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마음의 교통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오늘도 줌 미팅을 하며 얘기를 들었다.
“김 과장~ 김 과장만 리프레시 연차를 내가 정하는 날 안 쓰는데, 이게 맞아?”
남들은 까라면 까는 건가.
그 말을 듣는데 이유 없이 화가 났다.
왜 내 연차를 남들과 맞춰야 하지?
회의가 끝나자마자 뒤에 앉은 윤 차장이 득달같이 찾아와 말을 걸었다.
“김 과장, 왜 좀 더 해보지? 거기까지만 했어?”
편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비꼬는 건지, 아니면 그냥 습관인지 알 수 없었다.
얼평부터 업무적인 시비까지, 매일같이 윤 차장에게 긁히는 걸로 하루가 시작된다.
이것 또한 내가 선택해서 견뎌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나는 이전에 꽤 오랜 기간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다.
업무가 몇 번 바뀌었지만, 직무는 늘 마케팅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세 해 전이었다.
영업부로 갑자기 발령이 났다.
회사가 발령을 내며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지만,
회사 입장에선 아무것도 아닐 그 일이
내겐 커리어의 축이 무너지는 일처럼 느껴졌다.
10년 넘게 쌓아온 시간이 한순간에 무너진 기분이었다.
누구나 일을 좋아서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그중에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은, 운이 좋은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협하며 산다.
그게 현실이고, 나도 그 안에서 살고 있었다.
이 직장이 마지막은 아닐 거라고 스스로 다짐하면서도,
이렇게 갑자기 바뀐 보직이 내 커리어를 엉망으로 꼬아놓았다는 생각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 불황기에 회사를 그만두자니 두렵고,
계속 다니자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답이 없는 문제처럼 느껴졌다.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직 준비를 꾸준히 해왔고, 여러 번 면접도 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늘 마지막 단계에서 막혔다.
‘내 나이가 문제일까, 미혼이라서 그런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기업들이 미혼의 가임기 여성을 꺼린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남녀평등을 외친다 해도,
이 나이의 여성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미 체감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이 자리에서 버티기로, 이 일로 계속 살아보기로 선택했다.
“선택에 책임을 져야지.”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가끔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일 때가 있다.
살기 위해 버티는 건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본능에 가깝다.
나도 안다.
그만두고 싶은 날보다 버텨야 하는 날이 훨씬 많다는 걸.
퇴근이 가까워올 무렵, 윤 차장이 내 옆자리에 와 앉았다.
“김 과장~ 내 와이프가 그러는데, 김 과장 생각보다 안 예쁘다던데.
빨리 연애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내가 언제 그에게 연애나 결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그는 이게 얼평이자 사내 괴롭힘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걸까.
이 또한 내가 견뎌야 하는 일 중 하나일까,
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요즘 나는 삶이 운전과 참 닮았다고 느낀다.
아무리 조심하고, 안전거리를 유지해도
가끔은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훅 들어오는 차를 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예상치 못한 말에 마음이 스치고,
어디에도 부딪히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또 어딘가에 부딪혔다.
운전이 그렇듯, 인생에도 완벽한 방어 운전은 없다.
누군가의 속도와 방향이 내 하루를 흔들고,
그때마다 마음은 조금씩 긁히고 멍이 든다.
그럼에도 다시 핸들을 잡고, 같은 길을 달린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일들에 기분이 흔들리는 내가,
오늘은 그냥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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