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의 물 공포: 발리에서 생긴 일
발리, 짐바란 아야나 리조트. 결혼 10주년 기념여행 이틀째 밤.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할, 이 최고급 리조트에서 나는 고열과 구토로 지옥을 경험했다. 아마도 이유는 풀 바에서 마신 칵테일의 얼음, 혹은 샌드위치에 들어간 채소. 남편이 낭만을 외칠 때 잠시 꺼두었던 내 안의 '최악의 시나리오 설계자'가 마침내 발리 벨리라는 물리적 증거를 가지고 승리를 선언했다.
이틀간의 고통 끝에 몸이 회복되었을 때, 나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다. 내가 겪은 이 고통은 남편이 철저하게 확인하지 않은 환경과, 분위기에 휩쓸려 방심한 나의 부주의 때문이었다.
“봤지! 내가 불안해했잖아! 이 모든 게 다 당신 때문이야!”
나는 이 비싼 여행을 망친 것에 대한 모든 원망을, 나에게 이 장소를 선물한 남편에게 쏟아냈다. 남편의 걱정 어린 눈빛은 내게 미안함 대신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의 뻔뻔함으로 보였다.
나의 불안과 편집증은 이후의 여행 기간 동안 물에 대한 극도의 집착으로 표출되었다.
첫째, 마시는 물. 나는 일반 생수는 물론,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브랜드 생수조차 믿을 수 없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사이드워크 몰로 달려가 오직 에비앙 생수만을 카트 가득 채워왔다. 에비앙은 밀봉된 알프스 빙하수라는 이미지가 나에게 유일한 위안을 주었다.
둘째, 샤워 필터. 6박 8일의 여행 동안 나는 6개의 샤워 필터를 챙겨왔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샤워기 헤드를 분리해 필터의 상태를 점검했다. 남편이 수돗물로 양치라도 할까 봐 감시하면서, 나는 매일 밤 샤워 필터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혹시 모를 녹물이나 염소 성분이 피부를 통해 흡수될까 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위험까지도 원천 봉쇄하려는 나의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셋째, 에비앙 샤워. 이 강박은 결국 샤워 자체로 번졌다. 나는 샤워 필터 외에 추가적인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결국 나는 에비앙 생수를 수십 병 욕실에 쌓아두고 그것으로 마지막 헹굼을 하기 시작했다. 수십만 원짜리 리조트 욕조 앞에서, 나는 수십만 원을 들여 산 '마시는 물'로 몸을 씻어내는 기이한 의식을 매일 밤 치렀다.
남편은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서서히 지쳐갔다. 그는 내가 샤워 필터를 갈아 끼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보, 나는 당신이 이 필터들을 갈아 끼우는 것보다 당신 마음속의 필터를 갈아 끼웠으면 좋겠어.”
나는 이 말을 듣고 분노했다.
“당신은 나를 환자 취급하는 거야? 당신은 이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구나!”
나의 히스테리와 통제는 갈수록 심해졌다. 남편이 수영장에 가려 할 때, 나는 그를 붙잡고 외쳤다.
“당신, 그 물에 균이 얼마나 많을지 몰라? 나처럼 다시 아프고 싶어?”
나의 불안은 남편에 대한 사랑이 아닌, 나를 보호하기 위한 이기적인 통제가 되었다. 남편은 결국 나를 포기했다. 10주년 여행은 각자의 여행이 되었다.
남편은 낮에는 리조트의 인피니티 풀에서 평화롭게 수영을 즐겼고, 저녁에는 혼자 옷을 차려입고 락 바로 향했다. 나는 에비앙 생수로 헹군 몸으로 신라면을 끓여 먹으며,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남편의 자유로운 실루엣을 응시했다. 그는 그곳에서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해 보였다.
우리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10주년의 달콤한 추억은 없었다. 남편의 짐에는 아름다운 발리의 사진이 있었지만, 나의 캐리어에는 빈 에비앙 생수병과 낡은 샤워 필터, 그리고 신라면 봉지가 전부였다.
나는 발리라는 지구상의 가장 아름다운 낙원에서, 내 머릿속의 가장 안전하고 폐쇄적인 감옥에 자발적으로 갇혀 8일을 보냈다. 나는 남편에게 원망을 퍼부었지만, 결국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외부 환경의 위험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것에 대한 나 자신의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우리 관계와 나의 정신은 발리에서 고열보다 더 깊은 상처를 입었다. 나는 10주년 여행의 완벽한 실패를 스스로 설계한, 불안이라는 이름의 완벽주의자였다.
나의 발리 여행은 발리의 초록과 블루가 뒤섞여 곰팡이들이 쥐파먹은 듯한 이끼색깔과 같았다. 나는 결국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일에 매몰되어 발리의 즐거움을 포기했다. 나는 이대로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