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편지를 쓰게 되었네요.
보선님은 편지를 자주 쓰시나요?
저는 편지야말로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점점 옛날의 것이 되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입니다. 편지를 쓰더라도 내 안에 깊이 내재해 있는 얘기를 누가 들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고요. 이번에는 한 번 써볼까 합니다. 제 생각과 마음을 보선님께 전달해보려고 합니다.
지구가 둥글다고 느낄 때가 있으신가요?
저희가 사는 지구는 둥글고 모난 곳이 없는데 가끔은 그게 흉물스러워서, 모난 곳 없는 지구가 파이고 파여 이제는 둥글다고 할 수조차 없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둥근 지구에서 찔리고 긁혀 상처투성이인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그리고 그게 나인 걸 알아챘을 때 더는 지구가 둥글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그런 지구에서 이리도 슬픈 지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서로를 위안하는 것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의 상처를 관통하여 왜 우리가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지, 왜 사람들은 이토록 상처 주고 상처 입는지 저는 그게 너무나 궁금해서, 또 그걸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어서 글을 쓰나 봅니다.
비건이라는 걸 밝히고 얘기를 하다 보면 자주 왜 비건이 됐는지 묻더라고요. 저는 그에 사실대로 답해본 적이 한 번도 없고요. 인간만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어 놓고 터전이 없어진 비인간 동물들을 죽여 먹는 것이 인간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서 저는 비건이 되었거든요. 하지만 그건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비건을 안 해도 자기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먹을 것을 선택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도 너무 많고요.
요즈음 보선님의 고민은 무엇인가요? 저는 요즘 스스로의 상황과 자아와의 마찰로 인해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좋아하고 세상이 왜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지 알아보는 것에 힘을 쏟고 싶지만, 그렇게 살다 간 분명 굶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당연히 저도 시스템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거죠. 아무리 시스템을 잘 알아도 저도 그 안에 속해있다는 그 사실이 최근의 저에게 큰 아픔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것은 대학교와 대학원을 나와서 연구자가 되면 그때에서야 사회적으로 쓸모가 있어지는 것이죠. 이미 저는 보통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 되었고, 저의 학력은 중졸로 찍혀있으니 이제와서 일을 구한다고 해도 제한이 많을 것이고요. 사실 이 고민에 대한 답은 저에게 있습니다. 할 수 있을 때에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우리의 시작이 모두의 일상에 스며들길.
지금은 절망주의적인 시대라고 생각해요. 행복과 자유가 훼손되어 이룰 수 없으니 가상의 행복과 자유라도 붙잡으려고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인 성공이라는 것을 정해두고 거기에 얼마나 다가갔는냐로 가치를 획일화하고 있어요. 가치가 획일화된다는 것은 차이가 차별이 된다는 것이에요.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대가 되었어요. 이미 모두가 무엇이 가치로운지 정해놓았으니까. 서울권 대학에 붙은 사람이 대학에 못간 사람에게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죠. 배려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객관적 권력이 인간관계에 까지 깊히 침투해 있는데 절망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죠. 보선님과 편지를 앞으로 주고받을 텐데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아무리 밉고 못난 사람이 되어도 진실을 이야기합시다. 절망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아픈 진실을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