사람을 생각하고 나름대로 고민 고민해서 준비한 이벤트인데 갑자기 취소를 하자고 한다면 나는 뭔가라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평소 같았다면 아내의 그 말에 내가 서운해서 또 한바탕 부부 싸움을 했으리라.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아내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는 바로 전화를 해서 식당 예약을 취소했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 문제에 너무 깊이 빠져 살았던 것 같다. 그들이 힘들어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면서 가볍지 못하고 무거운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다 나 때문이라고 많이 생각했었다. 자책하고 또 자책하면서 무려 7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다고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아빠로서 그들을 고치려고 바꿔 보려고 억지로 끌고 다닌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곁에서 그들이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고 서포트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조차도 내려놓기로 했다. 조금만 더 먼발치에서 그들을 도와주는 조력자로 살아가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 매달려 그들을 삶의 우선순위로 주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진작 이렇게 했었나 싶다. 그냥 아이들 스스로 넘어져도 보고 상처도 받고 무너지기도 했어야 했나 후회되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니 아내가 예전보다 나에겐 더 소중한 사람으로 보였다. 만약 아내가 없었더라면 홀아비로서 나는 어디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 누구에게 기댈 수 있겠나 말이다. 앞으로 20년은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긴긴 세월 동안 나를 그 누구보다도 아껴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아내였다. 죄송하지만 아직도 건강하게 잘 사시고 계시는 우리 부모님도 아니었다.
아내가 일을 시작한 이후로 아내는 늘 바쁘다. 특히 주말에 더 바쁘다. 다행히 아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조금씩 집안일을 배웠고 이제는 제법 요리도 하곤 한다. 아내가 일 때문에 늦게 오거나 없을 때는 혼자서라도 밥을 직접 해서 챙겨 먹는다. 그러다가 아내가 쉬는 날이거나 휴가를 받으면 나는 그 어떤 약속도 흔쾌히 취소하고 전적으로 아내를 위해 나의 시간을 사용한다. 아내가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서 걱정이 많이 되기도 하지만 그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아내는 그 힘든 시기를 넘기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일을 하는 시간 동안이라도 아이들로부터 집안일로부터 해방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일이 많아서 나와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
아내는 나에게 소원이 딱 하나 있다. 큰집, 좋은 차, 명품 가방, 해외여행도 아니다. 아내는 그 소원을 나에게 반복적으로 되새겨준다. 까먹을까 봐 잊지 말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여보, 당신은 꼭 나보다 하루 더 살아야 돼. 그게 나의 가장 큰 소원이야.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