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나를 일으켜 주었다
모든 일을 새로 시작할 때는 동기 부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중간중간 좌절하거나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그것을 다시 끄집어내어서 다시 시작할 수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동기 부여는 자극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알고 나를 다시 찾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과연 이 일의 동기 부여가 뭘까? 내가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하며 내가 왜 이것을 끝내야 하고 이 프로젝트의 끝에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가 등등의 물음표를 무수히 던졌다. 노트에 적고 컴퓨터에 기록하고 일기장에 쓰고 막 쓰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공통 단어를 찾아보았다. 하나가 보였다.
행복.
나는 행복하고 싶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그동안은 행복하지 못했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부정하지 않는다. 물론 매일매일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일 년 365일 중에서 행복했던 날들보다는 불행했던 날들이 하루라도 더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는 불행했던 시간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것도 불행했다.
나는 왜 불행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제일 맘에 드는 답은 내가 좋아하는 내가 하고 싶은 뭔가를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오후 5시면 정시 퇴근하는 직장도 먹고살아야 하는 현실 때문에 하는 일이었고 그 외의 대부분의 여가 시간에도 나는 하나도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는 못하고 살았다. 혹자는 말할 수 있다. 너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너만 특별한 것이 아니야. 물론 동의한다. 그렇다고 내가 꼭 그런 보편적인 삶을 똑같이 살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중산층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산다고 해도 내가 꼭 그 부류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불행했던 이유가 또 하나 더 있다. 남들은 나보다 더 행복해 보여서 많이 부러워했다. 나를 쳐다보고 나와 대화하지 못했고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을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늘 나는 이 만큼은 살아야지 당연히 그 정도는 살아야만 돼 라는 억지스러운 기준을 스스로 만들고 그 기준을 맞추지 못한 나 자신을 내가 스스로 늘 스트레스 주고 긴장하게 만들면서 살아온 것 같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그랬고 집에 와서도 가족들과도 그랬던 것 같다. 힘들면 나를 보듬어도 주고 위로도 해 줘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늘 타인으로부터만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아버지는 시골의 작은 도시에서 공무원을 하셨다. 그 당시 시골에서 공무원 정도였으면 그래도 좋은 직장이었고 어린 나이에 내 기억으로 아버지는 그 일을 좋아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아침엔 늘 깔끔하게 와이셔츠를 직접 다리시고 양복을 입고 나가셨고 저녁에도 늘 식사만 하고 나면 사교 모임에 다녀오고 나서야 주무셨다. 그리고 운도 좀 따라서 아버지는 좋은 자리로만 전근을 다녔고 승진도 때 되면 늘 하시곤 했었다. 그래서 나도 한때는 아버지를 따라 공무원을 해 볼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65세가 되면서 정년 퇴임을 하셨다. 아버지는 당신이 정년 퇴임을 하시기 전에 나와 내 아래 남동생을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장가를 보내고 싶어 하셨고 결국에는 그 목표를 이루셨다. 정년 퇴임을 목전에 둔 어느 날에 다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은퇴 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아버지는 공무원을 하시면서 여러 가지 기술들을 가지고 계셨고 그래서 나는 은근히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은퇴를 하시더라도 조그마한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라도 일을 계속하시길 원했다. 꼭 돈을 벌어야만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아직 일을 더 하실 수 있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나 건강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계속하셔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한테서 깜짝 놀랄만한 말을 들었다.
나: "아버지, 퇴임하시더라도 소일거리로 일을 계속하시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버지: "주야, 나는 퇴임하면 절대로 다시는 일 안 할 거다. 그냥 소일거리로 농사일 조금씩 하면서 그렇게 살 거다."
나: "......."
아버지:"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무원시험 봐서 공무원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우리 식구 먹여 살리고 너네들 대학 등록금 내주려고. 이제 공무원일은 신물이 난다. 지겠지 것 하다. 퇴직하면 더 이상 일 안 하고 그냥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기다."
아버지의 그 말에 아무도 대꾸를 안 했다. 정년 퇴임을 한 후 아버지는 정말로 재취업을 하시거나 누구의 녹을 먹는 일을 더 이상하지 않았다. 집안에 있는 텃밭에 계절마다 다른 채소들 기르는 재미를 즐기셨고 아침 먹고 나면 동네 마실을 나가서 노인정에서 수다도 떨고 손주들 재롱을 보면서 그렇게 지내셨다. 다행히 아버지는 공무원 연금을 받으셔서 나와 내 동생이 특별히 용돈을 주지 않아도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다. 아버지는 행복해 보였다. 그때의 아버지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결국에 인간이 좀 더 행복해지려면 내가 좋은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것을 느꼈다.
