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의 색 : 플래티넘 프로스팅 ]

by CAPRICORN

장신구의 유통기한



나는 가죽 소파에 기대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을 굴렸다. 손톱 위로 은은하게 빛나는 누드 톤의 젤 네일과, 비싼 관리를 받아 윤이 나는 머리카락. 거울 속에는 잘 관리된 소위 말하는 에겐녀의 표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자들이 특히 좋아하는 이 스타일은 나의 추구미와 비슷하기도 했다. 성격은 테토녀에 가깝다고 믿고 있지만, 끊임없는 관리와 시술은 여자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두 달 된 남자친구인 강은이 집으로 오고 있다. 잘 관리된 그의 얼굴과 옷은 완벽했지만, 나는 현재의 연애에 만족스럽지 않다. 나는 이 소파에 앉아 강은을 기다리며,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두 달 전의 소개팅들을 회고하고 있다.




두 달 전. 강은은 '엄친아'라는 수식어를 정확히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얼굴은 내가 가진 높은 기준을 완벽하게 만족시켰다. 182cm의 큰 키, 운동으로 다져진 몸, 정해인을 닮은 얼굴,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 나는 강은과 함께 걸을 때 느껴지는 우월감을 사랑했다. 남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시선, '이 정도 되는 남자를 내가 만난다'는 만족감. 강은은 나에게 완벽한 장신구 같았다. 모든 게 다 잘 맞을 수는 없듯, 우리는 대화가 좀 맞지 않았다. 그와 나는 만나는 과정에서도 서로 간 유리한 지점을 찾으려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했다. 만나는 장소부터 대화와 만남을 약속하는 과정까지, 서로 본인들이 우위에 있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는 사소한 논쟁에서도 이기는 연애를 하려는 습성이 있었다. 나 역시 타인에게 맞춰주는 연애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그와의 대화는 불편했고 날이 서 있었다. 아마도 그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서로를 장신구처럼 여기는 연애.


그 당시 재고 있던 또 다른 소개팅남은 은엽이었다. 키는 174cm. 그의 옷차림도 무신사 스탠다드 스타일 그 자체. 얼굴은 그냥 평범했다. 굳이 닮은 꼴을 찾아보자면 '슬전생'에 나오는 구도원 선생님 같은 얼굴이랄까? 무조건 외모, 외모, 외모를 따지는 나의 기준치와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은엽과의 대화는 거짓말처럼 잘 통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 고민하는 것을 진심으로 들어주었고, 나를 위해준다는 느낌을 명확하게 주었다. 만나는 장소, 만나는 시간 그리고 대화까지 모든 것이 내 위주였다.


하지만 결국 나는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강은을 선택했다. 강은과 맞지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은엽과 비교해서였지 진짜 영 안 맞는 건 아니었다. 대화하면서 웃음은 끊이지 않았고, 아마 서로의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는 말이 오히려 더 맞을 것 같았다. 약간의 잘난 체를 들어주면 강은은 오히려 더 편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결국 나는 강은에게 애프터 만남을 제안하는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길로 은엽을 정리했다.

사실 서로가 장신구가 되는 연애의 끝은 그다지 길지 않음을 잘 안다. 나는 카톡 답장을 자주 씹는 그의 생활 습관을 지적했고 그는 고치려는 마음이 없었다. 되려 이전 연애는 이런 것 가지고 트집이 없었다는 말로 응수할 뿐이었다. 그는 절대로 먼저 선톡하고 자기 전에 전화해 주고,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해주는 다정다감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강은은 자기 스케줄이 우선이었다. '나'보다는 '자신'이 우선이 되는 스타일이었다. 학회에 가야 한다며 당일 취소를 통보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표면적인 미안하다는 말은 있지만 그것이 정말 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친구들과의 만남이 당일에 잡혀있는 경우, 17시에 만나기로 한 약속은 18시로, 19시로 밀리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위해 언제든지 '대기'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장신구는 말 그대로 장신구라, 나도 언제든지 쉽게 포기할 수 있었고 갈아 낄 수 있었다.


나는 그래서 강은에게 이별 통보를 했다.


이런 나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강은은 오히려 당황스러워했다.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슬픔보다는(2달 연애가 슬플리는 없다.) "대체 네가 왜? 나에게?"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날 나는 그에게 그동안 계속 부탁했던 "선톡", "전화" 투 콤보를 모두 겪었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우리 집 앞에 꽃을 들고 찾아왔다. 섭섭하게 굴었다면 미안하다는 그것이었다. 아마도 어릴 때 많이 봤던 인소 재질의, "나에게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었어."라는 것이 이것이 아닐까? 이건 그의 카톡내용으로부터 어루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 연애할 때는 상대방들이 많이 "참아"와서 이것이 너에게 "힘듦"이 될지 몰랐다는 것. 처음 보는 그의 절실함에 나는 이별을 살짝 철회, 유보하며 그와의 만남을 지속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만남이 길어지지 않을 것을. 그래서 난 오늘 이 소파에 앉아 강은을 기다리며 지난 소개팅들을 회고하고 있다.


이런 얼굴만 보는 연애,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내 20대가 끝나기 전에 나도 결심을 해야 하는 걸까?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4화[오늘의 색 : 딥 리첸 그린]