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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M Nov 11. 2024

쉬어갈 타이밍

지금 살고 있는 호주 시드니는 이제 곧 여름이 시작된다. 

언제 여름이 오나 생각할 필요도 없이 곧 오겠구나라고 계절을 알려 주는 것이 있다. 


바로 자카란다 (Jacaranda)라는 나무다.


보통 여름에 가까우면 나무가 초록으로 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나무는 보라색의 이쁜 꽃을 피운다.

최근에도 내가 사는 동네 주위에 흐드러지게 피웠기에 길다가 멈춰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어서 여기 공유해 본다. 



동네마다 이런 보라색 꽃이 핀 자카란다 나무가 많이 보이면 시드니 사람들은 "아.... 이제 곧 여름이 오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조금은 들뜨기 시작하고 연말 여행, 휴가 또는 파티 준비를 슬슬 준비하기 시작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호주의 회사들은 대부분 연말에서 새해 연초까지 2-3주 동안 회사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 직원들은 긴 휴가를 보낸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렇게 문을 닫고 영업을 안 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일을 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으므로 많은 회사들이 동참하게 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직원들은 9월-10월부터 벌써 연말에 어디를 놀러 가고 긴 휴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의 계획을 짜고 좋은 정보들이 있으면 점심시간이나 티타임은 물론이고 팀 미팅이 시작하기 전 처음 1-2분 동안 잡담으로 얘기하곤 한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12달 중에서 2달은 일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속 편하다. 제품 기획과 개발을 이끌어 가는 프러덕트 매니저들은 사실 이런 것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늘 남들보다 앞서나가면서 계획을 짜고 사전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만약 연말이 시작하기 전에 뭔가를 끝마쳐야 할 일이 있다면 8월부터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호주 사람들은 12월이 다가 올 수록 가능한 일의 양을 줄이고 힘들고 어려운 것들은 최대한으로 내년으로 넘기려는 경향들이 많다. 그래서 이렇게 자카란다가 피기 시작하면 제품 개발의 책임을 지고 리드를 하는 나는 조금씩 스트레스가 있다. 그래서 그때부터 개발팀과의 밀땅이 많아진다.


내가 한국을 떠나 호주에 오면서 딱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나를 희생하면서 까지 회사에 충성하지는 말자.

이런 나의 원칙은 사실 나한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팀에게도 똑같이 요구했다. 늘 팀원들에게 말했던 것이 당신들의 개인 삶을 희생하면서 까지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말은 밀땅이라고는 했지만 그 밀땅의 결과는 늘 뻔했다. 

항상 내가 지는 쪽에 서 있었다. 

그래도 서운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다. 

누군들 연말까지 힘들게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일 년 동안 열심히 달려왔다면 연말에 허리끈 풀어진 바지처럼 느슨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온 동네가 보라색으로 물들면 운전하다가도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제 좀 쉬어 갈 때가 된 거네...."

그래서 사실 지난주부터 회사에서는 기어를 저속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팀분위기를 보면 안다. 이미 팀원들도 연말 모드에 들어갔다. 


2주 후에는 우리 회사도 전체 직원들이 시드니 달링하버에 모여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 일종의 연말 쫑파티 같은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를 올해는 제대로 즐길 수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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