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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Oct 22. 2019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저

집 주변에 경춘선 숲길이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무엇보다 개발에 대한 유혹이 적지 않았을 텐데 걷기에 좋은 휴식 공간으로 남겨둔 결정이 고맙다. 종종 경춘선 철로를 따라 숲길을 걸었다. 철길을 걷는 건 과거로의 여행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추억의 장소. 기차가 하얀 열기를 뿜어대며 달리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기차가 다가오면 못을 철로 위에 올려놓고 기차가 지나가면 납작해진 못으로 놀기도 했다. 철로 위로 올라가 누가 균형을 잡고 더 오래가는지 실력을 겨루기도 했다. 그 장면이 눈앞에 선한데 나는 이제 중년이 되어 지난 시간을 되새김질하며 철길을 걷고 한다. 숲의 새 소리는 청각을 깨운다. 나는 걸으면서 귀에 이어폰을 끼고 무언가를 듣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숲에서 쉼을 주는 자연의 소리 대신 인공의 소리를 자신의 귀에 강제하는 것은 청각에 대한 학대다. 경춘선 숲길을 걷다 보면 계절에 따라 개나리, 철쭉, 민들레, 장미, 코스모스 등 자연이 주는 꽃 선물을 거저 즐기게 된다. 철길 어디에서든 자라나는 강아지풀을 보게 되면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을 깨닫게도 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만을 따지는 유용성의 기준으로만 살아온 삶. 하지만 정작 쓸모가 있다고 생각해온 건 어느 순간에 허상임을 깨닫게 된다. 쓸모가 없다고 보고 외면해 온 강아지풀 같은 자연은 사실 얼마나 우리에게 쓸모있는 가치를 주는가. 걷기는 그래서 즐거운 사색의 과정이다. 질주하는 삶에서 어나 느림과 멈춤으로 삶을 돌아보고 시선을 교정하는 정화의 시간이다. 먼지가 많이 낀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 다시 눈을 열어 맑게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숙성의 시간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는 걷기 예찬론자이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란 책을 펴냈다. 그로는 이 책에서 걷기에 대한 자기 생각을 펼쳐나가면서 걷기를 사랑했던 프리드리히 니체, 장 자크 루소,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마누엘 칸트,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등의 ‘걷기 철학’을 소개한다. 그로에게 걷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말한다. “그냥 산책만 해도 우선 멈춤의 자유를 얻게 된다. 이런저런 걱정거리가 안겨주는 부담을 덜고 잠시나마 일을 잊을 수 있는 것이다” 장자가 얘기하는 멈출 줄을 아는 지지(知止)를 통해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게 걷기인 것이다. 이 자유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걸을 때 누릴 수 있는 자유’이다. 삶이 덧씌운 굴레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라는 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아침에는 평균 한 시간, 오후에는 평균 세 시간씩 항상 같은 길을 걸었다. 하루에 무려 네 시간을 걷는 데 쓴 것이다. 걷기 마니아다. 니체는 걷기를 자유로운 구상을 하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루소도 니체와 비슷했다. 루소는 걸어야만 생각하고 구성하고 창조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루소는 ‘고백’ 제4권에서 얘기한다. “나는 편안하게 걷다가 마음 내킬 때 멈춰서는 것을 좋아한다. 내게 필요한 것은 떠돌이 생활이다.”     



이 책은 그리스 시대의 견유학파도 걷기의 ‘대표 선수’로 소개한다. 견유학파는 어느 것에도 얽메이지 않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닌 자유인들이다. 그들은 모든 땅이 자신들의 영토이므로 그 어떤 대지주보다 더 부자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나에게 부족한 게 뭐가 있단 말입니까? 난 슬프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습니다. 그러하니 나야말로 자유롭지 않습니까?”     



이마누엘 칸트의 걷기는 잘 알려져 있다. 고향인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본 적이 없는 칸트는 워낙 규칙적인 생활을 해 ‘쾨니히스베르크의 시계’로 불렸다. 그는 매일 아침 정각 8시에 집을 나서 산책을 했다. 칸트는 글쓰기와 독서 외에 두 가지에만 관심을 두었는데 그것은 산책과 먹는 것이었다. 간디도 걷기를 중요시했다. 걷기는 그가 무소유의 길로 들어서면서 추구한 간소한 삶의 실천 방법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은 곧 자신의 이웃을 착취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책의 저자 그로는 걷기가 깊어지면 큰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걷는다는 건 그것은 곧 사회적 술책을 닦아내고 덜어내고 치워버린, 쓸데없는 것을 제거하고 가면을 던져버린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의 삶이 자꾸 채우려다 무거워지는 과정이라면, 걷기는 채운 걸 덜어내고 비워내는 과정인 것이다. 걷기는 솔직하다. 건너뜀이 없이 한 발 한 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외에 다른 도약은 없다.      

걷기는 옹색하게 좁혀져 있는 가슴을 다시 넓게 펴고, 시선의 깊이도 더하게 해준다. 스스로 쳐놓았거나 남이 쳐놓은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며 가슴에 새 살이 돋아나게 해주는 걷기, 그 뜻깊은 세계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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