다시 나로 돌아와서 원래 나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참 좋아했다. 친구들이 너는 공으로 하는 운동은 다 잘한다고 할 정도로 그랬다. 체격이 왜소해서 사실 운동을 잘하기 쉽지 않은데 운동 신경이 좀 남 다르다고 느끼긴 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다시 시작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이 세상에 나이 들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이 별로 없더라. 축구, 배구, 농구, 야구, 테니스 등 구기 종목의 대부분은 팀 운동이다. 50을 훌쩍 넘긴 내가 이런 운동 모임에 조인해서 젊은 사람들이랑 같이 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은 골프, 수영, 아니면 사이클(자전거) 타기 정도가 남는데 좋아는 하지만 그렇게 끌리지 않았다. 그래서 운동을 새로 시작하는 것은 제외되었다.
고등학교까지는 미술에 재능이 보였었다. 그래서 특별반에서 드로잉도 하곤 했고 한때는 정말 심각하게 미술을 대학에서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해 본 적도 있었다. 그 정도로 그림 그리기도 좋아했다. 그런데 그림은 재료도 필요하지만 적당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 그리고 나면 작품을 보관해야 하는데 그것도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그림도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넘어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브런치 작가라는 것을 보게 되었고 바로 느낌이 왔다.
생각해 보면 대학 다닐 때와 졸업하고 사회 초년 생까지 나는 시를 상당히 좋아했다. 나만의 시를 쓰기도 했고 그 시를 그림에 옮겨서 액자를 만들어서 친구들한테 그리고 가족들한테 가끔은 선물도 하곤 했다. 신기한 것은 몇 해 전에 한국 방문을 했을 때 사회 초년 때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둘이서 술을 마시다가 뜬금없이 그 친구가 예전에 자기가 신혼 때 내가 시가 적힌 그림 액자를 자기한테 선물을 했다고 했다. 나는 다 까먹고 기억도 안 났다. 그런데 더 재미있던 사실은 그 친구 딸이 자라서 나중에 미대를 갔고 어느 날 친구집에 걸려 있던 내가 준 액자를 보고 아주 좋았다고 그러면서 누가 만든 거냐고 물어보더라는 거였다. 속으로 얼마나 흐뭇했던지. 결혼해서 살면서 아이 키우고 이민 오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내 안에 있는 그런 글쓰기의 열정을 잃어버리고 산거였다.
목표를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새로운 자극이었다. 그것은 마치 내 속에 숨겨졌던 오래된 것들을 한 올 한 올 실타래처럼 끄집어내는 과정 같았다. 글쓰기는 마치 넘어져 있던 나를 일으켜 주었다. 솔직히 나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아쉬운 감정이 많다. 아버지는 나에게 훌륭한 아버지였고 나는 좋은 아들이 되기 위해서 서로가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딱 아쉬운 것이 있다. 서로가 친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아버지가 어렵고 아버지는 나의 눈치를 보신다. 그래서 나의 첫 글쓰기 주제는 아버지에 관한 것으로 하기로 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 많았서 그랬을까 글을 참 많이 썼고 글을 쓰는 내내 많은 것들이 오고 가고 했다. 이 아버지에 관한 글들은 이미 다 완성되어서 나의 브런치 서랍장에 저장되어 있다. 언젠가는 발행을 하고 싶다.
브런치작가 신청을 하고 조금은 긴장되었지만 안되더라도 실망하지 말자고 했다. 그런데 의외로 빨리 축하 이메일을 받았고 너무 기뻤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이루어낸 성취였다. 행복하다고 느꼈다. 아니 그 순간 정말 행복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공유했다. 다들 신기해하면서 브런치 작가가 뭐냐고 물었다. 간단하게 설명해 줬더니 대단하다고 하면서 축하해 줬다. 가족 모두 정말 행복한 저녁을 먹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연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주말이면 글쓰기에 온 시간을 다 보낸다. 도서관과 카페를 오고 가면서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에 주말을 다 보낸다. 아내도 아이들도 다 찬성했다. 나에게는 새로운 루틴이 생긴 거나 마찬가지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나에게는 자극이 필요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전기 200 볼트보다 더 센 뭔가의 자극이 필요했었다. 축 처져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나를 벌떡 일으킬 수 있는 뭔가의 자극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강력한 동기부여가 접목된 뭔가를 해야만 했고 그걸 찾기 위해 지난 몇 달을 헤매고 다녔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그 질문의 정답을 찾은 듯하다. 글쓰기가 이렇게 좋은 자극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에 내 몸 안의 도파민 분비가 엄청남을 느낀다. 그냥 좋다. 다시 행복을 찾은 듯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